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태균 씨 여론조사 비용 대납 의혹을 둘러싼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법적 부담이 항소심 무죄 선고로 한층 줄어들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23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7월 벌금 1000만 원과 추징금 2100만 원을 선고했던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핵심 증인인 명태균 씨의 전반적 진술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객관적 정황과도 맞지 않아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명 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거나 후원자 김한정 씨에게 비용 대납을 요청했다는 혐의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이날 판결 직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법원을 나섰다. 오후 2시 23분 서울고등법원 서관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지지자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이름을 연호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먼저 국민 여러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앞으로는 좀 더 완벽하게 처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재판 도중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결백을 믿고 투표해 준 서울시민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재판 기간 자신을 믿고 지지한 국민을 언급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분들 덕분에 버티면서 일하면서 재판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여야의 반응은 엇갈렸다. 박충권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3일 논평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항소심 무죄를 사필귀정이라고 평가하며 1심 판단이 바로잡혔다고 환영했다. 박충권 수석대변인은 “특검은 무리한 기소로 서울시정을 흔들고 시민을 불안하게 만든 데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날 항소심 판단에 유감을 표했다. 한 원내대표는 “명백한 증거와 증언에도 불구하고 1심과 정반대의 판결이 내려진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즉각 상고해 항소심의 법리 오인을 바로잡을 것을 촉구했다.

이번 판결의 정치적 파장은 먼저 국민의힘 내부 권력 구도에서 나타날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하며 주요 대권주자로 거론됐지만, 1심 유죄 판결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을 안고 있었다. 항소심 무죄로 부담을 일부 덜면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한동훈 무소속 의원 등과의 차기 대권 경쟁에도 관심이 쏠린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동안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당 운영 방향과 정치 노선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국민의힘이 2028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경쟁력과 중도층 확장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비당권파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의 연대 움직임이 구체화될지도 주목된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가까운 국민의힘의 한 전직 의원은 ‘일요신문i’와 통화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년 전당대회에 직접 출마할 수는 없지만, 유승민 전 의원과 연대해 독자적인 정치 노선을 구축하는 움직임이 이제는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정에서의 대정부 투쟁과 대여투쟁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 차원의 대여투쟁은 유승민 전 의원이 맡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하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차기 대권 기반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난 8월 3일 만나 보수 통합과 당 쇄신의 필요성에 공감한 바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13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으면 보수 재건에 힘을 더 보탤 수 있다며 한동훈 무소속 의원, 이준석·천하람 개혁신당 의원 등과 힘을 합쳐 당을 바꿔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과는 협력과 경쟁이 맞물려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7일 한동훈 의원을 보수 통합에 필요한 자산으로 평가했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한동훈 의원의 복당 논의에 선을 그은 만큼 두 사람이 당 쇄신과 지도부 견제를 위해 연대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승민 전 의원과 독자적인 정치적 기반을 구축한다면 차기 대권과 비당권파 내 주도권을 놓고 한동훈 의원과 경쟁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 일각에서는 오세훈 시장의 무죄가 확정돼 보궐선거가 치러지지 않는 상황이 오히려 현재 당 지지율 여건에선 유리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부동산 시장 혼란 문제 등으로 정부·여당을 향한 서울시민들의 민심이 다소 악화한 상황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는 것 자체가 당 지도부와 이재명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일요신문i’와 통화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유죄를 받아(시장직을 상실하더라도) 현재 당 상황으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부동산 이슈 때문에 서울 민심이 당으로부터 다소 멀어진 상황이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지 않는 것이 당에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신인규 정당바로세우기 대표는 통화에서 “국민의힘이 오세훈 서울시장이라는 카드를 확보하면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의 정치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져, 이번 판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인물은 한동훈 의원이라고 본다”라며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내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요 대권주자로 자리 잡으면서 민주당이 중도·보수층 확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김철준 기자 cj5121@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