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23일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이 대선자금 내역을 공개했다. 눈덩이처럼 확대되던 대선자금 논란을 종결시 키기 위한 해명성 자료 공개였지만 오히려 의혹만 부추긴 셈이 됐다. 이종현 기자 | ||
그러나 대선자금이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정확한 수입원을 밝히기 곤란한 정치자금 수수 관행에서 기인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선 이후 ‘대선자금’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선관위에 각 정당이 보고한 ‘대선자금내역’의 진실성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낮았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는 대통령 선거 자금내역을 일일이 확인해본다는 것도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선 이후 각 정당이 보고한 ‘회계보고서’를 선관위에서 조사하는 절차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수입·지출 내역이 일반에 공개된 예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들어 노 대통령 당선의 산실이었던 민주당에서 대선자금 내역을 공개했다. ‘굿모닝시티’측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이 제기된 정대철 대표가 검찰의 거듭된 소환요구에 반발하며, 2백억원대 대선자금 모금 발언을 쏟아낸 이후다.
정 대표 발언 이후 의혹이 눈덩이처럼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민주당 대선자금 논란을 조기에 종결시키기 위한 해명성 자료 공개였다. 또 ‘희망돼지’ 등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대선을 치렀다는 정권의 ‘도덕적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일요신문>이 민주당에서 공개한 ‘제16대 대통령선거 선거자금 수입·지출 내역’(대선자금 내역)을 정밀 검증해본 결과, 수입과 지출 내역에서 적지 않은 ‘하자’가 있음이 확인됐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모금했다는 정치 후원금을 둘러싸고도 의문점이 발견됐다. 대선기간 동안 중대한 시기마다 계좌에 뭉칫돈이 입금됐다 출금되는 형태로 국민성금 모금액이 부풀려진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그 것.
또한 12억여원에 이르는 국참(국민참여운동본부) 후원금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 수입내역에 기록돼 있지 않은 점도 의혹을 사는 부분이다. 이밖에도 민주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수입·지출 내역의 몇몇 부분은 총계조차 맞지 않는 등 상당히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이 지난 7월23일 공개한 ‘대선자금 수입·지출 내역’ 보고서를 토대로 몇 가지 의문점과 문제점을 짚어봤다.
[납득 못할 민주당 수입내역]
민주당은 ‘대선자금내역’ 보고서 4~5쪽에서 총수입이 선거보조금, 선거보전금, 후원회 모금총액을 포함, 모두 4백2억5천3백97만8천8백70원이라고 공개했다.
또 이를 다시 세부내역으로 분류해 선거보조금 : 1백23억9천9백78만8천7백20원, 선거보전금 : 1백33억4천1백57만8천1백50원, 특별당비를 포함한 후원금 총액 : 1백45억1천2백61만2천원 등이라고 밝혔다.
△선거보조금과 선거보전금
민주당 대선자금 수입 가운데 우선 주목할 대목은 선거보조금과 선거보전금이다. 선거보조금은 중앙선관위에서 후보등록 직후 각 정당에 지급하는 금액. 민주당의 경우 대선 20여 일 전인 2002년 11월29일 1백23억9천9백78만8천7백20원이 지급됐다.
민주당이 공개한 ‘대선자금내역’ 보고서 1백15쪽 ‘선거비용의 수입과 지출명세서’ 가운데 12월2일자로 ‘중앙당지원금’ 명목으로 1백억원이 수입액으로 기록된 것은 선거보조금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선거보전금. 주목할 사실은 중앙선관위가 이 돈을 대선이 끝나고 각 정당에서 회계보고를 마친 뒤인 2003년 2월10일에야 각 정당에 지급했다는 점이다.
즉 민주당이 대선자금 수입으로 명시해 놓은 선거보전금은 대선이 끝나고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자금을 지급받은 것이다. 때문에 대선 당시에는 선거보전금 1백33억4천1백57만8천1백50원은 민주당이 집행할 수 있는 수입금액에서 빠져있는 것이 당연하다.
민주당 ‘대선자금 내역’ 1백22쪽 ‘회계보고 마감 후 지출분’ 명세서에서 2월11일 이후에 70여억원이 대거 집행된 것은 선거보전금을 선관위로부터 지급받은 이후에야 미결재 대금을 집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선관위로부터 지급받은 선거보전금 1백33여억원은 정작 민주당이 선관위에 보고한 1백22쪽 ‘명세서’에는 누락돼 있다. 수입 내역 없이 지출 내역만 기록된 셈이다.
▲ 국민은행의 11월15일자 계좌내역. 5천만원이라는 뭉칫돈이 입금됐다 즉시 빠져나간 기록이 보인다. | ||
▲농협(1) 036-01-092236
신용카드, 휴대폰결재, ARS, 희망돼지저금통, 희망티켓 모금액, 무통장 입금 등으로 총 32억4천7백79만4천1백46원이 입금됐다는 농협(1) 통장 내역을 살펴보면, 2002년 10월 7억7천여만원, 11월 11억6천여만원, 12월 11억5천여만원, 2003년 1월 12억9천여만원, 2월 1억2천여만원 등이 입금됐고, 2002년 10월 6천만원, 11월 11억7천여만원, 12월 13억1천여만원, 2003년 1월 11억1천여만원이 지출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신용카드와 휴대폰결재, ARS의 경우 실제 입금된 시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선 이후 2003년 1월과 2월까지 입금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2003년 1월 이후 출금된 11억원 이상의 자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는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민주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명세서’상에는 1월 이후 수입내역에 계좌에서 출금된 이 자금의 수입이 전혀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농협(2) 367-01-041086
민주당이 공개한 농협(2) 계좌의 경우, 조회기간이 2002년 12월22일부터 2003년 7월22일로 돼 있다. 즉 계좌 개설일이 대선 이후인 것이다. 2002년 12월 하순 입금된 10여억원과 2003년 1월 입금된 18여억원의 자금 출처에 의구심이 가는 대목이다.
농협(2) 계좌에 입금된 28여억원은 2002년 12월과 2003년 1월 전액 출금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돈은 명세서상 ‘수입’ 항목에 잡히지 않아 용처에 대한 의문도 남기고 있다.
▲국민은행(1) 816902-04-004146
계좌 후원금 거래내역을 공개한 국민은행(1) 계좌내역을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몇 가지 발견된다. 민주당이 공개한 자료 14~43쪽에 포함된 국민은행(1) 계좌 거래내역에 따르면, 2002년 11월15일자에 현금 5천만원이 입금됐다, 즉시 인터넷출금으로 빠져나갔음을 알 수 있다.
또 2002년 11월18일자에는 6천3백만원이 현금 입금됐다, 소액 다수 후원금으로 쌓여 있던 7백만원을 포함, 총 7천만원이 인터넷출금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2002년 11월26일에도 8천1백만원이 현금으로 입금됐다, 같은날 소액 후원금 포함 9천만원이 인터넷출금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입금과 출금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는 점과 취급점이 같다는 점이다. 뭉칫돈의 출처에 의구심이 더해지는 이유다.
특히 거액의 입출금이 이뤄졌던 시점은 후보 단일화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11월15일, 11월18일)와, 후보단일화 직후 후보 등록 직전(11월26일)이었다. ‘국민성금이 답지하고 있다’는 여론몰이용 입출금이 아니었나하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또한 인터넷 출금된 위 자금은 입출금이 이뤄졌던 시점에 ‘대선자금내역’ 1백14쪽 ‘선거비용의 수입과 지출명세서’상 수입에 잡혀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 계좌에 남아 있던 1억여원의 잔액은 대선 이후 2002년 12월31일 전액 현금 인출됐다. 7천6백여만원의 국민성금이 모아졌던 국민은행의 또다른 계좌 816901-04-001456에서도 2002년 12월31일 전액 현금 출금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출금날짜가 12월31일로 일치하는 것은 국회의원 재산변동신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들 계좌가 당시 민주당 선대위 총무위원장이었던 이상수 총장 개인 명의로 개설됐기 때문이다. 매해 국회의원 재산변동신고에서 예금의 경우, 12월31일 예금 잔액을 기준으로 신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12월31일 출금된 자금의 쓰임새는 민주당이 공개한 ‘대선자금내역’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현금 출금된 자금의 용처에 의문점이 더해지는 이유다.
▲우리은행(1) 085-280384-02-101
민주당이 8억여원의 국민성금이 입금된 것으로 발표한 우리은행(1) 계좌도 석연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 8억여원 가운데 90%를 차지하는 7억2천만원이 대선 2주 전인 12월5일 ‘타점입금’ 형태로 뭉칫돈으로 입금됐기 때문이다.
▲ 선대위에 제출한 선거비용 수입과 지출 보고서(위쪽)엔 지출총액이 2백73억여원인 것으로 돼있으나 어찌된 일인 지 별첨서류인 지출명세서(아래쪽)에는 2백72억여원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 ||
▲기타 은행 계좌
국민은행(2) 816901-04-001456 계좌에는 5백여 명이 7천6백여만원을 입금, 한 사람당 평균 15만원의 후원금을 낸 것으로 나타났으며, 우리은행(2) 085-280384-02-102 계좌에는 2백40여 명이 2천7백여만원을 입금, 1인당 평균 1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 거래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우체국 011700-02-023454 계좌에도 1천5백여 명이 1억5천여만원을 입금, 역시 1인당 평균 1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은행 계좌들과는 대조적으로 이 두 개의 후원금 계좌에선 뭉칫돈의 입·출금이 발견되지 않는다.
[‘국참’ 후원금 12억 어디로?]
민주당 국민참여운동본부는 2002년 10월29일 서울 여의도 당사 앞마당에서 국민후원금 전달식을 갖고 ‘1인 1만원’ 모금운동을 통해 4만4천여명으로부터 후원금 12억3천8백만원을 거뒀다며, 이를 당시 노무현 대통령후보측에 전달했다.
‘국민후원금 전달식’이 있었던 10월29일은 한나라당이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대선 필승결의대회를 겸한 중앙당 후원회를 개최한 날이었다.
그러나 노 후보측에 전달한 12억3천8백만원의 후원금은 민주당 대선자금 내역 어느 곳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과연 이 후원금은 어떻게 처리된 것일까. 당시 한나라당 후원회를 견제하기 위한 일종의 ‘맞불작전’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대두되는 대목이다.
[선거비용 지출 총액 불일치]
민주당이 공개한 ‘대선자금내역’ 가운데 ‘선거비용의 수입과 지출명세서’(명세서)는 모두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2002년 10월16일~2002년 11월26일까지, 즉 대선 후보 등록 직전까지의 명세서가 하나다. 두 번째로는 대통령 선거운동 시작일(2002년 11월27일)부터 중앙선관위 회계보고 마감 기준일(2003년 1월8일)까지 작성된 명세서가 있다(대선자금내역 1백15~1백21쪽).
세 번째로는 ‘회계보고 마감후 지출분’으로 2003년 1월9일부터 2003년 2월14일까지의 명세서다. 이 가운데 두 번째 명세서(대선기간부터 회계마감 기준일까지)에 따르면, 민주당 선대위는 선거일 직전 두 차례에 걸쳐 차입한 49억원의 차입금을 포함, 중앙당으로부터 2백10억9백77만7천6백81원의 지원금을 받았고, 같은 기간 동안 2백72억2백93만7백76원을 지출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공개한 위 ‘명세서’에는 몇 가지 중대한 결함을 노출하고 있다.
▲선관위 보고서와 명세서 합계 불일치
첫째로는 기본적으로 일치해야 할 ‘대선자금내역’ 1백13쪽 중앙선대위 보고서에 기재된 수입, 지출 내역과 총계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중앙선대위 ‘보고서’상에는 수입총액이 회계책임자 선임 전과 후를 합해 총 2백64억3천1백94만6천3백36원으로 돼 있는 반면 ‘명세서’상에 나타난 수입 총액은 회계책임자 선임 전후를 합해 2백59억7천9백44만5백38원으로 나타나 있다.
또 지출 총액 역시 보고서상에는 회계책임자 선임 이후 지출 총액이 2백73억3천9백72만9천9백81원으로 돼 있으나, 명세서상에 나타난 지출 총액은 모두 2백72억2백93만7백76원으로 나타나 있다. 결국 보고서상에는 명세서에 나타난 것보다 수입은 5억원가량 더 많은 것으로 기록됐고, 지출도 1억원가량 더 지출된 것으로 보고한 것이다.
▲선거비용 지출 총액도 틀려
대선자금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두 번째 명세서(2002년 11월27일~2003년 1월8일)에 따르면, 지출 총액이 2백72억2백93만7백76원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기자가 두 번째 명세서에 기록돼 있는 지출항목의 금액을 직접 합산, 총액을 계산해 본 결과 2백71억2천4백46만8천6원이었다.
단순 수치의 합산에도 1억여원에 가까운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이 같은 부분들을 종합하면 민주당이 공개한 대선자금 내역은 곳곳에 허점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선관위의 보다 정확한 확인 절차가 절실해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