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재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지난 23일 단행한 2027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정용진 회장을 이마트 대표이사로 내정하고 주력 계열사 대표와 경영전략실 핵심 임원을 대거 교체했다.
정용진 회장의 이마트 대표이사 복귀는 2013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그룹 중추인 이마트 대표는 김홍극 신세계까사 대표가 내정됐다. 김 대표는 이마트와 이커머스 자회사 SSG닷컴 대표를 겸직한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경영전략실에서도 인사와 감사를 총괄하는 경영지원총괄에 최택원 전 SSG닷컴 대표가 발탁됐다. 홍보와 대관 등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대외협력본부장에는 박승학 전 이마트 판매본부장이 선임됐다.

재계에서는 지난 2년간 이마트의 체질 개선을 이끌어온 한채양 대표의 퇴진에 주목 중이다. 한 대표는 경영전략실 관리총괄과 전략실장 등을 거치며 이명희 총괄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그룹 내 대표적인 전략·재무통으로 알려져 있다. 한 전 대표는 2023년 9월 이마트가 창사 이래 첫 연간 영업적자 위기에 직면했을 당시 ‘구원투수’로 투입돼 이마트와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등 오프라인 유통 3사 통합 대표를 맡았다.
한채양 대표는 취임 이후 비효율 신사업을 정리하고 통합 매입과 점포 리뉴얼 등 본업 경쟁력 회복에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상반기 이마트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171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4% 늘었다. 쿠팡 등 이커머스 대두에 부진을 거듭 중인 오프라인 대형마트 업계에서 드문 실적 개선이다.
앞서 지난 4월에는 2023년 말 한채양 대표와 함께 그룹 컨트롤타워인 경영전략실장 자리에 올랐던 임영록 전 사장도 사임했다. 경영전략실장 자리는 이후 6개월 넘게 공석으로, 정용진 회장이 현안을 직접 챙기는 그림이다. 2년 전 그룹 위기 수습을 위해 투입됐던 재무·관리형 인사들이 모두 일선에서 퇴장하게 됐다.
빈자리는 정용진 회장 직할 조직과 이마트 현장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정 회장은 이번 조직 개편에서 경영전략실과 이마트 사이에 있던 중간 관리 조직인 ‘이마트부문 기획전략본부’를 폐지했다. 중복 보고 체계를 없애 실행력을 높인다는 취지지만 오너가 이마트 경영을 직접 지휘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인사 배치 역시 정용진 회장의 경영 구상을 뒷받침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해석이 따른다. 지속적인 적자를 겪고 있는 SSG닷컴의 최택원 대표가 경영전략실로 이동한 것이 대표적이다. SSG닷컴은 3조 4000억 원을 쏟아 지마켓을 인수했음에도 수년째 누적 수천억 원대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이번 개편에서 그룹 내부 통제를 맡는 감사팀이 최 부사장 산하로 배치되면서 친정 체제의 내부 장악력이 한층 강화되기도 했다.

자본시장에서 재무통들의 퇴장과 정용진 회장의 이마트 대표 등판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배경에는 최근 단행된 대규모 해외 투자가 자리 잡고 있다. 정 회장이 지난 6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마트의 100% 자회사 신세계프라퍼티가 이번 인사 직전 조 단위의 차입 투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신세계프라퍼티는 지난 10월 6일 미국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주도하는 미디어 기업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 인수전에 10억 달러(공시 기준 1조 3596억 원)를 출자해 합병 법인 신주를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화성 국제테마파크(스타베이시티) 개발 사업에 워너브라더스의 글로벌 지식재산권(IP)을 안정적으로 유치하고 콘텐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라는 설명이다.
재무적 관점에서는 부담이 적지 않다. 신세계프라퍼티가 지난해 스타필드 운영 등으로 창출한 연간 영업현금흐름은 1504억 원 수준이다. 1년 치 현금창출력의 9배가 넘는 자금을 해외 미디어 기업 소수지분 투자에 투입한 셈이다. 자체 현금이 부족한 신세계프라퍼티는 전체 투자금의 약 70%인 1조 원가량을 메리츠증권을 통한 사모사채 발행으로 조달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이미 1조 6868억 원의 총차입금을 보유한 상태에서 단숨에 차입금 규모가 2조 7000억 원대로 불어나게 됐다. 신세계프라퍼티는 총사업비 10조 원 추산 규모의 화성 국제테마파크를 비롯해 청라 돔구장 복합쇼핑몰, 동서울터미널 현대화 등 여러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모회사인 이마트 역시 본업은 흑자였으나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SCK컴퍼니가 2분기 영업손실 184억 원을 기록하는 등 2분기 연결 기준으로는 430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향후 개발 사업 및 해외 투자에 따른 자금 부담이 모회사인 이마트의 현금흐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워너브라더스 지분 출자를 비롯해 화성 테마파크와 청라 돔구장 등 조 단위 자금이 묶이는 대형 사업들은 모두 정용진 회장이 주도해 온 프로젝트로, 신세계프라퍼티의 사모사채 발행에 이마트가 지급보증을 섰을 가능성도 높다”며 “재무적 완충 역할을 하던 전략통들이 물러나고 오너 직할 체제가 강화된 만큼 향후 자회사 유동성 부담이 커질 때 이마트 본업의 현금흐름이 신사업 지원에 동원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용진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계열분리를 추진 중인 정유경 회장의 신세계백화점과 뚜렷한 온도차를 보인다는 평가다. 신세계는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전년 대비 121.9% 늘어난 1671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핵심 점포 리뉴얼 효과와 외국인 매출 증가에 힘입어 영업이익이 두 배 이상 늘었고 주가 역시 상승세다.
정유경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호실적을 견인한 박주형 신세계백화점 대표이사 사장을 유임시켜 본업 안정성을 유지하는 한편 성장이 다소 정체됐던 뷰티와 리빙 부문에는 CJ올리브영 대표를 지내며 10년간 성장을 주도했던 허민호 전 대표를 영입해 신세계까사 대표와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부문 대표를 맡겼다. 또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패션과 코스메틱 부문으로 분리해 패션부문에는 1980년대생인 김덕주 전 해외패션본부장을 발탁했다. 내부 인사 중심의 직할 체제를 구축한 정용진 회장과는 차별화된 모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용진 회장이 13년 만에 등기이사 복귀라는 배수진을 치고 친정체제를 구축한 만큼 이제는 변명의 여지없이 본인의 경영 능력을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이사 취임에 이어 이번 이마트 대표이사 내정을 통해 그룹 본업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미래 신사업 전략을 신속하게 실행해, 시장과 주주의 평가를 받는 완전한 책임경영을 실현하고자 한다”며 “정용진 회장은 26년 신년사에서 ‘신세계가 성장해온 과정은 편견을 깨온 역사’라고 말한 바 있다. 정 회장이 책임 있게 진두지휘하는 신사업 역시 신세계가 축적해온 역량을 글로벌 무대로 확장해 그룹의 성장을 견인할 새 역사가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journalist@ilyo.co.kr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