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원장의 서울 노원구병 재보궐선거 출마 방침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사진은 노원구 상계역 앞에 걸린 민주당 이동섭 지역위원장 현수막.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3월8일 기준, 서울 노원병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인물은 허준영 새누리당 당협위원장과 이동섭 민주통합당 지역위원장 두 명뿐이다. 새누리당 노원병 합동사무소 관계자는 “이 지역에서 재보궐 선거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며 “사실 허준영 위원장은 19대 총선보다 이번 보궐선거를 겨냥하고 지역구에서 활동해왔다”라고 전했다. 이동섭 위원장은 “여기가 임채정 국회의장 시절부터 전통적인 야권강세지역”이라며 “지난번은 노회찬 전 의원에게 야권단일후보를 양보한 뒤 표를 몰아줬지만 이번만큼은 민주당에서 지역구를 되찾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역구 보궐선거를 대선급으로 바꿔 놓은 것은 지난 3일 송호창 무소속 의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화된 안철수 전 교수의 출마 소식이었다. 안 전 교수 측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새 정치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다. 18대 대선에 이어 다시 한 번 현실 정치로 뛰어든 셈이다. 고향인 부산 영도구가 아닌 야권 강세지역 노원구를 선택한 것도 이번에는 이기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예기치 못한 안 전 교수의 등장은 여야의 견제로 이어졌다. 출마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4일, 이동섭 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통합당은 조속히 노원병 후보자를 결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틀 뒤, 이 위원장은 <일요신문>과 만나 이렇게 덧붙였다.
왼쪽부터 허준영 당협위원장, 이준석 씨, 이동섭 지역위원장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안 전 교수 측에 섣불리 야권연대를 제안했다간 ‘텃세를 부린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안 전 교수 역시 진보진영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안 전 교수 출마와 관련해 진보정의당은 “안철수 전 교수의 정치복귀는 반가운 일이지만 그 첫 무대가 노회찬 전 의원이 사법부에 의해 짓밟힌 노원병이어야만 했는가”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고 8일 노 대표의 부인 김지선 씨를 후보로 확정했다.
전계완 매일P&I 대표는 “안철수 전 교수가 노원병 출마를 고집한다면 대선주자로서의 종결을 의미한다”라고 내다봤다. 전계완 대표는 “독자적으로 노원병에 출마해 과연 이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설령 당선되더라도 너무 쉬운 지역에서 승리했다는 이미지가 남게 된다. 결국 국회 입성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라며 “당선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을 걸고 부산 영도구에 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전력으로 싸운다면 이길 가능성도 있고 지더라도 대선주자로서의 입지와 명분이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장 역시 “안 전 교수의 출마 자체는 민주당 혁신 차원에서도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노원병 출마는 너무 쉬운 선택이 아닌가 싶다”라고 전했다.
지난 2월 1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노회찬 공동대표 사면 촉구 서명운동. 원안 사진은 노원병에 출마를 선언한 노회찬 대표 부인 김지선 씨. 전영기 기자
여권인 새누리당에서는 안 전 교수의 출마로 굳어지고 있는 다자구도를 반기는 분위기다. 1년 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노원병에 허준영 전 경찰청장을 공천했지만 야권연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새누리당 노원병 합동사무소 관계자는 “당시 허 위원장은 총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갑자기 노원병으로 투입됐음에도 39.6%를 득표하며 선전했다”며 “여야 일대일 구도가 아닌 다자구도가 된다면 더욱 유리한 상황이니 안 전 교수의 출마를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안 전 교수 측에서 4월 재보선에 맞춰 신당 창당을 준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그 기세를 꺾어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이준석 차출론.’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대선주자인 문재인 의원이 출마한 부산 사상구에 당시 27세 정치 신인 손수조 씨를 공천해 ‘견제구’를 날려 상당한 효과를 얻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안 전 교수에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이준석 씨를 붙이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현실 정치에는 생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는 이 씨는 최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준석 차출론’은 당 내부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이준석 씨 공천은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정치적 이벤트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솔깃하게 들려도 시간이 지날수록 안철수 전 교수 앞에서 쇼를 할 게 아니라 실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당 내 여론이 커질 것”이라며 “허 위원장을 공천하더라도 3자 구도가 되면 안 전 교수가 여야 정당을 이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전계완 대표는 “허준영 위원장이 아닌 제3의 인물을 낼 가능성은 여전하지만 이준석이 아닌 좀 더 거물급이 될 듯하다”고 전망했다.
노원병 보궐선거는 향후 정계개편과도 맞물리며 정치권 각개전투장으로 변하는 양상이다. 민주통합당의 한 당직자는 “지역민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4월 재보궐 선거가 안 전 교수가 등장하면서부터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것 같다”며 “과거 노원구에 출마한 한 정치인은 이곳에 전셋집을 얻어 비서를 시켜 불을 켜 놓게 하고 정작 본인은 강남에서 살기도 했다. 더 이상 지역 유권자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