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의 기속력 부여와 관련해 재벌 총수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는 재벌 총수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감정에 읍소하는 연기력까지 갖춰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한 재계 관계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이유인즉 사법제도가 피고인의 신청 없이도 국민참여재판에 회부될 수 있도록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국민참여재판의 최종형태가 시행될 경우를 대비해 자사의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법원 국민사법참여위원회는 “최종형태(안)에서 다소 수정하는 것 외에는 현행 제도를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배심원 평결이 현행 ‘권고적 효력’에서 ‘사실상의 기속력’으로 바뀌고 강제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것이 큰 변화다. 대법원 사법지원실 강종선 심의관은 “그동안은 잠정적 형태로 진행해왔지만 도입 취지를 본격적으로 살리려는 것”이라며 “변호인과 검사의 변론방식이 달라질 것이며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최종형태가 시행된다면 사회적 관심이 큰 재벌 회장들의 형사재판의 경우 법원 직권이나 검사의 신청에 따라 동의 없이 국민참여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 이어 재벌 총수들의 형사사건에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일반 국민들이 배심원으로 선정되고 이것이 재판부에 기속력을 발휘한다면 좋지 않은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작지 않다. 재계가 긴장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직업 법관과 달리 법지식이 많지 않은 배심원들이 다분히 감정적인 면에 치우칠 우려가 크다”며 “좋은 판결을 받기 위해 배심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연기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중견 법조인은 “미국 영화에서처럼 재벌가 회장님들이 직접 배심원 앞에서 읍소하는 모습이 연출될지 모른다”며 “아울러 기존의 전관보다는 배심원의 마음을 잘 얻는 변호인이 스타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재벌 총수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제도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크게 부각됐다. 새누리당은 재벌 범죄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고 민주통합당은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의무화할 것을 약속했다. 경제민주화 열기가 실질적인 법제도 개선으로 이어진 셈이다.
최종의결(안)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법조계 한 인사는 “국민정서와 여론이 유무죄 판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다만 양형 판단에 참고사항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에 따라 자칫 감정이나 여론이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특히 배임죄의 경우 특히 국민참여재판에 곧바로 회부될 수 있다”며 “피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회부되고 그 결과가 실제 재판에 기속력을 가진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강종선 심의관은 “여러 가지 보완 장치를 마련해 두었으며 앞으로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완장치란 단순다수결 평결제도를 폐지하고 배심원 4분의 3 이상 찬성해야 하는 가중다수결제를 채택한 것, 미국처럼 법적 기속력까지는 주지 않았다는 점 등을 말한다.
국민참여재판이 실제로 시행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사법참여위원회는 2월 18일 공청회를 통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후 대법원장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도 국회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강종선 심의관은 “올해 입법 추진이 목표”라면서도 “국회 입법 과정 등에서 시간이 길어질 경우 연내 시행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든 내년이든 국민참여재판이 최종형태대로 시행된다면 재계와 재벌 총수들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또 하나 생기게 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