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알려지지 않은 가족사를 공개했다. 명절 덕담과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고이민아 목사와의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딸이 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 머물렀다. 암이라는 게2참 고통스럽지 않은가. 좀 편한 곳에서 쉬라고 호텔을 잡아줬는데 어느 날 (딸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하루만 더 있으면 안 돼?”라고 부탁하더라. 그 순간 얼마나 어이없던지…. 며칠 후에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호텔 숙박 연장하는 일을 갖고선 부탁하는 전화를 하다니…. 그래서 “그까짓 돈이 문제냐. 그걸 왜 눈치를 보느냐”면서 나도 모르게 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죽기 전까지도 자기 때문에 아빠가 마음 아파할까봐 걱정만 하던 아이였다. 위암이라는 게 얼마나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운지 말도 못한다.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더라. 요즘도 딸아이의 개인 홈페이지에 가보곤 한다. 홈페이지에 아직도 딸의 사진이 있는데…. 이제 그만 그런 흔적들을 놓아야 하는데 잘 안 된다.
이 전 장관은 딸의 얘기를 꺼내면서 감정이 복받쳤는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고 이 목사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조기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명문 해스팅스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수재였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LA에서 지방법원 검사로도 활동하면서 국내에선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상징으로 유명세를 탔다.
또한 고 이 목사는 대학 졸업 후 김한길 현 민주당 의원과 결혼하면서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 5년 만에 원인 모를 파경을 맞은 데 이어 26세의 장성한 큰아들이 돌연사하면서 그의 삶은 크게 휘청거린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갑상선암에 걸려 실명 위기에 몰렸지만 미국인 남편과 재혼 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면서 죽기 직전까지 목회자 활동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저서를 남긴 그는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아버지의 딸답게 살려고 애쓰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중략) 좋은 성과를 내면 아버지가 나를 딸로서 인정해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고 고백하며 또 한 차례 궁금증을 낳기도 했다.
딸의 뒤늦은 고백에 대한 이 전 장관의 심경은 어떠할까.
―딸의 에세이를 읽은 소감이 궁금하다.
▲아주 최근에서야 딸의 속마음을 알았다. 자기가 공부를 좋아해서 한 줄 알고,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아버지 사랑을 받고 싶어서 그랬단 걸 뒤 늦게 안 거다. 유년시절 딸의 외로움을 내가 너무 몰랐다. 난 단지 글을 열심히 써서 창피하지 않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아무리 바빠도 주말만 되면 애들을 데리고 전국을 돌며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내가 참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전 장관은 “애들한테는 최소한 내가 고생한 걸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밤낮으로 글을 쓰며 일했다. 셋방살이 안 시키고 피아노며, 그때 그때 좋아하는 건 무엇이든지 다해주려고 했다”면서 “당시 문인들 중에 ‘크라운’ 자가용을 구입한 첫 번째 사람이 바로 나다. 자동차를 산 이유도 딸아이가 초등학교 등교할 때 편하게 해주려고 기사를 붙여서 보냈다. 그런 게 사랑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딸이) 공부를 잘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버지 사랑을 받기 위해 관심을 끌려고 했었다니 ‘내가 이 아이한테 정작 해준 게 없었구나’하고 뒤늦게 후회했다”고 덧붙였다.
―김한길 의원이 한때 사위였다. 왜 (딸과) 헤어지게 된 건가.
▲왜 그 둘이 헤어졌는지 아버지인 나도 아직까지 모른다. 그만큼 딸이 남을 배려할 줄 안다는 거다. 이혼 당시 온 매스컴이 진실을 추궁했지만 딸은 죽기 직전까지 헤어진 전 남편에 대해 좋은 말만 했다.
―결혼 당시 (이 전 장관이) 심하게 반대했다고 들었다.
▲그렇지 않다. 우리 집 애들은 결혼, 연애, 학과 선택 전부 자유였다. 자기가 자기 운명을 정해야지 않겠나. 다만 당시 딸의 나이가 어려서 “이제 갓 조기 졸업한 애가 무슨 결혼이냐. 너무 이르다. 차라리 연애를 해라”며 말려보긴 했다.
―딸의 결혼 스토리가 궁금하다.
▲ 이어령 전 장관은 가슴에 묻은 딸에 관한 사연을 들려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
이어 이 전 장관은 “결혼 스토리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딸은 이런 속사정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싶어 했다. 이제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다”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고 이 목사가 낳은 아들, 딸이 있다고 들었다.
▲지금 미국에 있다. 딸이 재혼한 상대가 외국인이었고, 그 사이에 낳은 손주들이다. 지금은 사위 가족들이 손주들을 보살펴 주고 있다. 가끔 손녀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는데 부끄러운지 못 들어오게 막아놓더라(웃음). 가끔 부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돌봐주곤 한다. 거기서 다 잘 지낸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 손주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던 이 전 장관한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도 있다. 이 전 장관은 병세 깊은 딸을 대신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린 손주들을 직접 돌봐왔다고 한다. 그만큼 가족에 대한 마음이 애틋했고, 딸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이 전 장관은 유명배우 장동건, 고소영 커플의 주례를 맡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전 장관이 주례 영순위로 꼽히는 이유는 성공한 결혼생활의 표본으로도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가족에서 영순위는 부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도 데이트 하시느냐’는 질문에 그는 “둘 다 80살 먹은 노인인데 무슨”이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같은 문학전공자들이다 보니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외국 여행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답했다.
―부부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부부관계라 함은 자극적인 게 아니라 ‘밥’ 같은 것이다. 그래야 오래 사는 거다. 사랑과 정이 있기 때문이지. 여기서 애(愛)라고 하는 건 오래가지 못한다. 반면 정(情)은 오래간다. 그런데 ‘정’만 있으면 안 된다. 단순한 물건에도 정이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부는 사랑과 정이 함께 있는 ‘애정’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게 제일 좋다.
인터뷰 말미에 새해 명절을 맞아 국민과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덕담 한마디를 부탁하자 이 전 장관은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다.
▲뱀은 가장 혐오하면서도 숭배받는 짐승이다. 뱀한텐 독이 있지 않은가. 독으로 죽을 수도 있고 약을 만들면 불치병도 고친다. ‘전독위약’이란 말이 여기서 나온 거다. 그러니까 우리 국민도 뱀의 해를 맞아 ‘불행과 슬픔이 언젠간 빛이 되고 행복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지냈으면 좋겠다. 안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란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너무 이상적으로 한국을 바꾸려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한참 고민하다) 아버지가 못했던 게 있을 거다. 그때 우리가 어렵고 가난했지 않은가. 때문에 아버지는 과정이 너무 험난하고 가난하니까 다 알면서도 독재를 했을 거다. 이제 박 당선인은 아버지가 못했던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비운에 간 아버지가 박 당선인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래, 네가 내 마음을 아는구나’ 하실 거다. 당시 정적들이야 모르지만 아버지 밑에서 직접 보고 들은 딸은 알 것이다. 남들은 ‘독재자의 딸’이라고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 잘할 잠재력이 있지 않겠는가. 난 그렇게 믿는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이어령의 자식농사 천재 아버지에 천재 자녀들
<장녀 고 이민아 목사는 알려진 대로 수재의 삶을 살다 목사로 극적인 전환을 거듭한 끝에 생전까지 많은 이들에게 교훈을 주고 떠났다.
장남 이승무 영화 감독 역시 영화계에선 천재로 알려진 인물. 콘텐츠를 개발하는 창의성이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이 감독이 직접 집필한 <워리어스 웨이> 시나리오 한 부를 들고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반지의 제왕> 프로듀서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화는 영화계에선 전설로 통한다. 당시 이 감독은 연출, 제작 경험이 없는 무명의 감독이었지만 종이 한 장으로 억대의 할리우드 자본을 끌어들였다.
아들을 향한 이 전 장관의 마음은 어떨까. 이 전 장관은 “우물을 단지 물을 얻기 위해서 파는 것보다는 호기심을 갖고 파는 과정이 중요하다. 내 아들이 그런 도전을 했다는 게 기쁘다”면서 “그런데 우리 아들은 내가 자기 이름 언급하는 거 싫어하는데…”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 전 장관의 아들이란 타이틀로 행여 선입견을 갖고 볼까봐 가급적이면 가족사를 숨기려 한다는 것. 아직도 영화 관계자 다수는 이 감독의 친부가 이 전 장관이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라고 한다.
한편 이 전 장관의 차남은 백석대 디자인영상학부 이강무 교수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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