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대표는 전투는 끝났어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판결을 앞두고 어느 정도 예상했나.
▲사실 이번 판결은 재상고심이었기 때문에 판결 내용이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원래 대법원은 자기가 내린 판결은 잘 안 바꾸니까. 다만 현재 국회의원 159명이 관련법 개정 뒤 판결을 미뤄달라는 성명서를 법원에 제출한 상황이었다. 법원이 그런 국회의 요청을 거부할 줄은 몰랐다. 법원은 마치 법이 고쳐질까봐 서둘러 판결을 내린듯했다. 이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사법 정치 살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법정의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사법권을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공정하게 쓰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뇌물을 주고받은 사람은 처벌하지 않고 이를 고발하고 수사를 촉구한 사람만 처벌받았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거다. 단순히 노회찬이라는 특정인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는 국민에게 이런 나쁜 교훈을 남긴 거다. 큰 문제다.
―만약 거대 정당의 의원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는가.
▲사실 거대 정당 정치인들은 나보다 훨씬 정보수집능력이 좋다. 당시 상당수 거대 정당 의원들이 ‘안기부X파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얘기 안했다. 내가 17대 국회 처음 들어갔을 때, 나보다 정치 경험이 더 앞선 한 분이 내게 충고하더라.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으로서 계속 해나가려면, 미국과 삼성 문제는 건드리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 분도 ‘안기부X파일’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 다들 그런 거대 권력의 문제가 있더라도 폭로하면 자기만 손해라는 생각이 있다. 당시 무슨 말인지는 알았지만, 민주 국가에서 성역이 따로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21세기에 기득권 때문에 특혜를 받는다면 정의도 민주주의도 없는 거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해당 내용의 인터넷 게재를 문제 삼았다.
▲대법원의 논리는 이거다.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보도 자료는 면책특권에 해당하지만 온라인 배포는 안 된다는 거다. 보도 자료는 언론사에서 내용을 한 번 거르지만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국민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거다. 말이 안 된다. 실명으로 낸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한다고 기자들이 그것을 걸렀는가. 실명 그대로 썼다.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국회의원들은 기자에게 주는 보도 자료와 인터넷에 올리는 보도 자료를 달리 작성해야 한다. 그런 의원은 한 명도 없다. 판결을 내린 대법원 스스로도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할 때, 동시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또 당시 법사위 회의는 TV로 생중계됐다. 어차피 알게 될 내용이었다. 문제는 또 있다.
―뭔가.
▲내가 떡값 검사를 발표한 직후 삼성이 공식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거액의 기부금도 약속했다. 심부름을 했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당시 주미 대사직을 사임했다. 중앙일보도 1면에 사과성명을 냈다. 떡값 검사 7인 중 한 명인 김상희 당시 법무부 차관은 발표 당일 사임까지 했다. 떡값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행동을 하나. 잘못했다는 얘기다. 심지어 당시 수사를 담당하던 검사는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식으로 발표를 했다. 어제 당사에 다녀간 네덜란드 언론사 기자가 이를 두고 ‘코미디’라고 하더라. 아예 이 코미디를 한류로 수출해야겠다.
―당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면·복권을 요청했는데.
▲당에서 나의 무죄를 주장하고 유감을 표한 상태다. 어찌됐건 잘못된 판결이니까 더 이상 바로잡을 수 없다면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해서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은덕을 바라는 차원은 아니다. 우리가 구걸할 이유가 없다.
―만약 사면·복권이 결정되면 재보궐 선거에 다시 출마하는가.
▲그렇다.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는 노원구 주민들이 중요하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상대 후보가 공보물에 ‘노회찬은 어차피 X파일 사건 때문에 당선돼도 의원직을 잃기 때문에 찍으면 안 된다’고 썼다. 우리 주민들 그거 다 보고 찍은 거다. 노회찬은 무죄라는 생각으로 찍은 거다. 대다수가 무죄를 확신했다. 만약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다면 주민들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명예 회복이 필요하다.
―국내 복귀설이 나돌고 있는 안철수 전 교수가 해당 지역구에 나온다는 얘기도 있다.
▲들어본 적 없다. 뭐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어디에서든 출마할 권한이 있다. 내가 그런 것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지역구는 내가 도전해서 새누리당 지역을 야당 지역으로 탈환한 곳이다. 만약 안철수 전 교수가 출마한다면 새누리당 지역에 가서 의석을 빼앗아오는 게 더 낫지 않나. 이게 ‘장수’로서 야권 지도자들이 할 일이다. 차라리 부산 같은 곳 가서 귀한 의석 하나를 만드는 것이 낫지않나. 차라리 내가 대신 부산으로 출마할까(웃음).
―노회찬 대표의 사면·복권 여부를 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셀프 특사’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에 보장된 고유권한이다. 잘만 쓰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사면권이 사회적 비리로 책임져야 할 지도층 인사들의 특혜용으로 악용되는 것이 문제다. 억울하게 법위반 상태가 된 서민들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거부정,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대통령 사면권이 남용됐다. 이제 이런 일이 거듭되니, 더 이상 대통령의 양심에만 맡길 수는 없다고 본다. 아예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제도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이런 법 개정이 현재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공권력을 개인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탄핵감이다.
―이번 판결은 진보정의당에게도 위기다. 문제는 지금까지 진보정의당이 국민들에게 아무런 각인도 주지 못한 ‘맹물당’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진보 정당은 국민들의 신뢰를 거의 상실했다. 최악의 위기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야 한다. 나같이 진보정치를 하는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민주화 시대에 복지국가로 가는 시점에서 진보정당은 굉장히 중요하다. 혁신을 통해 국민들에게 다가가고 과거 잘못된 관행과 결별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PD나 NL의 낡은 운동권적 사고와 결별하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 진보정의당은 올해 상반기, 제 2창당을 가속화하는 결의가 돼 있다.
―최근 인수위 내 인사문제가 많이 지적되고 있다.
▲한국 사회지도층이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기 욕심 채우기 위해 편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온갖 불법을 앞장서서 해오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왜 끊이지 않는가. 용서해주기 때문이다. 인수위의 인사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 문제다. 하나는 인사 과정에서 후보자들의 과거 비리와 나쁜 전력들이 잘 체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사권자가 그것을 체크해도 가볍게 보고 넘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 시각과는 차이가 크다.
―황교안 법무장관 후보자와는 원래 잘 알던 사이인가.
▲물론이다. 경기고등학교 시절부터 잘 아는 친구사이였다. 그런데 길이 달랐다. 난 그때부터 유신반대 유인물을 뿌리고 다녔는데, 황 후보자는 학도호국단에서 활동했다. 남들이 그러더라. 둘 다 일관성은 있다고(웃음).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이번 판결은 잘못됐다. 난 오랫동안 싸워온 사람이다. 실망도 했고 분노도 했다. 그렇다고 절대 이번 판결 때문에 ‘다시는 그런 행동 안하겠다’는 생각은 안 든다. 오히려 ‘무릎 꿇으면 안 되겠다’ ‘평생 내 인생 걸어서 바로 잡겠다’ ‘더 분발하고 강해지고 더 노력 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이 사건 자체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사법적 심판은 끝났어도 문제제기를 강하게 하겠다.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에서 질 수 없다. 이게 지금 나에게 주어진 과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유시민, 돌연 정계은퇴 배경 11월부터 1월 사이 ‘결심’ 있었던 듯 유 전 장관이 돌연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어떻게 살 것인가> 출판사인 ‘아름다운 사람들’의 자회사 아포리아 측은 “책 집필 기간은 지난해 6월부터였다. 선거지원이 시작된 11월 하순에 잠시 집필작업을 중단하며 초고를 출판사에 보내왔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후 2013년 1월 말경에 보내온 원고는 차이가 있었다”며 “초고와 최종원고를 검토한 편집자들의 판단으로는 지난해 11월 하순부터 2013년 1월 사이에 어떤 결심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 결정을 스스로 공개할 때까지 외부에 알리지 말아달라는 저자의 요청이 있었기에 밝힐 수 없었다”고 전했다. 유 전 장관은 2002년 대선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하면서 정치권에 뛰어 들었다. 2003년에는 민주당과 개혁당의 연합공천 후보로 경기 고양 덕양 갑 보궐선거에 승리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하며 참여정부 시절인 2006~2007년에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9년 국민참여당을 창당했으며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탈당파와 함께 통합진보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19대 총선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가 터지며 위기를 맞자 진보정의당 창당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진보정당의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잦은 창당과 탈당은 유 전 장관에게 ‘유시민이 들어가는 정당은 깨진다’라는 의미의 ‘정당 브레이커’라는 별명을 남기기도 했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시민의 정계은퇴 소식은 그 날 문자를 받고서 알았다. 그 전에 낌새도 없었고 누구한테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몰랐다. 심정적으로 어느 정도 이해도 된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다른 분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며 “지금은 유시민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줘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쪽으로 보자면 정치인이라는 것이 은퇴한다고 은퇴가 아니다. 농담으로 말하자면, 전쟁 나면 일반 군인도 예비군도 다 불려 가지 않나. 본인도 정계은퇴라고 표현하진 않았다. 손오공이 뛰어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