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후보가 박 대통령 취임식 불참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부터 국회에 모습을 드러내며 본격 정치활동 재개를 알렸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문재인 전 대선 후보는 지난해 대선 패배 직후 정치적 행보로 비칠 수 있는 행동은 일절 피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양산 자택에서 보냈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대선 패배 책임론에 대해서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2월 초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대선 패배 이후 여의도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문 전 후보는 지난 2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 ‘출근’을 한 데 이어 5일에는 친노 핵심인 전해철 의원을 비롯한 당 안팎 원로인사들과 오찬을 하는 것이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대선 패배 책임론에 대해 “조만간 국회에서 보자”는 말만 남긴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때 문 전 후보는 황주홍 의원 등의 초선들을 중심으로 “정계은퇴를 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그 요구를 일축하고 복귀시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선 패배의 큰 요인이었던 친노세력 핵심들과의 비밀모임이 드러나면서 “아직도 물밑에서 친노세력 기득권 지키기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민주당의 대선 패배 뒤 그 누구도 그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문 전 후보의 구렁이 담 넘기 식 복귀는 여전히 뒷말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패배를 인정하고 자신의 자리를 깨끗이 버리는 결단과 책임감을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이 버티고 있는 이상 친노세력의 기득권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후보는 대선 패배 책임에 대해 일체의 말을 삼가고 있다. 더구나 그는 ‘칩거’ 기간 동안 오히려 복귀를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한때 문 전 후보의 의원실은 전국 각지에서 배달된 편지와 선물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대선 패배 직후 문 전 후보를 위로하기 위해 지지자들이 보낸 우편물이 끊이질 않았던 것. 문 전 후보는 그중 일부 편지에는 친필 답장을 보내는 것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때론 직접 전화를 거는 정성도 보였다. 문 전 후보와 통화를 했던 지지자의 말에 따르면 “마음을 빨리 추슬렀다. 오히려 지지자들이 걱정이다”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양산 자택이나 지역구 사무실로 찾아오는 지지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도 잦았다. 간단히 점심식사를 함께하거나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도 종종 포착됐다. 혹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지지자들을 차량에 태워 이동 중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산행을 가지면서 지지자와의 소통만큼은 끈을 놓지 않았다.
이런 ‘정치적’ 행보는 야당 대선 패배의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는 지지자들을 위로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대선 패배에 대한 원인분석과 그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일체 대응하지 않고 지지자들을 위로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슬그머니 복귀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그것.
문 전 후보가 국회 본회의장에 모습을 나타낸 다음 날 기자는 그의 구기동 자택을 찾았다. 자택 인근에서 만난 한 이웃주민은 “폭설이 내리던 2월 초에도 부부가 함께 나와 눈을 치우는 모습을 봤다. 대선 직후에는 잘 안 보이더니 2월에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얼굴을 봤다”고 전했다. 다만 어떤 이유로 서울을 찾았는지에 대해서 문 전 후보 측은 “지지자들도 만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난 것으로 안다. 개인적인 일정으로 방문한 것이어서 정확하게 확인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물밑’에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오던 문 전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을 딱 하루 앞둔 24일 드디어 공식석상에 나타났다. 2달여의 ‘자숙기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지역구에서 열린 대규모 행사에 참여한 문 전 후보는 대선 이후 처음으로 연설대에도 올랐다. 그러나 다음날 열린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는 부산에서의 일정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 많은 뒷말을 낳았다. 지방 일정은 핑계일 뿐 대선을 치르며 쌓인 앙금이 풀리지 않은 탓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협량 정치’라는 말도 나왔다.
문 전 후보는 취임식 불참 다음날인 26일과 27일 연달아 국회에 모습을 드러내며 본격적인 정치활동 재개를 알렸다. 문 전 후보가 공개행보를 이어가자 벌써부터 친노 일각에서는 “5ㆍ4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시키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비주류 측은 “정신 나간 소리 아니냐. 대선 패배 책임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이렇게 또 다시 친노들이 한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 전체를 말아먹고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막상 문 전 후보 측은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 문 전 후보 측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참석한 것일 뿐 서울에서의 다른 일정도 개인적인 일뿐이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문 전 후보 역시 26일 본회의 도중 자리를 뜨며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당 중앙위원회 회의 참석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해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겼다. 이러는 사이 민주당의 대선 패배 책임론은 어물쩍 넘어가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