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투스는 자녀들이 이렇게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브라질의 훌륭한 사회복지정책 덕분이라고 믿는다. AFP통신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가 누리지 못했던 모든 것을 이제 우리 아이들은 누릴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산투스의 이야기는 룰라 대통령이 왜 다시 브라질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처럼 룰라의 정치적 기반은 단순히 저소득층에 현금을 지급해 주는 복지 정책만으로 다져진 게 아니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자녀가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부모 세대가 겪었던 빈곤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믿음 역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룰라는 유효투표의 51.79%인 6425만 6232표를 얻어 우파 후보인 보우소나루를 꺾고 연임에 성공했다. 보우소나루는 48.21%인 5982만 6041표를 획득했으며, 두 후보의 표 차이는 443만 표였다. 무엇보다 1차 투표에서 2위에 그쳤던 룰라가 결선에서 승부를 뒤집었기에 결과는 더욱 짜릿했다.
다만 이번 승리를 브라질 국민 전체가 룰라의 정책과 정치적 노선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오히려 서로 다른 불만과 기대를 가진 유권자들이 결선투표에서 모두 그를 선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이들이 룰라 정부에 거는 기대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브라질 북동부의 빈곤층 주민들은 과거보다 나아진 생활 여건과 자녀 세대의 교육 기회 등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이 가져온 변화를 기억해서 표를 던졌다. 그런가 하면 일부 고령층은 정권이 바뀔 경우 연금과 의료 혜택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룰라를 지지했고, 청년층은 극우 정치의 재등장을 경계하는 움직임 때문에 룰라에게 힘을 보탰다.

룰라의 정치적 기반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브라질 북동부의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이 가장 심각했던 곳으로, 룰라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산투스의 가족처럼 부모 세대는 극심한 빈곤을 겪었지만, 자녀 세대는 대학 교육을 받고 전문직에 진출한 경우가 눈에 띄게 많다.
이를 가능케 한 대표적인 룰라 정부의 정책은 저소득층에 현금을 지원해 주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인 ‘보우사 파밀리아’였다. 기본 지원금은 1인당 164헤알(약 4만 원)이며, 7세 미만 아동에게 지급되는 추가 지원금은 아동 한 명당 173헤알(약 4만 3000원)이다. 이 밖에 임신부나 7~18세 아동 및 청소년에게도 한 명당 58헤알(약 1만 5000원)이 추가 지급된다. 이 밖에 제공되는 혜택으로는 아동 예방접종을 비롯해 임신부 산전 진료 등 보건 서비스 등이 있다.
이처럼 룰라 정부는 그간 다양한 사회정책을 통해 저소득층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고,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데 힘을 쏟아왔다. 이런 정책의 정치적 효과는 지원금을 받는 순간에만 반짝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빈곤층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고등교육을 받고 좋은 직업을 얻는 변화가 나타나면 정부에 대한 평가도 자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은 단순히 얼마를 받았는지가 아니라 자신과 자녀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기준으로 정치인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복지정책의 성과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마라냥주의 전체 빈곤율이 낮아졌다고 해서 그 변화가 온전히 ‘보우사 파밀리아’ 덕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제성장과 노동시장 변화, 교육 확대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과 안정적인 중산층 생활을 누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지역별 투표 결과를 살펴보면 보다 복합적인 그림이 나타난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브라질 매체 ‘UOL’은 ‘보우사 파밀리아’ 수혜 인구 비중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를 세 그룹으로 나누고 룰라의 득표율 변화를 비교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복지 수혜 비중이 낮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룰라의 득표율은 2022년 42.7%에서 2026년 44.2%로 오히려 상승했다. 2026년 1차 투표와 비교해도 득표율은 결선투표에서 7.2%포인트(p) 높아졌으며, 이들 지역에서의 득표수는 유효투표의 62.4%를 차지했다. 반면 복지 수혜 비중이 높은 지역이 전체 유효투표에서 차지한 비중은 8.3%에 그쳤다.
이 분석은 룰라의 승리를 단순히 복지 수혜자들의 지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나타낸다. 그보다는 룰라가 자신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지역에서 표를 확보한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다.
이에 룰라의 재선 과정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집단은 고령층이다. 브라질의 고령 유권자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들이 선거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크게 늘고 있다. 브라질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0세 이상 유권자는 2010년 이후 74% 증가해 전체 유권자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고령층 유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상생활을 지탱하는 제도의 지속성에 있다. 요컨대 연금이 안정적으로 지급되는지,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정부의 복지 지출이 축소되지 않을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로이터’가 인터뷰한 호니 아마랄(71)은 보우소나루가 집권하면 정부의 의료 및 연금 지출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룰라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60세 이상인 사람들은 돌봄을 받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저소득층인 아나 두스 헤이스(76)는 “1차 투표 때는 투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면서 내 한 표가 중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내 한 표가 룰라에게 필요한 표일지도 모르지 않는가”라고 덧붙였다.
물론 모든 고령 유권자가 룰라를 지지하는 건 아니다. 은퇴한 공무원인 이살티나 호자 페이쇼투(73)는 보우소나루가 아버지 보우소나루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그에게 한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령층 내부에서도 연금과 공공보건을 중시하는 쪽이 있는 반면, 우파 후보의 정책에 더 기대를 거는 쪽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고령층의 규모가 커지면서 의료 서비스와 연금, 사회보장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정치적으로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청년층은 어떨까. 룰라의 결선투표 역전 과정에서 또 다른 핵심 변수가 된 집단은 다름 아닌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정치에 참여한 청년들이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브라질의 역사학자 아나이스 플레셰와의 인터뷰를 통해 젊은 세대가 거리로 나와 집회에 참가하는 모습은 룰라의 노동자당 지도부조차 놀라게 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위기감에 청년들은 소셜미디어와 왓츠앱으로 집회를 조직하고 투표 참여를 독려하며 선거 막판 결집에 나섰다. 청년들의 이런 움직임을 지켜본 룰라도 가만있지 않았다. 룰라의 최측근인 앙드레 자노네스 의원은 1차 투표 직후 왓츠앱 채널 ‘룰라의 군대’를 개설했고, 이 선거 전략은 적중했다. 채널 개설 첫날에만 6만 명의 팔로어들이 몰려들었으며, 결선투표 당일에는 10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이에 비해 보우소나루 측의 유사 채널 참여자는 210만 명에 불과했다).
이 채널은 선거 기간 동안 지지자들이 선거 관련 콘텐츠를 공유하거나 확산하는 통로로 활용됐다. 가령 채널 운영자들은 영상과 음성 메시지를 제작한 후 지지자들에게 이를 다른 온라인 플랫폼에 공유하도록 독려했다. 지지자들이 단순히 후보의 메시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거운동의 확산 주체가 됐던 것이다.
룰라 자신도 소통 방식을 바꿨다. 평소 휴대전화로 직접 소통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그는 1차 투표에서 패배한 뒤 선물 받은 갤럭시폰으로 셀카 형식의 짧은 영상을 촬영한 후 공유하기 시작했다. 정제된 연설이나 공식 홍보물 대신 유권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영상으로 온라인 소통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심지어 어떤 영상은 23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계 부채도 심각하다. 신용정보회사 ‘세라사’에 따르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는 브라질 국민은 약 8400만 명, 기업은 930만 곳에 이른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경제지표와 체감경기 사이에 느껴지는 괴리감을 설명해 준다. 실업률이 낮아지고 임금이 오르더라도 이미 쌓인 빚을 갚는 데 소득의 상당 부분을 지출해야 한다면 생활이 나아졌다고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룰라 정부는 네 번째 임기 시작과 동시에 가계부채 경감과 소상공인 지원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은행이 보유한 부실 가계대출을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하는 방식의 채무 경감과 일부 소상공인의 세금 체납 부담을 줄이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채무 경감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가계가 다시 고금리 대출에 의존하게 되면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국가부채 역시 중요한 변수다. 룰라 정부는 최저임금을 물가보다 빠르게 인상하고 복지 지출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연금과 사회보장 지출이 증가하면 재정 부담도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가 복지 확대와 재정 건전성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을지가 룰라 새 임기의 핵심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브라질 국민들은 다시 룰라를 선택했지만, 그 선택은 과거에 대한 평가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