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나는 매일매일 산책을 한다. 옛날 어른들의 말이 절로 떠오른다. 하루의 시작은 새벽에 있고, 일 년의 시작은 봄에 있다는 말! 이렇게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기 때문에 굳이 회귀하는 계절의 시작을 설정해서 ‘봄’이라 했던 것이 아닐까. 아마 그런 말을 좋아했던 어른들은 자기를 돌보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어른들이었으리라.
하루의 시작은 새벽에 있다는 말도 이 봄에는 더욱 새롭다. 그 말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찌감치 하루의 전투를 할 채비를 갖추라는 말이라기보다 돌이켜 반성하면서 하루를 열고, 성찰하면서 일 년을 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반성’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 것이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마음속에서는 잘못했다고 시인할 수 없는 일을 학급 학생 모두 다 모여 있는 자리에서 잘못했다고 해야 했다.
나는 선생님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의 권위에 저항하지 못하고 소위 반성을 해야했다. 그 때의 분노 때문에 나는 반성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했던 것 같다. 내게 반성은 돌이켜 성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행위의 규율이라고 할 수 없는 규율을 억지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하는 것이었다.
사춘기가 되고,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내가 반성문을 쓴 기억은 없다. 그러나 학생들을 향해 반성문을 써오라고 하는 선생님들은 있었다. 나는 그런 선생님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반성이라는 말을 멀리했다. 생각해 보면 사춘기 학생들을 60명 이상씩 한 교실에 모아놓고 가르치는 우리 선생님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반성이 살아있는 말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언제부터인지 반성하지 못해 제자리걸음이었던, 길고 길었던 내 젊은 날을 돌이켜 보며 내가 나를 안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바쁘게만 살았는지. 종종 잠이 모자랐다. 알람에 맞춰 겨우 일어나 깨지 않은 잠을 커피로 깨우며 ‘일’을 생각해야 했던 나날들. 나는 일과 불안에 나를 맡기며 되는대로 살았던 것 같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는가. 돌아보면 늘 화가 나있어 누군가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도 많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징징거리는 사람도 많다. 모두 분노와 피해의식과 욕심과 불안에 나를 맡기며 되는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목련나무 가지가 물이 올라 통통하다. 나는 천천히 산책을 하며 봄기운 만연한 교정을 즐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올 한 해 돌이키며 살게 해달라고. 다른 사람들 잘못한 일을 찾아내어 손가락질하며 똑똑하게 굴지 말고, 내게는 그런 잘못이 없는지 내 발밑을 살피며 살게 해달라고.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