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
이번 소송의 쟁점은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차명 주식이 상속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법률적 권리 행사 기간)이 지났는지 여부 등이었다. 재판부는 일부 청구에 대해서는 상속재산을 인정했으나 제척기간이 이미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했고, 나머지 청구에 대해선 해당 주식을 상속 주식으로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재판부가 이 회장 측 논리를 받아들인 것으로, 이 회장이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
서창원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상속재산으로 인정되는 삼성생명주식 50만 주 중 원고들의 상속분 합계인 17만 7732주에 대한 인도 청구는 10년의 제척기간이 경과돼 부적법해 각하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 판사는 “나머지 삼성생명 주식과 피고 이건희가 수령한 이익 배당금은 상속 재산이 아니며, 공동상속인들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기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원고 측이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낸 삼성생명 주식 21만 5054주에 대한 인도 청구도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하고, 나머지 삼성전자 주식 등에 대해서는 상속 재산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했다.
재판 결과에 대해 원고 측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의 차동언 변호사는 “이 같은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판결 이유를 잘 살펴보고 의뢰인과 협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피고 측인 법무법인 세종의 윤재윤 변호사는 “예상했던 결과”라며 “사실관계와 법리 측면에서 볼 때 합당한 결론”이라고 밝혔다.
CJ와 삼성 측 모두 이번 소송을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개인 소송으로 치부하며 애초부터 선 긋기를 해 왔지만, 이번의 형제간 다툼은 삼성-CJ의 기업 간 대결로 번졌다. 지난해 2월 삼성물산 직원의 이재현 CJ 회장 미행 의혹 사건으로 두 그룹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후 삼성은 물류운송 업체를 CJ CLS에서 다른 회사로 바꿨으며, CJ는 보안업체를 삼성 계열사인 에스원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변경했다. 지난해 11월 고 이병철 회장 추모식 때는 따로 제사상을 차리며 대립은 극에 달했다.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듯 서창원 판사는 “선대 회장의 유지 중에는 이 사건에서 논의되는 유지뿐 아니라 일가가 화목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뜻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1심 판결 결과를 떠나 원고와 피고 일가가 모두 화합해서 함께하시길 바란다”는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CJ와 삼성 측 모두 “공식적인 입장을 낼 사안이 아니다”며 이번 소송과 관련한 코멘트를 삼갔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이슈로 대기업이 유독 어려운 시기에 대기업들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공을 부각시키지는 못할망정,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들이 유산을 둘러싸고 제살 깎아먹기 식 이전투구를 보이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