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 이름을 짓는 방식은 부모마 이름을 따는 것부터 순우리말 사용까지 각양각색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마주의 기대치를 듬뿍 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무패가도 무패질주 무패제왕 불패제왕 등 마명에 ‘무패’ 또는 ‘불패’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마명만큼 뛰어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대부분은 이름이 너무 ‘센’ 탓에 이름값을 못한다.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마명과는 달리 승보다는 패가 더 많았다. 데뷔한 지 얼마 안되는 일생무패라는 말은 ‘평생 동안 한 번도 지지 않는다’는 마명과는 달리 7번의 경주를 치렀지만 아직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마명 중에서도 크게 활약한 말도 적지 않다. ‘불패’시리즈 중에선 불패기상(23전10/4/1)이 대단한 활약을 했다. 서울-부경 교차경주인 부산광역시장배(2009년)에서 당시 기세를 떨치던 부경마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무패’ 중에선 무패가도(28전6/3/3)와 무패강자(16전10/3/0), 무패장수(27전6/1/6)가 돋보인다. 세 마리 모두 씨암말 혹은 씨수말로 한국경마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명이나 특정 장소에 소망을 더해 작명하는 마주들도 있다. ‘장수최고’라는 말은 장수목장이 최고의 육성목장이 되길 바란다는 취지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뷰티플남해’는 아름다운 남해를 그대로 표현한 마명이고, 안시성, 백운산성, 어도봉(제주 지명) 등은 성(城) 이름이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한 것들이다.
경주마의 특징을 알려주는 것도 있다. 화이트볼포니는 아비마인 볼포니(갈색말)만큼 성적을 거둬 회색의 볼포니가 되라는 뜻이 담겨있다. 블랙에이스는 검은 색깔 말 중에선 최고다는 뜻이다. 그레이스톤이나 그레이피버 같은 마명처럼 주로 색깔을 나타내는 단어가 들어있다. 키다리죠 같은 경우는 신체적인 특징을 드러낸 마명이다.
마주 자신의 성(姓)이나 이름, 사연을 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강마애’라는 말의 ‘강’은 마주의 성(姓)이고 ‘마애’는 말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삼정신화, 삼정광풍의 ‘삼정’은 조합이름이고, ‘오마이율리아’는 ‘Oh My + 마주 배우자 이름’이라고 한다.
지은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라이런’은 ‘라이온 + 런’의 합성어다. ‘클라렌든’은 미국 마을 이름이고, ‘베레두스’는 라틴어로 발이 빠른 말이라고 한다. 국1군 최상위권 말 중에 하나인 ‘마니피크’는 불어로 ‘장대한’이라는 형용사다. ‘개천마’는 무슨 뜻일까. 대부분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속담과 연관지어 생각하겠지만 제주 분포종인 멸종위기 2급의 난초(으름난초)를 이르는 말이다. ‘케나코’는 남아공 공용어 중의 하나인 소토어로 ‘이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멋있는 단어나 대사 혹은 교훈이 될 만한 말에서 따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웬만큼 길어도 마명을 외우기가 훨씬 쉽다. 하쿠나마타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아이를 키운 세대라면 월트디즈니의 영화 <라이온킹>을 한두 번은 봤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시몬과 품바가 아기사자 심바에게 했던 대사가 ‘하쿠나마타타’다. ‘걱정하지마, 잘될거야’라는 뜻이다. 우공이산은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것으로,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교훈적인 중국의 고사성어에서 따온 말이다.
우리말 사랑을 마명에다 옮겨놓는 마주도 있다. ‘라온제나’는 ‘기쁜 우리, 즐거운 우리’라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한너울은 큰 물결이고, 써니마루의 ‘마루’는 산꼭대기를 뜻한다.
김시용 프리랜서
마주별 애용 마명 ‘무패·문학·칸’ 많다 했더니… 마주에 따라서는 특별한 단어에 애착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 말임을 잘 알아보기 위해서 혹은 좋아하는 단어에 대한 애착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 앞서 소개한 ‘무패’ 시리즈는 여러 명의 마주들이 애용하는 단어지만 특히 김익영 마주가 선호한 이름이다. 무패신화, 무패장수, 무패장군, 무패환호, 무패지존 등이 김 마주 소유의 말이다. 권경자 마주의 말에는 유독 ‘문학’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문학탄환, 문학의여왕, 문학의비전 등인데 ‘문학’이라는 한국지명에 자산의 바람을 합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금악목장 소유의 말엔 칸(kahn)이란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칸의제국, 칸의후예, 칸의기쁨, 칸의꿈 등이다. 칸(kahn)은 우두머리를 뜻하는 몽고어다. 김시용 프리랜서 |
마굿간 소식 # 최원준 기수 25조로 이적 최 기수는 지난 2007년 06월 데뷔했고 현재까지 1400전 66승(2위 95회, 3위 108회)으로 평범한 성적을 거뒀지만 최근 일년간은 270전7승(2위 14회, 3위 21회)으로 승률 2.5%, 복승률 7.7%에 그쳐 극도의 부진에 빠져있다. 최저중량은 52kg이다. 전문가들은 최 기수가 기량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상대적으로 능력마에 기승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이적을 계기로 최 기수가 오랜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 동반의강자 은퇴식 한동안 서울 경마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던 ‘동반의강자(8세, 마주 구자선)’가 17일 은퇴식을 끝으로 경주로를 완전히 떠났다. 동반의강자는 12연승의 대기록을 달성했던 말이다. 통산성적은 35전 20승 2위 7회, 3위 2회다. 특히 2008, 2009년 그랑프리를 2연패한 보기 드문 명마다. 2008년엔 라이벌인 밸리브리를 4마신이나 따돌렸고, 2009년엔 처음으로 격돌했던 부경대표마들을 간단히 제압했었다. 은퇴 후엔 씨수말로 활약할 예정이다. 김시용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