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 아무개 씨가 지난달 4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지난 1월 25일, 국정원 여직원 김 씨는 3차 소환조사에서 “내 업무는 진보 성향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종북 관련 글들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까지의 경찰 발표에 따르면, 김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오늘의 유머(오유)’ 사이트에 91건의 글을 올리고 244회의 찬반 표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 평일 업무 시간에 집중된 것이었다.
이때 김 씨가 사용한 아이디는 모두 16개였는데 그중 5개는 본인이 아닌 ‘제3자’에게 제공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또 다른 국정원 직원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국정원 측은 “김 씨가 대북 심리전을 위해 친구 명의를 빌린 것이다. 간첩을 잡기 위해서 협조할 마음이 있었던 일반시민”이라고 반박했다.
닉네임 ‘차익거래’는 지난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8월 31일, 오유 유머게시판에 수상한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대부분 현 정부 정책을 옹호하고 야당에 비판적인 내용의 시사적인 내용이었다. 유머게시판에 시사 글이 동시에 올라오는 것이 이상해 당시 화면을 갈무리(화면캡처) 했었다. 그 때는 어떤 의미인 줄 몰랐지만 국정원 여직원이 사용했다는 아이디가 언론에 공개된 이후, 비교해 보니 아이디 가운데 2개가 국정원 여직원의 아이디였다”라고 말했다.
그가 기자에게 보내온 화면을 살펴보면, 대선을 100여 일 앞둔 지난해 8월 31일, 오후 4시 32분부터 4시 33분까지 불과 1분 사이 14개의 글들이 한꺼번에 유머게시판에 올라왔다. 시간 간격은 3초, 4초, 7초 간격으로 거의 한꺼번에 올려진 것이다. 이 가운데 ‘김 박사님이 천안함 발표 전에 봤어야 할 기사’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토탈리쿨’, ‘MB가 독도에 간 진짜 이유 이제 밝혀본다’는 글을 쓴 ‘진짜진짜라묜’의 경우 국정원 여직원이 직접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아이디들이다.
혹여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글의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우연히 국정원 여직원 글도 포함됐던 것은 아닐까. 앞서의 닉네임 ‘차익거래’는 “이상한 것은 해당 ‘아이디묶음’의 가입순번(사이트에 가입한 순서를 매긴 번호)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라며 “상식적으로 가입시기가 같은 이들이 ‘우연히’ 같은 게시판에 모여 비슷한 성향의 글을 남기고 동시에 찬반 의사를 표시할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다. 국정원 여직원이 이용한 또 다른 아이디거나 국정원 활동을 도운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음이 의심 된다”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사실은 경찰 역시 1월 중순 제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 전까지 경찰은 김 씨가 최초 제출한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통한 혐의 입증에 수사 초점을 맞췄고 키워드 역시 대선후보 3명과 정당 이름이 들어간 게시물에 한정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아이디묶음의 상당 부분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찰이 이 부분 역시 놓치고 있다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기업에서 IT개발을 담당하는 이 아무개 씨는 “이번에 발견된 아이디들의 IP 대역을 역추적하면 스마트폰 MAC 주소와 연결되는 아이피들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글을 쓰거나 찬반의견을 표시한 셈”이라고 전했다. 당시 김 씨는 모친 명의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를 경찰에 제출하지 않아 김 씨의 스마트폰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찰이 국정원 여론조작 실체를 파악하는 데 손을 놓은 채 ‘짜맞추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통합당 정보위 소속 한 의원은 “김 씨의 오피스텔은 유선인터넷이 설치돼 있지 않아 인터넷 접속을 위해서는 휴대폰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컸다. 경찰이 초기에 김 씨의 휴대폰을 확보해 수사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그 사이에) 어떤 증거 인멸 과정이 있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8월 31일 1분 사이에 10여 명의 이용자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대거 유입된 흔적. 이 중 ‘토탈리쿨’과 ‘진짜진짜라묜’은 국정원 여직원이 사용한 아이디다.
수서경찰서는 설날을 전후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맨 처음 수사를 지휘했던 권은희 수사과장은 지난 3일 송파경찰서로 전보 발령이 난 뒤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또 이 사건과 관련해 고소·고발을 당한 이들은 국정원 여직원을 포함해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한겨레> 기자, 오유 사이트 운영자인 이 아무개 씨, 김용판 서울경찰청장까지 5명까지 늘어나 해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릴 가능성이 많다.
민주통합당 당직자들이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국정원 여직원 김 씨가 거주하는 오피스텔 현관문을 지키고 있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국정원 측은 이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말씀드릴 게 없다”라고 선을 그었는데 논란이 되는 국정원 직원의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해서는 “국정원 내부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권고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제재하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예전에도 국정원 요원들은 신문 독자투고란 등을 통해 (현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남심리전’을 전개해 왔다. 국정원 업무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온라인 심리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영역이 옮겨진 것일 뿐 국정원이 대선개입을 했다는 것은 지나친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원의 모든 업무가 일종의 특수 활동으로 철저히 비밀로 부쳐지는 만큼 명백한 팩트가 드러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통합당 한 재선 의원은 “사건에 대한 팩트가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새누리당이 계속 정보위 소집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도 무엇인가 켕기기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냐는 국민적 의혹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국정원 심리정보국은 뭐하는 곳? 방첩 활동 대북심리전 담당 지난해 12월 17일, 원세훈 국정원장은 정보위 비공개 회의에 참석해 “국정원 여직원 김 씨는 국정원 제3차장 산하의 심리전단 소속”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장이 언급한 심리전단은 2011년 11월경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돼 현재 70여 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주로 방첩이나 대북심리전에 관한 업무를 담당해왔지만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남심리전’에 관한 필요성도 강하게 대두됐다고 한다. 이는 정권 초기인 2008년 촛불집회 직후 종북 세력의 활동이 활발해졌다고 평가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심리정보국 소속 요원들은 개인별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받아 활동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스마트폰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은 최근 온라인까지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필수품이 됐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국정원 여직원의 불법선거운동에 관한 첩보를 입수한 것도 조직이 확대개편 된 직후인 2011년 연말이었다. 민주통합당 정보위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원 여직원 김 씨는 아침 9시부터 6시 20분까지 해당 사이트에 로그인 해 찬반 의사를 표시하고, 직접 글을 남기기도 했다. 반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사이트에서 활동한 한 흔적이 별로 없었다. 경찰 조사 당시 김 씨는 “오전 11시에 출근해 오후 2시 퇴근했다”고 밝혔다. 출근 시간 외 나머지 시간은 외부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 측은 국정원 여직원 개인이 아닌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이 모두 비슷하게 활동했을 것으로 보고 심리정보국 요원들의 업무 영역이 정확히 어느 사이트의 어느 범위까지인지에 관한 국정조사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보위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실 관계자는 “국정원 여직원의 글을 분석하면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별로 활동하지 않았다. 이는 국정원 여직원의 활동은 정상적인 근무 시간에 이뤄진 국정원 직원으로서의 업무라고 봐야 한다”라며 “현재 이 여직원이 오유뿐만 아니라 다음 아고라에까지 활동한 흔적이 속속 발견되고 있지 않나. 실제로는 포털사이트에 댓글을 다는 방법 등을 통한 여론조작 활동도 광범위하게 했을 것으로 보고 경찰 조사를 지켜보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
왜 ‘오유’가 타깃이었나 추천 10개 누르면 ‘베스트’로 이동 ‘오늘의 유머’는 인터넷 상의 재미있는 자료를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해 종합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오유’ 이용자들은 대체로 진보적이거나 야당 성향이 강한 것으로 많이 알려지는데 이 때문에 보수 성향의 이용자들이 많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도 자주 비교되곤 한다. 하루 평균 이용자 100만 명이 넘는 오유에 몇몇이 찬반 표시를 하는 것만으로 여론형성이 가능할까. 이용자들은 오유의 독특한 사이트 운영 방식에 답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유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그 글을 읽고 추천이나 반대를 누르는데 추천이 10개 이상, 반대 3개 이하면 베스트게시판으로 옮겨지면서 조회수가 급격하게 늘어난다고 한다. 200~300명이 보는 수준에서 수천 명까지 글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다시 추천이 100개, 반대가 10개 이하가 되면 몇 만 명에게 노출되는 베오베(베스트 오브 베스트) 게시판으로 옮겨진다. 이 과정에서 10여 개의 아이디만으로도 수천 명이 보는 게시판에 자신의 글을 노출시킬 수도 있고 또 특정 글에 대거 반대 의사를 개진함으로써 베스트 게시판으로 진입하게 못하게 하는 활동으로 특정 여론을 형성시킬 수 있게 된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
작업 정황 게시글 어떤 게 있나 정치 게시물에 ‘찬반’ 클릭! ‘구글링’을 통해 국정원 여직원 김 씨 아이디를 키워드 검색한 결과 상당히 많은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오유 사이트 내에서 필터링 활동을 했던 ‘차익거래’의 정치관련 게시물에도 국정원 여직원이 집중적으로 활약한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가 작성한 ‘박근혜 대선캠프 전 선대위장 홍사덕 불법자금 수수 시인이군요’ ‘위기의 공주님’ ‘촛불좀비집회의 선구자, 광우병 괴담의 진짜 배후’ ‘최강의 선거여왕’이라는 게시물에서도 국정원 여직원이 사용한 아이디의 흔적이 포착됐다. 그런가 하면 국정원 여직원 아이디로 밝혀지진 않았지만 유기적으로 움직인 ‘아이디묶음’의 흔적 역시 문재인 후보에게는 불리하게, 박근혜 후보에게는 유리하게 활동한 내용이 눈에 띈다. 이들이 남긴 글 가운데는 현 정권에 우호적(“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순위가 전 세계 114개국 중 19위로 지난해보다 5계단이나 상승했다. 솔직히 가카가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이거나 대북 관련 소식(“옛날부터 한총련이라면 아주 지긋지긋한데, 얘네들 홈페이지 폐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이 대부분이다. 대선개입 의혹의 짙은 글들도 남아 있었다. 닉네임 ‘이머꼬’가 남긴 ‘달면 삼키고 쓰면 카악~ 퉤’라는 제목의 글 중에는 “민주(통합당), 통진당과 연대파기 돌입. 역시 통수(뒤통수)는 그들(통합진보당)의 종특(종족특성)이다. 그나마 민주당이 한 짓 중에 제일 낫다”라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뽕필’이라는 닉네임은 “자기들 경선조차 개판 오 분 전으로 만들어놓았는데, 그런 세력들이 무슨 정부운영은 잘 하겠나. 이번 대선은 최선이 아닌 차선을 뽑는 선거라고 하던데, 최소한 국정운영능력이 있다는 정도는 보여줘야 할 터”라고 꼬리말을 남기기도 했다. 또 “국보법 없애면 안 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대한민국을 남쪽정부라 부르는 사람(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를 지칭)이 대통령 하겠다고 나서는 판인데 국보법마저 폐지하면 대한민국이 남아나겠나” “나꼼수 걔들 헛짓 할 때 맛이 갈 거 눈치 챘다. 나꼼수가 설치고 다니면 요새는 역효과다. 막말 때문에 말아먹은 거 벌써 잊었냐”는 식의 직접적인 비난의 글도 포함돼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