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터리 셀 업체들의 실적은 올해 2분기 들어 개선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2분기 매출 7조 5602억 원, 영업이익 1133억 원을 기록해 전분기 영업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삼성SDI도 매출 3조 7688억 원, 영업이익 2038억 원을 내며 7분기 만에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SK온 역시 배터리 사업에서 매출 2조 9460억 원, 영업이익 8218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유럽 전기차 판매 개선과 ESS·원통형 배터리 판매 확대, 비용 절감 등이 실적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완전히 끝났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시각이 나온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캐즘 이전처럼 성장 속도가 다시 빨라진 단계는 아니다”며 “유럽에서는 긍정적인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북미 시장은 회복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배터리 3사의 투자 방향도 캐즘 이전과는 달라졌다. 배터리 업체들은 기존 EV 생산설비를 활용해 ESS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투자 전략을 바꾸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ESS 생산능력을 확대해 올해 말 글로벌 ESS 생산능력을 60기가와트(GWh) 이상, 이 가운데 북미에서만 50GWh 이상 확보할 계획이다. 삼성SDI도 미국 스텔란티스 합작공장의 EV용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해 올해 4분기부터 LFP 배터리를 양산할 예정이다. SK온 역시 ESS 사업 확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기차용 신규 공장 증설이 늦춰지면 장비 발주가 줄고 기존 생산라인의 가동률이 떨어지면 양극재와 전해액·전해질 등 소재 수요도 감소한다. 최근에는 셀 업체들이 EV 신규 증설보다 ESS 생산 확대에 무게를 두면서 후방 업체들의 회복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터리 업계 다른 관계자는 “셀 업체들이 ESS 사업 확대 등으로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그 흐름이 소재·장비 업체까지 넘어가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ESS는 LFP가 대세인데 국내 소재업체들의 대응은 아직 다소 늦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재·장비 업체에는 호황기에 발행한 CB의 상환 시점까지 겹치고 있다. CB는 투자자가 정해진 가격에 회사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회사채다. 주가가 전환가액을 웃돌면 투자자는 주식 전환을 통해 차익을 얻을 수 있지만 주가가 전환가액보다 낮으면 전환 유인이 떨어진다. 여기에 풋옵션이 붙어 있으면 정해진 시점부터 원금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어 회사의 현금 유출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양극재 업체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CB 규모가 크고 주가가 전환가를 크게 밑돈다는 점이 부담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전기차용 하이니켈 양극재를 주력으로 삼성SDI와 SK온 등에 공급해왔지만 캐즘 기간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 둔화로 출하와 수익성이 영향을 받았다. 2023년 7월 에코프로비엠이 발행한 제5회 CB는 4400억 원 규모로 현재 전환가액은 21만 원대다. 8월 11일 종가 10만 9800원은 전환가보다 약 49% 낮아 현 주가에서는 투자자가 주식으로 전환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금 부담도 작지 않다. 에코프로비엠의 1분기 말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417억 원이었지만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금융부채는 전환사채 약 4606억 원과 단기차입금 1조 1256억 원 등을 포함해 2조 1855억 원에 달했다. 회사는 전환사채 풋옵션과 다른 금융상품 상환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보유현금을 웃도는 자금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상당 부분에 대해 차환과 만기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30일 1조 20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해 자본 확충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해액 업체 엔켐은 주가 하락에 실적 부진과 유동성 부족까지 겹친 사례다. 엔켐은 전기차 시장 확대를 예상해 미국과 유럽 등에서 생산능력을 빠르게 늘렸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와 판가 하락으로 2024년과 2025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고 올해 1분기에도 242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1분기 말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약 73억 원인데 제14회 CB 미상환 잔액은 약 2380억 원으로 현금 보유액의 약 33배에 달한다. 같은 시점 유동부채도 유동자산을 약 2236억 원 웃돌았다.
주가와 전환가의 괴리도 크다. 제14회 CB 전환가액은 11만 2700원인 반면 8월 11일 종가는 2만 5550원에 그쳤다. 현 주가에서는 투자자가 주식으로 전환할 유인이 낮은 가운데 오는 11월부터 풋옵션 행사도 가능해진다. 엔켐은 이에 앞서 오는 27일 사채권자집회를 열어 풋옵션 삭제와 해외법인 지분 담보 제공, CB 단계적 매입·소각 등을 포함한 조건 변경안을 표결할 예정이다. 풋옵션을 삭제해 11월부터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조기상환 부담을 늦추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해질·첨가제 업체인 천보는 상환 시점이 아직 남아 있지만 보유현금에 비해 CB 잔액이 크다는 점이 부담이다. 천보는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확대를 예상해 새만금 생산시설 등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캐즘 기간 전방 수요가 둔화하고 신규 설비 가동이 늦어지면서 현금여력도 줄었다. 제6회 CB는 일부가 주식으로 전환됐지만 6월 초 기준 약 1019억 원이 남아 있는 반면 1분기 현금성자산은 약 86억 원에 그쳤다. 다만 첫 풋옵션은 내년 5월부터 가능해 엔켐처럼 당장 상환 요구가 들어오는 상황은 아니다. 회사는 연말까지 현금을 약 600억 원으로 늘리고 차환도 병행할 계획이다.
엠플러스는 한 차례 CB 상환을 새 CB로 넘긴 뒤 다시 풋옵션 시점을 맞는 사례다. 배터리 조립공정 장비를 만드는 엠플러스는 셀 업체의 신규 증설 속도에 따라 장비 발주가 영향을 받는다. 회사는 2024년 제3회 CB 400억 원을 상환하기 위해 새 CB 250억 원을 발행하고 보유현금 150억 원을 투입했다. 이후 전환과 상환으로 제4·5회 CB 잔액은 약 166억 원까지 줄었지만 새 CB 역시 오는 10월부터 풋옵션 행사가 가능해진다. 다만 8월 11일 주가 1만 180원은 전환가 1만 656원과 차이가 크지 않아 주가가 회복되면 추가 주식 전환으로 현금상환 부담이 더 줄어들 여지도 있다.
업체별 상환 부담을 가르는 것은 남은 CB 규모뿐만이 아니다. 풋옵션 행사 전까지 주가가 전환가를 회복해 주식 전환이 얼마나 이뤄지는지, 영업을 통해 현금을 얼마나 확보하는지, 만기가 돌아온 채무를 새 대출이나 회사채로 차환할 수 있는지가 실제 현금유출 규모를 결정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캐즘이 완화되더라도 호황기에 조달한 자금의 만기는 그대로 돌아온다. 특히 전환가와 주가 차이가 큰 업체는 풋옵션이 실제 현금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향후 1~2년은 매출 회복뿐 아니라 현금창출력과 차환 능력에 따라 업체별 재무 부담이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가가 전환가보다 크게 낮고 보유현금까지 부족한 업체는 투자자가 주식 전환 대신 원금상환을 요구할 경우 외부 자금조달에 다시 의존해 재무부담이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