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의 동생 박지만 씨(왼쪽)가 회장으로 있는 EG그룹의 계열사 EG테크에서 부당해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박 당선인 남매가 2005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 26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모습. 임준선 기자
대선이 한창 무르익던 지난해 11월 29일, 대법원은 EG테크로부터 당연 퇴직 처분을 받은 양우권 씨에게 “적법한 절차를 거친 퇴직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무효판결을 내렸다. 양 씨는 2011년 4월 ‘정직 기간 중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 조치됐고 이에 불응해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당시 양 씨는 “정직기간 중 출근해야 한다는 것은 강제 조항이 아니었고, 실질적으로 정직을 당하기 전 수개월간 회사에서 아무 것도 시키는 일이 없었기에 상급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곧바로 이어진 항소심과 상고심 역시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양 씨는 소송이 시작된 지 1년 6개월 만에 회사에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복직 통보가 아닌 또 다른 소송의 시작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2월 21일, 회사 측이 ‘고용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회사와 양 씨의 고용관계가 이미 종료됐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양 씨는 2011년 4월과 12월 두 번에 걸쳐 회사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런데 4월에 열린 인사위원회는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해고 당사자인 양 씨에게 30일 전 예고를 하지도 않았고 충분한 해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1년 11월, 1심 판결이 난 직후 회사 측은 곧바로 2차 인사위원회를 열어 다시 한 번 양 씨에 대한 해고 절차에 들어갔다. 양 씨로서는 이미 해고된 상황에서 또 다시 해고를 당하는 일이 일어난 셈이었다.
1998년 2월 EG테크에 입사한 양 씨는 12년간 산화철 제품포장 업무를 맡아왔다. 그런 그가 회사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회사에 노조가 만들어지면서부터다. 당시 53명으로 시작된 민주노총 산하 EG테크지회는 2008년 1월에 이르러 세 명의 조합원만이 남게 됐다. 나머지 조합원들은 대부분 기업별 단위노동조합으로 전환했다. 남은 조합원들은 청소 및 도색작업을 하는 환경업무로 직무가 변경됐고 2010년 3월과 8월에 두 조합원이 차례로 노조를 탈퇴했다. 결국 민주노총 산하의 조합원은 양 씨 혼자 남게 됐다.
양 씨 역시 2009년부터 시간외근로와 휴일근로 등에서 제외되기 시작하면서 월 급여가 30만~40만 원가량 줄었다고 한다. 2010년 5월 양 씨는 자신이 12년간 해 오던 제품포장직에서 환경작업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다시 운전업무로 보직이 변경됐다. 이때부터 그는 운전실에 마련된 사무실에 앉아 무기한 대기발령 상태가 됐다. 당시 상급자는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상에 앉아 있으라고 지시했다. 서서히 직원들의 따돌림도 시작됐다.
결국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2011년 1월 양 씨는 노무팀장에게 조퇴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혼자 119 구급차를 불러 병원을 다녀왔다. 당시 병원은 양 씨에게 ‘혼합형 불안 우울 장애’ ‘신체형 통증 장애’ 진단을 내렸다. 회사는 양 씨가 작업장을 무단이탈했다는 이유로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양 씨는 정직 기간 중 출근하지 않았고 회사 측은 이를 이유로 해고 통보를 하게 된 것이다.
소송 당시 양 씨는 “나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부당해고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7년 무렵부터 고○○ 부장이 수차례 집무실로 불러 노동조합을 탈퇴할 것을 회유했다. 한 날은 내가 녹취하겠다고 테이블 위에 녹음기를 꺼내 놓으니 그 뒤론 그런 일이 없었다”, “김○○ 대표이사도 나를 몇 차례 찾아와 자기 부부와 우리 부부가 언제 식사나 한 번 하자면서 금전적으로 서운하게 해준 게 있으면 다 보상해 주겠다고 했다”, “주○○ 근로자 대표가 대표이사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왔다며 노조 탈퇴 조건으로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 및 성과급 일체를 보상해 주고 원래 업무로 복직시킨 뒤 어떠한 보복성 불이익 없이 신분을 보장해주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양 씨의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양 씨의 시간외근무 제외와 보직변경 등은 노조원 탄압이 아닌 회사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였다며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양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양 씨가 작업장 내 흡연과 규정된 작업복 이외의 복장 착용, 근무 태만, 동료 직원들과의 불화 등으로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는 회사의 주장을 인정했다.
EG테크 우 아무개 노무팀장은 지난 1월 3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또 다른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게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무팀장이 조합원 조끼를 벗기게 했다’, ‘노조에서 탈퇴하면 복직시켜주겠다고 했다’는 양 씨의 주장에 관해 “전혀 사실이 아니고 이미 판결을 통해 가려진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계열사 소송에 대해 EG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이번 소송이 대법원의 복직판결을 무시한 것이 아니다. 회사가 2011년 12월에 정당한 절차를 통해 양 씨를 해고한 과정을 법원에서 판단해 달라는 취지의 소송”이라며 “1심 판결이 나온 뒤 회사 측에서 매끄럽지 못하게 처리한 부분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양 씨는 “회사 측에서 늘 해 오던 주장이다. 근무 태만과 동료들과의 불화는 회사 측에서 꾸민 이야기다. 회사 측에서 노조 탈퇴를 종용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과 관련 일지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라고 반박했다.
양 씨의 복직을 둘러싼 소송에 관해 민주통합당 역시 적지 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환노위 소속 한 민주통합당 의원실 관계자는 “단순 민사 사건을 정치권에서 언급하는 게 조심스럽다”라면서도 “해당 내용이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받지 않은 과정은 의심스럽다. 관련 지청을 통해 추이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의 권 아무개 정책부장은 “EG테크지회는 회사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합동연설회에서 항의투쟁을 계획하는 등 회사와 내내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혼자 남은 양 씨가 회사에 손해를 입혀야 얼마나 입히겠나. 그동안 수많은 부당해고자 사례를 봐 왔지만 그 중에서도 질이 나쁜 방식”이라며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박근혜 당선인이 동생 회사가 연루됐다는 점에서도 양 씨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줬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잠깐 - ㈜EG테크는… 2000년 12월에 설립된 EG테크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위치한 사내 하청업체로 산 회수 및 기타 부산물을 재처리하는 업체다. 근로자 100여 명으로 구성된 이 회사는 지난해 12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EG그룹 계열사 내에서도 알짜배기로 알려져 있다. 2009년에 발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EG테크 주식의 87%는 EG그룹이, 나머지 13%는 박지만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사실상 박지만 회장이 최대주주인 셈이다. |
EG그룹 끊임없는 구설 박지만, ‘시세차익’에 윤창중과 친분설도 윤창중 코스닥 상장사인 EG그룹은 ‘박근혜 테마주’로 각광받으며 선거 때마다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때 박 회장과 그 측근은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면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광형 부회장은 지난 2007년 연말 대선 정국에서 회사 주식 12만 주를 팔아 34억 원 을 남겼다. 이 부회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 집무실에 근무했던 전력이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에도 자신이 보유한 16만 3000주를 주당 5만 3900원에 장내 매각해 87억여 원을 현금화했다. 박지만 회장 역시 2010년 10월부터 12월까지 주식 30만 주(4%)와 20만 주(2.67%)를 매도해 146억여 원을 현금화했다. 정치권 역시 박 회장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인수위 출범 당시 윤창중 대변인과의 친분설이 나도는가 하면 연말에 박지만 회장과 육사 37기의 관계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헌법재판소장으로 물망에 오른 목영준 전 재판관과 박 회장 부부의 친분설도 불거졌다. 한 종편 방송에 따르면 “박근혜 당선인 측이 1순위로 지목되던 목 전 재판관과 박 회장 부부의 친분을 우려해 2순위인 이동흡 전 재판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박 회장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에 대한 관심도 식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서 변호사의 작은 아버지이자 박 회장의 처삼촌인 서충근 씨가 전북 익산군산축협 조합장에 당선되면서 지역정가의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해당 지역은 지난 18대 대선 당시 전라북도 내 다른 지역들보다 박근혜 당선인 지지율이 높게 나오면서 서향희 변호사 집안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