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복잡하게 뻗어나간 MCU의 모든 줄기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피터가 왜 혼자가 됐는지, 연인 MJ(젠데이아 분)와 절친 네드(제이콥 배덜런 분)가 왜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정도만 알고 있다면 중심 서사를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결말을 직접적인 출발점으로 삼되, 피터 개인의 고립과 선택에 집중하면서 한동안 마블을 떠나 있었던 관객들에게도 비교적 낮은 문턱을 내민다.
최근 MCU 작품들과의 차이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앞서 '어벤져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인피니티 사가에서는 개별 히어로 영화가 각자의 인물과 매력을 충분히 구축한 뒤 하나의 거대한 사건으로 합류했다. 반면 인피니티 사가 이후에는 극장용 영화와 디즈니+ 시리즈, 특별 프레젠테이션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수많은 인물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면서 일부 작품을 놓치면 전체 서사의 흐름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마블은 엑스맨 등 기존 MCU 밖에 있던 IP를 편입하기 위해 여러 평행 세계가 공존하는 '멀티버스' 설정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과거 프랜차이즈의 인물들을 잇달아 복귀시키는 데 힘을 쏟으면서 새 히어로들이 독자적인 존재감을 쌓을 기회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퇴장한 영웅의 빈자리를 이어받는 후계자들의 단독 서사도 앞선 이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데 상당 부분 할애한 탓에 비슷한 감정선과 성장 과정까지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간 엑스맨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었으나 이 작품으로 새롭게 MCU에 합류한 진 그레이 역시 피터와 비슷한 상처를 품고 있다. 앞서 '데드풀과 울버린'(2024)이 20세기 폭스의 '엑스맨' 유니버스를 멀티버스와 과거 캐릭터의 귀환이라는 방식으로 MCU에 끌어들였다면,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어린 진 그레이를 현재의 세계에 직접 배치하며 엑스맨 시리즈 속 뮤턴트 시대의 새로운 시작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주요 신규 캐릭터의 등장이 기존 주인공의 서사를 밀어낸다는 비판을 받았던 앞선 MCU 최신작들과 달리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에서는 피터와 진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 갈등과 맞물리며 비교적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소중한 존재가 사라졌다는 같은 아픔을 지닌 두 사람의 만남은 스파이더맨의 개인적인 재출발인 동시에 마블이 앞으로 전개할 페이즈7, '뮤턴트 사가'를 소개하는 통로로도 기능하며 서사의 완만한 조합을 이뤄냈다.
여기에 기억을 잃은 MJ와의 애틋한 감정선, 퍼니셔와 보여주는 의외의 호흡, 한층 규모를 키운 액션까지 더해지며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개봉 이후 관객들로부터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미국의 영화·드라마 평점 종합사이트 메타크리틱(Metacritic)에 취합된 주요 평론에서도 이전보다 성숙하고 거리의 영웅에 가까워진 스파이더맨의 모습과 톰 홀랜드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영화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혔다.

현재 흥행 지표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국내 개봉일인 7월 29일 오전 7시 기준 사전 예매량 93만 장을 돌파하며 올해 개봉작 가운데 최고 기록을 세웠고 개봉 직후에도 CGV 골든에그지수 96%를 기록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경쟁작인 '호프'의 흥행세가 다소 주춤한 가운데 8월 5일 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다 대중적인 오락성과 가족 관객 접근성을 갖춘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여름 극장가에서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할 여지도 크다.
이 작품의 성패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오는 12월 개봉하는 어벤져스 시리즈의 신작 '어벤져스: 둠스데이'와의 연결성 때문이다. '썬더볼츠*'가 새로운 어벤져스 팀의 출범을 알리는 작품이었다면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스파이더맨과 뮤턴트들을 본격적으로 그 흐름에 합류시키며 흩어졌던 세계관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는 역할을 맡았다. 독립적인 히어로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물론 차기 어벤져스 서사의 기대감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는 셈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2027년 12월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 사이에는 새로운 MCU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지나치게 늘어난 작품 수가 제작 역량을 분산시켰다는 점을 인정하고 두 편의 어벤져스 영화에 모든 것을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양적 팽창과 복잡한 세계관으로 흔들렸던 MCU가 다시 관객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관문이 된 만큼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만들어 낸 흥행 흐름이 새로운 어벤져스-뮤턴트 사가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