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명박 대통령 내외에게 무궁화대훈장(왼쪽 원안)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자 비판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진은 13일 손경식 허창수 한덕수 등 경제인들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과 환담장으로 향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대통령령으로 갖가지 종류의 훈장령이 공포됐다. 대표적인 게 1949년 4월 27일에 공포된 ‘건국공로훈장령’과 1949년 8월 13일에 공포된 ‘무궁화대훈장령’이다. 훈장령에 의하면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건국에 뚜렷한 공로가 있거나 국가 유지의 기초를 공고히 함에 있어 기여한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고, 무궁화대훈장은 ‘우리나라 최고훈장으로서 대통령이 이를 패용할 수 있으며 우방 원수에게도 수여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훈장 중에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두 훈장을 이승만 전 대통령은 모두 받았다. 1949년 8월 15일 건국공로자 표창식 자리에서다. 훈장령이 공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스스로 훈장을 수여한 것이다.
당시 <동아일보> ‘삼천만 겨레의 훈장 정부통령에 봉정’ 기사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나는 이 같은 훈장을 받기에는 적당하지 않으며 또 원하는 바도 아니다. 이러한 영광은 당연히 속하여야 할 사람에게 다시 말하면 개성 사건의 십용사(육탄 십용사) 같은 이에게 속해야 할 것”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힌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받은 훈장은 이 두 개에 그쳤다.
이 전 대통령 이후 무궁화대훈장은 직전 대통령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당선인에게 훈장 수여 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관례화됐다. 이에 무궁화대훈장은 대통령 취임식 혹은 취임 직후에 빠지지 않는 훈장이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이승만 전 대통령보다 2배 많은 훈장을 스스로 받았다. ‘보국훈장 통일장’, ‘태극무공훈장’, ‘수교훈장 광화장’, ‘수교훈장 광화대장’이 그것이다. 보국훈장 통일장은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군인에게 주는 훈장으로 보국훈장 중에서는 1등급에 해당된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 통일장을 받았다. 당시 통일장을 받은 사유에는 ‘5·16 혁명으로 구악을 일소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서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정에 크게 기여했음’이라고 적혀져 있다.
1964년에 받은 수교훈장 광화장과 1975년에 받은 수교훈장 광화대장은 ‘대통령으로서 정상외교 등으로 국위선양에 기여했다’는 이유가 붙여졌다. 수교훈장 중 광화장과 광화대장은 모두 1등급에 속하지만, 광화대장은 수상급 이상에게 주는 훈장으로 격이 좀 더 높은 편이다.
박 전 대통령도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같이 개인의 최고 명예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바 있으나 ‘셀프 훈장’은 아니었다. 10·26 시해 사건으로 사망한 후인 1979년 11월에 건국훈장을 받았던 것. 하지만 후에 박 전 대통령의 친일 논란이 불거짐에 따라 건국훈장을 취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개의 훈장을 스스로 받았다. 재임 시절인 1983년 3월 수교훈장 광화대장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동시에 받았던 것.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훈장을 스스로 수여하는 일은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취임 때 훈장을 받기보다 5년간의 노고에 대해 치하받는 의미에서 퇴임할 때 받는 게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무궁화대훈장을 퇴임 직전에 받는 것으로 결정했다. 의도는 문제가 없었지만 무궁화대훈장을 스스로 수여하는 모양새가 되어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에게 “집안 잔치를 벌이는 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재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훈장 수여를 결정하지 않아 이 대통령도 임기 말 자기 손으로 훈장을 받아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셀프 훈장 책임을 노 전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는 상태다. 경제정의실천연합 정치입법팀 김상혁 간사는 “전 정권을 이유로 들어 셀프 훈장을 합리화시키는 것 무의미하다.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셀프 훈장이라면 이러한 논란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