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눈을 흘기고 있다. 의원들의 입에서 ‘신종 독재’ ‘민주적 독재’ 같은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목표(대권)를 이룬 뒤까지는 준비돼 있지 못한 것으로 본다.”
집권 여당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눈을 흘기고 있다. 잘못은 박 대통령이 하고, 뺨은 왜 여당이 맞느냐는 볼멘소리다. 정부 출범 전까지 “한번 지켜보자”던 긍정적 관망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부정적 진단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드러내놓고 비판하는 분위기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폭발 직전 수준이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전후부터 ‘박심(朴心)’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분류됐던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솔직히 박 대통령은 설득하기가 참 힘든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직언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불통’ 지적이 항상 있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들을 준비는 항상 돼 있는 분이다. 지금은 박 대통령의 의지(정부조직 개편안)가 워낙 강하다는 것을 아니까 원내 지도부가 적절히 풋워크를 해야 하는데 잽도 없고 어퍼컷도 못 날리고, 카운터펀치도 뻗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실망감도 큰 듯 보인다”고 했다.
이 중진 의원은 또한 “야당도 (방송 분야에 있어선) 정체성 문제와 걸려 있으니 물러나기가 힘든데 그렇다면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밖으로 드러나게 대통령을 설득하는 제스처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만약 새누리당이 대 청와대 설득에 나서면 박 대통령도 한발 물러설 수 있어 보인다. 그러면 ‘대화가 되는’ 대통령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데 그런 센스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여당 지도부는 오히려 박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다 된 마당에 재를 뿌렸다는 전언도 있다. 한 지도부 의원은 “일요일(3일) 오전까지만 해도 야당과 어느 정도 협상이 이뤄져 본회의에서 방망이 두드릴 일만 남았는데 월요일에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 나서면서 원점보다 더한 원점으로 회귀했다”며 “임시국회 회기를 이틀 남긴 시점에서 왜 굳이 대통령이 담화에 나섰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틀만 기다린 뒤 결과를 보고 나섰어도 됐다”고 아쉬워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새 정부의 느지막한 출범도 청와대가 막았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친박계 인사는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대해 쓴소리를 늘어놓았다.
박 대통령이 격앙된 모습으로 담화문을 발표해 지켜보던 관계자들마저 긴장시켰다. 최준필 기자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TV로 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당시 박 대통령이 큰 손짓을 하고 톤을 높이고 경직된 표정을 지었는데도 그 곁에 있던 청와대 인사들은 아무도 그게 ‘잘못’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더라”며 “분위기가 살벌했다. 청와대 비서실 기능이 마비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귀띔했다.
박근혜 마크맨이었지만 회사의 청와대 ‘출입기자령(令)’을 뿌리치고 국회에 남은 한 기자는 그 이유를 “기대했던 청와대가 아닐 것 같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국회 리더십’밖에는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며 “대통령이 국회를 너무 쉽게 보는 것은 큰 문제”라고 했다.
18대 국회는 ‘친박계 공천 학살’ 이후 새누리당에 재입당한 친박계 의원들로 세력이 약했다면, 19대 국회는 그야말로 ‘박근혜’라는 이름 덕에 의원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박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이들 의원이 지난 대선에 힘쓴 것은 공천을 받아 당선된 데 따른 보은 차원일 텐데 왜 지금까지 논공행상을 거론하고, 공치사하는 것에 대해 마뜩찮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도 새누리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안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분위기는 다르다. 박 대통령이 가장 듣기 싫어할 만한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다. ‘신종 독재, 민주적 독재’라는 비유에서부터 “경제를 박정희식으로 해야지, 정치를 박정희식으로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대부분 입을 다물지만 개개인을 만나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하면 더한 말도 분출되는 형편이다.
특히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을 때 한 의원은 “저 ×× 누가 천거했어. 추천한 사람을 찾아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치권 인사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찾아와 놓고 열흘은 기다리는데 열흘하고 나흘은 더 못 기다리느냐”며 “국무위원은 갈등을 조율하고 정책을 끌어가야 하는 사람인데 그런 민주적 소양이 전혀 안 된 사람을 장관 시켰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지적했다.
장관 인선과 청와대 수석 지명 등을 바라보며 씁쓸해 한 친박계 강성 의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