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원장이 재보궐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을 당시 측근들도 예상 밖의 소식에 놀랐다고 한다. 사진은 안 전 원장이 지난해 10월 23일 인하대학교에서 초청강연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안철수
“도대체 어디서 무슨 소릴 듣고 왔는지 모르겠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에 몸담았던 한 측근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안 전 원장의 노원병 출마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 쪽에선 일찌감치 결론이 난 문제였다. 재보궐 출마는 득보단 실이 많다고 판단했었고, 안 전 원장 역시 이에 동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귀국을 앞두고 갑자기 출마로 선회해 안 전 원장 귀국만 기다리고 있던 많은 동료들이 의아해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당초 안 전 원장은 올해 4월과 10월에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엔 출마하지 않고 신당 창당 및 인재영입 등에 전념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었다.
노회찬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노원병 출마를 물밑에서 준비하고 있던 안 전 원장 측 인사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실제로 정치권주변에선 자천타천으로 3~4명의 후보군들이 물망에 올라 있었다. 이들은 출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진 않았지만 물밑에서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중 일부는 선거사무실까지도 물색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안 전 원장의 출마를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만큼 안 전 원장 출마가 전격적이고 극비리에 결정된 것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복수의 측근들 말을 종합해보면 안 전 원장 역시 최근까지도 재보궐 선거 출마엔 별다른 뜻을 두지 않았었다고 한다. 안 전 원장 측 관계자는 “안 전 원장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면서 지난 대선에서 자신들을 도왔던 지인들과 향후 정치 행보 구상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여기서 재보궐 출마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는데 이는 안 전 원장 본인이 탐탁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안 전 원장의 의중은 여러 채널을 통해 측근들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송호창 의원(무소속)이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어 안 전 원장의 귀국 시점과 함께 재보궐 출마를 밝혔을 때 이를 접한 안 전 원장 측근들이 귀를 의심했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정치권에선 안 전 원장의 노원병 출마와 관련해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안 전 원장의 지지자들은 대선 패배 후 책임 공방만 거듭하고 있는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 전체에 쇄신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부산 영도 차출론에 대해서도 “안 전 원장의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야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 전 원장이 국회로 조기 등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이들은 새누리당을 이기기 위한 기계적인 단일화는 지난 대선에서 소용없다는 게 입증됐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반대파’들은 여권의 그 누구와 붙어도 승산이 높은 안 전 원장이 진보 성향이 강한 노원병보다는 부산 영도로 출격해 지역구도를 깨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과는 별개로 안 전 원장 측 내부에서는 이번 재보궐 출마 결정 과정에 대한 볼멘소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안 전 원장의 한 측근은 “차라리 안 전 원장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면 좋겠다. 그런데 어딘가 안 전 원장에게 조언을 해주는 그룹이 있는 것 같다. 이른바 ‘비선’ 라인”이라면서 “지난 대선에서도 참모들이 머리를 모아 합의해 보고한 안건이 있었는데 안 전 원장이 누군가를 만나고 와서 뒤바뀐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번 재보궐 출마도 그러한 사례인 것 같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안 전 원장 측 일각에서는 ‘의사결정 구조에 있어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안 전 원장이 다를 바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 대통령이 공식 창구는 배제하고 일부 비공식 라인에 의존해 중요 현안을 결정하는 것을 빗댄 것이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지적들은 나왔었다고 한다. 다음은 안철수 캠프에서 전략 업무에 깊숙이 관여했었던 관계자의 전언이다. “초반엔 안 전 원장과 제법 말이 통했다. 안 전 원장이 정치를 처음 하다 보니 캠프 전략가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말발’이 먹히지 않았다. 우리는 안 전 원장에게 새로운 방식의 선거운동, 캠프 구성 등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는 안 전 원장이 기존의 정치권 프레임으로 들어오면 단일화에서 질 것이라고 직언을 했다. 알고 봤더니 안 전 원장은 우리가 아닌 다른 멘토 그룹의 말을 더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안 전 원장의 그러한 태도는) 실패로 끝나지 않았느냐.”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는 ‘7인 회의’ 체제로 꾸려졌었다. 안 전 원장의 핵심 측근 7명으로 꾸려진 멤버들이 오전과 저녁 두 차례 회의를 진행한 뒤 주요 사안을 안 전 원장에게 보고하면 다시 안 전 원장이 ‘피드백’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단일화 막판 7인 회의는 유명무실했었다는 게 정설이다. 안 전 원장이 캠프가 아닌 외부의 특정 라인을 통해서만 중요 사안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안 전 원장이 대선 후보직을 사퇴한 후 캠프를 떠났던 인사들 중 상당수는 안 전 원장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의사소통을 문제 삼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안 전 원장의 주변에 어떤 비선 라인이 존재하는지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안 전 원장의 측근들은 크게 세 그룹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안 전 원장을 외곽에서 후원했지만 캠프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안 전 원장과 오래전부터 ‘사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지난 대선 당시 안 전 원장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던 이른바 ‘박원순 라인’과는 별개의 라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원장이 대선에 출마하기 위한 준비단계에서 ‘스터디’를 함께했던 교수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전북지역의 한 대학교수는 안 전 원장의 여러 개혁방안을 비롯해 단일화 사퇴 등에 대해 견해를 주고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교수 역시 공식 캠프에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론 안 전 원장이 정치 입문 후 만났던 정치 컨설턴트들이다. 특히 야권에서 ‘선거 전략가’로 명성이 높은 한 정치컨설턴트 L 씨가 이번 안 전 원장의 노원병 출마 결정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L 씨는 노원병 출마를 망설이는 안 전 원장을 적극 설득했다고 한다. 안 전 원장의 측근들 역시 이러한 말을 듣고 그 진위 여부에 대한 확인 작업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기류들이 향후 안 전 원장의 정치 행보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여야 대치 정국에서 안 전 원장의 재보궐 선거 출마에 기대를 걸고 있는 국민이 많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서 국회의원 한 명이 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안 전 원장이 세를 규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문국현 전 대표가 주도한 ‘창조한국당’과 비슷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면서 “안 전 원장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동지들에게조차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세력을 키우는 데 분명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