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증시 동원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국민연금 측은 “투자원칙대로 운용할 뿐”이라며 펄쩍 뛴다. 정치 외풍에 국민연금이 동원됐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드러난 적도 없다. 그래도 바깥의 시선은 곱지 않은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기금운용위원회다. 위원 20명 가운데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 측 당연직이 6명이고,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전경련 등 사용자 측이 각 1명씩, 한국노총, 민주노총, 공공서비스연맹 등 근로자 측이 각 1명씩, 농협 및 수협중앙회 등 6개 지역가입자 대표가 각각 1명씩, 관계전문가(보건사회연구원장, 한국개발연구원장) 2명 등이다. 근로자 측 3명을 제외하면 모두 정부가 인사권이나 규제권을 가진 단체 소속이다. 기금운용의 실무평가를 담당하는 실무평가위원회의 구성도 거의 같다. 실제 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의 인사권도 국민연금 이사장이 운용본부장을 통해 행사한다.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거대 금융자본이 없는 국내 상황도 논란의 원인이다. 2012년 6월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의 총 운용규모는 주식 87조 원, 채권 249조 원 등 346조 원에 달한다. 국내로만 따지면 주식 62조 원, 채권 232조 원이다. 국내에서 주식을 가장 많이 운용하는 삼성자산운용이나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삼성생명이나 시중은행도 국민연금과 비교하면 ‘어른 앞에 선 아이’와 같다. 게다가 자금 유출입이 수시로 일어나는 민간의 투자금과 달리 국민연금 적립금은 매월 안정적으로 쌓이고, 매달 나가는 연금지급액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익명의 펀드매니저는 “막강한 자금력 덕분에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산다는 소문만 나도 주가가 오른다”면서 “특히 국민연금은 한 번 주식을 사면 오래 보유하는 장기투자자여서 해당 종목의 미래에 대한 담보 성격도 띤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늘 국민연금에 군침을 흘린다. 주가가 오르면 내수경기 부양은 물론 국민들의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율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대선에 이어 지난 해 대선에서도 ‘코스피 3000’은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었다.
국민연금의 ‘정치 동원’ 논란의 백미는 지난 대선 국면에 불거져 나왔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면서 재벌들의 제왕적 경영을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통해 견제하자는 아이디어 때문이다. 문제는 견제해야 할 재벌들의 제왕적 경영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재벌 견제가 궁극적 수익자인 국민연금 납입자에게 과연 어떤 혜택을 가져다주느냐다.
모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고객의 돈을 받아서 대신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게 투자자의 이익인데, 투자 이익과 재벌 견제라는 공익적 목적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며 “아울러 재벌의 어떤 행위가 경제민주화에 반(反)하는지, 주주들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공익차원에서는 논란이 있는 경우는 어떤지에 대한 가치판단도 모호하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문제는 여론의 반대가 거세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국민연금 정치적 동원 의혹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해 10조 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은 이 국채의 주요한 인수 후보 가운데 하나다. 합리적 투자일 수 있겠지만 정부의 재정 마련을 위해 국민연금이 동원된다는 비판이 일 수 있다.
박근혜 당선자의 공약인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 모집에도 국민연금이 참가할 것이란 관측도 많다. 이밖에도 10년 이상 끌고 있는 우리금융 민영화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주요한 투자자로 참여해야 한다는 제안들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공적자금 회수프로그램의 핵심이다.
한 증권사 고위임원은 “기금운용본부에서는 나름대로 소신과 원칙을 바탕으로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워낙 큰 ‘투자 공룡’이다 보니 각종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서 “기금운용을 정부로부터 완전 독립시키고, 섣불리 기금운용 원칙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열희 언론인
한국증시 ‘왕따’ 되나 선진도 신흥도 아닌 넌 누구냐 한국 증시가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왕따’를 당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진국도 신흥국도 아닌 애매모호한 위상에다,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 타격, 투자규제 강화 등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올해 외국인 주도의 증시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최근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14000을 넘어서면서 금융위기 발발 전 최고 주가수준(2007년 10월)을 거의 회복했다. 유럽 재정위기를 겪은 독일과 영국도 금융위기 이전 주가의 95%선까지 되찾았다. 일본도 지난해 말부터 주가가 급등하며 최근 1년 상승률이 25%에 달한다. 신흥시장의 상징인 중국도 8%대 성장을 유지하면서 선진국들의 위험선호 자산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와 비교해 2007년 10월 2070에 달했던 코스피는 2000선 아래다. 지난해 4월 2231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주가는 11% 이상 미끄러졌다. 원화 강세가 진행되면서 수출가격경쟁력은 떨어졌는데, 독일 일본 등 경쟁국 주력업체들은 속속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의 종합은 올해 시장 상장사 이익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여기에 MSCI에서는 신흥국인데, FTSE에서는 선진국이다 보니 뱅가드 같은 대형 인덱스펀드가 한국 주식을 내다파는 기현상까지 겪고 있다(<일요신문> 1081호 ‘뱅가드 리스크가 뭐길래’ 보도). 그나마 지금 1900선을 지키고 있는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삼성전자의 주가상승률이 시장을 크게 앞선 덕분이다. 달리 말하면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종목들은 1900에도 못 미치는, 여전히 금융위기의 여파를 받던 시절의 주가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한 투자자문사 최고투자책임자는 “수출대기업이 어려워지면 자연스레 하청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 압력이 높아진다. 수출이 좋을 때야 경쟁력이 좀 약한 기업들도 먹고 살았지만, 수출이 어려워지면 이런 기업들은 쉽게 한계에 도달한다”며 “올해 실물경제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증시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