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상욱은 이미 국제무대에서 많은 것을 이뤘다. 2019년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에서 정상에 올랐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달성했다. 2024 파리 올림픽마저 석권, 한국 펜싱 사상 최초 올림픽 2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이른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월드 클래스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오상욱에게 어쩌면 아시안게임은 좁은 무대였다. 9월 23일 개인전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중국 선천펑이었다. 경기 막판까지 11-13으로 리드를 내줬으나 네 점을 연속으로 따내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허리 디스크를 극복하고 얻은 결과이기에 박수는 더해졌다.
3일 뒤 이어진 단체전은 더욱 극적이었다. 박상원, 도경동, 황희근과 함께 나선 결승 상대는 개최국 일본이었다. 접전 양상으로 펼쳐진 경기, 마지막 주자인 오상욱이 나설 때는 일본이 39-40으로 앞서 있었다. 오상욱은 고쿠보 마오를 만나 41-44까지 몰렸다. 단 한 점만 내주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었다. 위기의 순간 오상욱은 연속 득점으로 동점, 역전까지 만들어냈다. 다시 한 번 대회 2관왕에 오르게 됐다.
오상욱 개인과 한국 펜싱 모두 갖가지 기록을 쏟아냈다. 개인전에서 오상욱은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이전 구본길의 3연패를 더해 한국 펜싱은 남자 사브르 개인전 5연패를 이어갔다. 단체전의 경우 4연패다. 오상욱 개인은 3개째 단체전 금메달이다. 개인전을 포함하면 아시안게임 통산 금메달 5개를 목에 걸게 됐다.
과거 김정환, 구본길, 김준호 등 ‘어펜져스’로 불리던 대표팀 멤버가 대거 바뀌었음에도 이뤄낸 성과였다. 당시 막내급이던 오상욱은 박상원, 도경동, 황희근 등을 이끌고 맏형으로서 대회 2관왕을 달성했다. 사브르 대표팀의 독주는 이번 대회 역시 지속됐다.

앞서 금메달을 따낸 남자 농구 대표팀에 이어 여자 농구 대표팀도 아시아 정상에 올라 겹경사를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남녀 대표팀 모두 12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꾸준히 아시아 정상권 기량을 유지하던 대표팀에게 지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은 아쉬운 성적이었다. 하지만 2024년 박수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대표팀은 경쟁력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대회 직전 독일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에서는 강호 나이지리아를 꺾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문제는 일정과 선수 구성이었다. 대표팀의 월드컵 최종 경기는 9월 8일이었다. 숨돌릴 새 없이 아시안게임을 준비해야 했다. 선수단 구성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월드컵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에이스’ 박지현은 소속팀(LA 스파크스) 일정 탓에 아시안게임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 한국 여자농구의 기둥인 박지수는 부상 문제로 이번 대표팀 일정에 참가하지 못했다. 박수호 감독은 대체 자원을 선발하지 않고 대회 엔트리 숫자보다 적은 11명으로 나서기로 결정했다.
적은 숫자로도 대표팀은 이전의 기세를 이어갔다. 말레이시아, 몽골, 대만, 인도네시아를 꺾으며 4강에 올랐다. 4강 상대는 ‘난적’ 중국이었다.
중국은 아시아 농구 최강국 중 하나다. 아시안게임 역대 최다 금메달(7개) 기록을 자랑한다. 특히 한국이 열세를 보이는 높이에서 강점을 보인다. 이번 대회에는 223cm로 알려진 장쯔위가 첫 선을 보여 화제를 모았다. 박지수(197cm)가 빠진 대표팀 최장신은 182cm의 이해란, 최이샘이었다.
실제 돌입한 경기에서 한국은 중국에 리바운드 면에서 큰 열세를 보였다(30-52). 하지만 빠른 공수 전환, 압박 수비, 장거리 슈팅으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한국이 12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는 사이 중국은 단 한 개도 적중시키지 못했다. 결국 대표팀은 85-80으로 중국을 넘어섰다.
이어진 결승 상대는 개최국 일본이었다. 1쿼터에만 27점을 퍼부으며 크게 앞서나갔다. 하지만 일본의 추격은 매서웠다. 경기 막판 2점차까지 좁혀졌으나 대표팀은 리드를 지켜냈다. 이해란(24점), 강이슬(21점), 이소희(16점) 등의 분전이 돋보였다.
남녀 동반 금메달로 이번 아시안게임은 한국 농구의 기념비적인 대회로 남게 됐다. 3x3 농구에서도 성과는 이어졌다. 남자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 여자 대표팀은 동메달을 따냈다. 3x3 남녀 대표팀은 ‘미래 자원’으로 대표팀을 구성, 향후 활약에 대한 기대감도 키웠다. 네 종목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한 한국 농구는 아시안게임 ‘효자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나마디 조엘진은 육상 100m에서 메달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많은 주목을 받은 이유는 그간 한국이 장기간 힘을 쓰지 못했던 남자 단거리에서 가능성을 보인 덕분이다.
2006년생 조엘진은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기대주로 꼽혔다. 2025년 구미 아시아선수권에서 400m 계주 대표팀의 일원으로 38초49를 기록, 한국신기록을 새로 썼다. 종목 사상 첫 대회 금메달은 덤이었다.
개인 기록도 발전을 거듭했다. 지난 4월 10초 08을 기록했다. 초속 3.5m의 뒷바람 탓에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7월에는 10초13을 기록, 한국 역대 2위 기록을 만들었다. 한국기록은 김국영의 10초07이다.
상승세는 아시안게임에서도 이어졌다. 조엘진은 대회 100m 예선에서 10초23으로 자신의 조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냈다. 준결선에서도 조 1위에 오른 그는 10초17을 기록했다.
결승에서의 기록 역시 10초17이었다. 1위는 푸리폴 분손(태국, 9초90), 2위는 알리 알발(오만, 10초04)이었다. 조엘진의 기록은 3위인 오만의 말함 알발루시(10초11)와 단 0.06초 차이였다. 조엘진과 함께 기대를 받던 비웨사도 10초19라는 준수한 기록으로 5위에 올랐다.
순위 이상의 의미였다. 한국의 아시안게임 남자 100m 메달은 1978년 서말구의 동메달, 1982년 장재근의 은메달이 유이하다. 한국기록 보유자 김국영조차 8위(2018년)가 최고 성적이다. 오랫동안 국제 대회와 거리가 멀었던 남자 단거리에도 이전과는 다른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모든 종목에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화려하게 장식해 ‘황금 세대’로 불렸던 경영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중국과 일본의 벽을 실감했다. 항저우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10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냈던 대표팀은 이번 대회 금메달 1개, 은메달 6개, 동메달 13개를 기록했다.
항저우에서 3관왕을 기록했던 김우민은 어깨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원투펀치’ 황선우는 6개의 메달을 따냈으나 금메달은 없었다. 2006년생 김영범이 유일한 금메달(자유형 50m)을 포함해 5개(금1, 은2, 동2)의 메달을 따내며 새로운 주자로 떠올랐다.
여자배구도 아쉬움을 남긴 대회였다. 차상현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4강에서 일본, 메달 결정전에서 태국에 연달아 0-3으로 패해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두 대회 연속 ‘노메달’이었다. ‘김연경 시대’ 이후 하락세에서 반등하지 못하는 숙제를 여전히 남기게 됐다.
아시안게임 5연패를 노리는 야구 대표팀도 시련을 피하지 못했다. ‘난적’으로 꼽히던 대만에 승리하며 대회를 시작했으나 9월 25일 슈퍼라운드에서 일본을 상대로 0-5 영봉패를 당했다. 타선이 안타 4개만을 기록하는 데 더해 병살타가 3개였다. 일본은 실업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했기에 국내 팬들의 실망감은 작지 않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