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장관 내정자가 2월 18일 서울 중구 한 사무실에서 기획재정부 실·국장들에게 최근 경제동향과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보고 받았다. 연합뉴스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경제기획원(EPB) 출신으로 경제정책 분야에서 주로 일을 해온 정책통이다. 충북 청주 출신인 현 후보자는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상대를 다녔다. 대학 졸업 직전인 1973년 행정고시 14회로 관가에 입문한 그는 경제기획원에서 일을 해왔다. 당시 경제기획원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주도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끈 부처였다. 경제기획원 장관이 경제부총리를 겸하며 경제 정책을 진두지휘하던 것도 이때였다.
현 후보자는 관가에 들어온 뒤 말 그대로 순탄한 행로를 걸었다. 경제기획원에서는 경제기획국에서 일하며 1975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년)’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1984년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이후 세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기도 했을 정도로 경제학에 대한 학문적 깊이도 상당하다.
현 후보자는 청와대 경제비서관과 재정경제원 예산심의관을 거쳐 핵심 분야인 경제정책국장으로 일했다. 그가 경제정책국장을 맡은 때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으로, 한국 경제가 최대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그는 경제정책국장으로 있으면서 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앞날이 창창할 것 같던 현 후보자의 관료 인생은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경제정책국장에서 이례적으로 국고국장으로 전보된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 전직 경제부처 관료는 “현 후보자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서 결정하는 합리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는 또 다른 성격도 있다. 여러 의견을 듣고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강한 소신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면서 “이러한 성격 때문에 당시 윗선과 코드가 잘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고 설명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현 후보자의 관료 인생은 자갈길로 들어섰다. 국고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2개월 만인 2000년 6월 재정경제부 산하 세무대학 학장으로 발령이 났다. 표면상으로는 1급 승진이었지만 사실상 관료로서는 마지막 자리를 맡은 셈이었다. 차관과 장관까지 노려볼 만한 경력을 쌓아오던 이에게는 치명타나 다름없었다.
마무리마저 순탄치 못했다. 현 후보자가 세무대학장으로 온 지 6개월 만인 2001년 2월 세무대학이 폐교된 것이다. 세무공무원 육성을 위해 설립된 세무대학이 세무행정의 질을 향상시키기보다 세무대학 출신들이 요직을 장악하며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세무대학이 폐교된 뒤 보직 없이 공중에 붕 뜬 현 경제부총리 후보자를 공정거래위원회나 통계청 등으로 발령 낸다는 설이 간간이 나왔지만 계속해서 임용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1급이 6개월간 보직을 받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퇴직되는’ 공무원법에 따라 현 후보자는 2001년 8월 공무원을 그만두게 됐다. 비리나 개인적인 사유가 아니고 단순히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퇴직하는, 흔치 않은 사례를 남긴 것이다.
그나마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1개월 뒤인 9월에 현 후보자를 자신의 특별보좌관(무보수)으로 임명하면서 회생의 기회를 잡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재경부(현 기재부) 내에 자리를 찾지 못했고 2002년 4월 한국무역협회가 신설키로 한 무역연구소장으로 임명되면서 마침내 관가를 떠나게 됐다. 현 후보자와 함께 일했다는 한 경제 당국자는 “현 후보자만큼 관료 인생 마지막이 꼬일 대로 꼬인 사람은 전례가 없었다고 볼 정도였다”면서 “일부 후배들은 도저히 다시 관료로 생환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관가에서 몸은 멀어졌지만 현 후보자는 관가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권토중래’를 노린 셈이다. 2008년까지 무역연구소장을 지내는 한편 2003~2006년에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2004년에는 FTA(자유무역협정) 민간자문회의 위원, 2007년에는 관세청 FTA추진위원장을 지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들어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2008~2009년 공공기관경영평가단장을 역임했고, 2009년 3월부터는 KDI 원장에 선임됐다. 지난해 3월에는 KDI 원장에 재선임되면서 KDI 설립 이후 처음으로 연임한 원장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러한 이력 탓에 현 현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이름이 호명됐을 때 기재부를 비롯한 관가에서는 예상 밖의 인사라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경제부총리를 지낸 32명 중 장·차관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에서도 현 후보자는 이례적인 인물이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지명 배경에 대해 경제기획원 출신에 KDI 원장을 지낸 점이 박근혜 대통령의 높은 평가를 받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경제기획원은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을 주도했던 부서이고, KDI는 그러한 경제개발 계획 밑그림을 그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재정경제부 출신을 지칭하는 ‘모피아’를 경계하고 경제기획원 출신들을 중시하는 것에도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3월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현오석 한국개발원장(맨 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현 후보자는 경제기획원 출신답게 ‘장기적인 거시경제 정책’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수장을 지낸 강만수 윤증현 박재완 등 재무통 출신이 위기 극복에 강한 실무형이라면 현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강점이 있다.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저성장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성장률 제고 방안, 복지 확대의 바탕이 되는 재정건전성 확보가 현 후보자가 그릴 한국 경제의 청사진이 될 전망이다.
실제로 그는 경제부총리 지명 발표가 난 뒤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 경제는 단기적으로 경기회복을 빨리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성장과 복지, 성장 잠재력을 어떻게 일진할 수 있느냐의 과제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저성장 극복을 중심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강조해온 점을 감안해 성장을 우선시 하되, 성장을 바탕에 둔 복지 확대를 기조로 삼는 거시경제 정책의 설계도를 만들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동안 현 후보자가 인터뷰나 기고문을 통해 밝혔던 것을 봐도 성장에 보다 무게를 두고 경제정책을 구상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성장률 제고와 성장을 통한 복지 확대가 현 후보자의 지론이다. 그는 계속 하락하는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기업의 경쟁력과 활력을 살려야 한다는 점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교육, 의료 등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한다고 강조해왔다. 또한 논란이 됐던 한-미 FTA를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특히 지난해 총선과 대선 기간 여야가 복지 확대 공약을 쏟아내던 때는 재정건전성 확보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무분별한 복지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명확히 밝혀왔다. 이에 따라 현 후보자가 이끌 새 정부 경제팀은 구체적으로는 성장률 확보를 위한 기업 규제 완화, 서비스 정책 활성화를 추진하면서 재정건전성에 무리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펼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 후보자는 정부가 올해 목표로 삼은 3% 성장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며 특단의 조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재정의 적극적 역할과 기준금리 인하를 강조해왔던 점에 비추어 봐도 경기 부양에 무게를 둘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통화정책을 맡고 있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현 후보자의 고등학교(경기고), 대학교(서울대 상대), 대학원(펜실베이니아) 선배라는 점에서 경기부양 정책 시 한은과 정책공조도 밀접하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 후보자로서는 김중수 총재가 이미 여러 차례 새 정부와의 정책 공조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어 경기부양책 시행 시 부담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현 후보자가 학자풍의 성격인 데다 관료직을 너무 오랫동안 떠나있었던 탓에 과연 위기 상황에 한국 경제의 키를 잡을 만한 인물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한다. 그동안 기재부를 이끌었던 수장들 중 조직을 무리 없이 이끌었던 이들은 대개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또한 기재부 공무원들도 온후한 성향을 가진 수장은 별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경제부총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이가 수장으로 앉는 것이 시장 신뢰 확보와 불확실성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까닭에서다.
13년이나 경제부처에서 떠나있었던 점과 장·차관 경력이 없다는 점도 조직 장악이나 다른 경제부처 및 정치권과의 이견 조율 수행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대적인 조직 개편으로 부처 간 갈등이 적지 않은 데다 복지 문제를 놓고 부처 간, 정치권 간 논쟁이 예상되는 상황을 학자 스타일인 현 후보자가 헤치고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 후보자가 온후하기는 하지만 나름 강단이 있는 스타일이어서 힘은 들겠지만 조직을 이끌어나가는데 아주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 더 주목해서 봐야할 것은 ‘경제 투톱’인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 간 호흡”이라면서 “현 후보자와 조원동 경제수석 내정자가 같은 충청도에 경기고, 서울대, 경제기획원 출신이라는 점, 조 내정자가 행시 23회로 현 경제부총리 후보자보다 한참 후배라는 점에서 큰 무리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정권 출범 후 무게가 점점 경제수석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향후 청와대와 기재부 간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도 잠재해 있다”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
현오석 인맥지도 안에선 ‘휑’ 밖에선 ‘촘촘’ 현재 기재부 내에서 대표적인 경제기획원 라인은 김동연 2차관과 주형환 차관보, 홍동호 정책조정관리관(차관보), 김규옥 기획조정실장(차관보) 등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피아 견제론’과 경제기획원 출신 부총리가 어우러지면서 이들 경제기획원 출신이 차기 정부에서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소문이 벌써부터 돌고 있다. 이들 중에서도 홍동호 관리관이 현 후보자와 그나마 가장 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동호 관리관은 현 후보자와 같은 ‘경기고-서울대 상대-경제기획원’을 거쳤는데 현재 기재부 고위급 중에 이 라인 출신이 홍동호 관리관 한 명뿐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하직원은 물론 기자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전형적 서울대 스타일’의 홍동호 관리관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 후보자는 오랜 관료 공백기로 인해 이처럼 기재부 후배들과의 연은 적지만 경기고, 서울대 상대, 행시(14회), KDI 원장을 거친 덕에 정치권과 경제계에 인맥은 제법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관수 전 한화손해보험 사장, 강정원 전 KB국민은행장,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등과는 경기고 65회 동기다. 정치권으로 눈을 돌려보면 현 후보자는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과는 경기고, 서울대 상대,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 동문이다.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과 이종훈 의원, 이혜훈 최고위원은 KDI 출신 인맥이다. 이밖에도 KDI를 거친 이로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있다. 이밖에 현 후보자는 김광림 여의도연구소장과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 신동규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이용섭 민주당 의원 등과는 행시 14회 동기라는 인연을 갖고 있다. 이준겸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