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전 최고위원이 민주당 쇄신 문제를 비롯한 정국 현안에 대해 솔직한 목소리를 들려줬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지난 2월부터 ‘민주당 부활의 길’이라는 글을 통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 쇄신과 관련해 ‘24시 민원센터’보다 먼저 제안한 것이 ‘전당원투표제’인데.
▲전당원투표제는 내 오랜 신념이자 정당개혁의 핵심이다. 각 지역구 대의원과 지역위원장 등 각급 당직을 모든 당원들이 직접 뽑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당원이 아닌 사람이 당직 선거에 끼어들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민주통합당 출범 당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와는 상반되는 개념 아닌가.
▲나는 완전국민경선으로 당 대표를 뽑는 것에 대해선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당직과 공직은 다른 개념이다. 대통령 후보는 공직후보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도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당 대표는 당원들이 뽑아야 한다. 무조건적 개방이 좋은 일이 아니다. 결국 인기투표 방식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당직 선거는 어떤 식으로 운영됐나.
▲내가 지금 송파을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이 지역 대의원들은 사실상 천정배가 임명한다. 각 지역위원장은 ‘조강특위(조직강화특위)’에서 계파 대리인들이 모여서 협상하는데 결국 계파별로 안배하는 식이다. 그 만큼 민주당은 ‘기득권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
―기득권 카르텔이란 이른바 ‘친노’를 말하는 것인가.
▲특정 계파 이야기가 아니다.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일부가 기득권으로 뭉쳐있다. 나머지 수많은 당원은 그저 활용 대상밖에 되지 않는다. 전당대회 때도 각 지역구 위원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의 싸움이다. 누가 당을 대표하고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느냐는 것은 안중에 없다. 제도가 바뀌지 않으니 계파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당 내 대선평가위원회 활동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대선평가위가 지역을 순회하며 당원들 이야기에 경청하는 등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이번에 대선평가위에서 만든 설문조사 문항을 보니 그동안 민주당에서 터부시됐던 문제도 과감하게 건드렸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말하자면 ‘대선 때 누가 책임이 크냐’, ‘누가 퇴진해야 하느냐’ 하는 문항까지 있었다. 매우 민감한 문제를 밖으로 끄집어 낸 것이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
―현재 정부조직 개편안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여야는 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SO(종합유선방송) 인·허가권 역시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협상이 지체되는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SO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느냐 방송통신위원회에 남겨두느냐 문제는 기술적 문제다. 하지만 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는 방송의 공정성이 걸려있는 본질적 문제다. 방송을 장악할 뜻이 없다는 대통령 담화만 믿고 양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야당 발목잡기라는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다.
▲다른 부분은 통과시키고 미래창조과학부만 따로 협상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청와대에서 다 스톱시키고 있다는 것 아닌가. 엄밀히 말해 조직개편에 관한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 국회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초대 장관 인선에 관해서도 말들이 많다. 11일이면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다. 선배 법무장관으로서 어떻게 보나.
▲당 바깥에서 장관 개인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이번에 법무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이 검찰 개혁인데 물 건너갔다고 본다. 이번 장관은 검찰 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지 않나. 검찰 개혁은 취임 시작 직후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그런 의지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전 교수의 4월 재보선 출마도 화제다. 안 전 교수 측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한 문제 같다.
▲‘안철수라는 인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지난 대선 때 정권교체를 바라는 사람이 70%나 됐는데 그 분들의 여망을 한몸에 받은 인물이 안 전 교수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정권교체에 기여하지 못 했고 시원찮았다. 그동안 정치인인지 아닌지 판단도 불분명했는데 이번 보궐 출마를 통해 각오를 다졌다는 생각이 들어 반갑다.
―노원병이 아닌 부산 영도구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나라면 영도구에 가겠다. 하지만 내가 참모도 아닌데 관여할 수 없는 문제다.
―안철수 신당이 생긴다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 쇄신은 게을리할 수 없겠다.
▲당연하다. 민주통합당은 안철수 신당과 서로 ‘협력적 경쟁’을 해야 한다. 이번에 쇄신하지 못한다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존망지추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대선이 끝나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 퇴진론도 거듭 거론되고 있다.
▲좀 늦은 감이 있다. 의원직을 사퇴한다고 해서 책임진 것이고 사퇴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책임한 것은 아니다. 방법이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 그리고 근신하는 문제가 있다.
―이번 정당대회 때 직접 당 대표로 나설 의향은 있는가.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고민 중이긴 하다. 내가 정치를 계속하는 이유는 개혁정권을 이 땅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다. 큰 틀에서 당에 기여하고 5년 뒤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한 뒤 결정하려고 한다.
천정배 전 최고위원은 “어떤 순간에도 권력은 믿을 수 없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한때 권력의 중심에 있었기에 보다 확신에 찬 어조였다. 그런데 왜 민주통합당엔 ‘천정배계’는 없을까? 천 전 최고위원은 “내가 계파에 관심이 없다. 약점이자 강점이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쇄신파다. 앞으로 민주당 쇄신계보가 좀 더 크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