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의 ‘총선 구상’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는 ‘부산인맥’의 핵심 문재인 수석. | ||
구상의 골간은 ‘전국정당화를 통한 정치개혁’이란 좌표 아래 친위그룹의 ‘전진 배치’로 요약된다. 아울러 여권 내 신당논의에 대한 태도도 그동안 ‘노심(盧心)=무심(無心)’이란 입장에서 점차 민주당 신주류가 추진중인 ‘통합신당’보다는 외곽 신당세력 중심의 ‘개혁신당’에 기운 듯한 모습도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청와대 이해성 전 홍보수석과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등 노 대통령 측근들이 내년 총선 부산 출마를 선언하며 “민주당 간판으론 나서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혀 ‘노심’은 여권 내 신당논의의 향배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 같은 양상은 청와대와 내각의 주요 노 대통령 친위인사들이 총선 출마대열에 추가로 합류할 경우 더욱 뚜렷해질 확률이 높아 ‘가을 정국’을 한층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구상은 17일 단행된 청와대 조직개편을 계기로 구체화돼 개편 사흘 전인 14일 이 전 홍보수석이 부산 출마 의향을 밝히며 사퇴를 선언하면서 ‘물꼬’가 터졌다. 이 전 수석은 출마결정 과정과 관련, 노 대통령이 권유했다는 주장은 부인했지만 “(노 대통령에게) 출마의 뜻을 말씀드렸더니 ‘결심했다면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 직·간접적으로 ‘교감’을 나눴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향후 활동계획과 관련, “소속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대통령에게도 당분간 당적을 갖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지역구는 뜻을 같이하는 많은 분들과 전략적 협의를 거쳐 확정할 예정이지만 태어난 곳은 부산 동구”라고 말해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부산 중·동구)과 ‘일전’을 치를 생각임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후배이자 ‘영원한 집사’로 불리는 최측근인 최 전 비서관의 출마 선언은 ‘노심’ 논란에 결정적으로 불을 질렀다. 최 전 비서관은 출마를 결정하게 된 과정과 관련, “지난 11일 대통령을 만나 출마의사를 보고했으나 대통령이 ‘지금 와서 새삼스레 그러느냐’며 답을 주지 않다가 14일 만났을 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하자 ‘정 그렇다면 뜻을 펼쳐보라’며 출마를 허락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처음엔 “대통령이 최근 저를 불러 ‘과거 내 지역구인 부산 북·강서을에서 출마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논란이 되자 “대통령이 과거 해양부 장관 할 때 ‘내 지역구를 물려받으라’고 한 적이 있어 14일 만남에서 내가 먼저 ‘그쪽에서 해보겠다’고 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눈여겨볼 것은 이 전 수석, 최 전 비서관이 출마예정인 부산 중·동구와 북·강서을이 과거 노 대통령의 출마지였다는 점. 중·동구의 경우 노 대통령이 1988년 정치권에 입문하며 처음 출마해 당시 5공 실세였던 허삼수 민정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던 곳.
북·강서을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노 대통령이 15대 보궐선거로 어렵게 당선된 서울 종로를 포기하고 2000년 16대 총선에 ‘지역통합’의 깃발을 들고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지역. 한 측근은 “노 대통령이 자신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던 두 사람을 다른 곳도 아닌 옛 지역구에 출마토록 한 것은 그만큼 ‘전국정당화’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 부산 동구 출마 의사를 밝힌 이해성 전 홍보 수석(오른쪽)과 총선출마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호철 민정1비서관. | ||
노 대통령의 오랜 지기인 조성래 변호사를 위시해 비서 출신인 정윤재(사상)-최인호(해운대 기장갑)-송인배(경남 양산) 위원장 등 ‘386 3인방’을 비롯, 신상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과 지역 내 대표적 ‘친노’(親盧) 명망가인 이태일 전 동아대 총장 등이 독자적인 개혁신당 창당을 선언하며 내년 총선 출마 채비를 가다듬고 있다.
여기에 과거 ‘양김 구도’하에서 줄곧 노 대통령과 함께 정치적 행로를 같이했던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도 최근 단행된 8·15사면복권을 통해 정치규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워밍업’에 들어간 상태.
개혁당과 함께 개혁신당추진연대회의(신당연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오는 25일께 이부영 이우재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의원 등 한나라당 탈당파 5인이 주축을 이룬 ‘지역주의 타파-국민통합연대’(통합연대)와 연대모임을 구성, 추석 전까지 신당추진 준비기구를 발족시킬 예정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들이 청와대 이 전 수석, 최 전 비서관의 출마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 이 전 수석은 출마 결심을 굳히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부산 정개추와 지역 상공인들로부터 요청이 있었으며 조 변호사와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최 전 비서관은 지난 대선 당시 부산 선대위 재정팀장을 맡아 조성래 공동위원장-문재인 상임본부장(현 청와대 민정수석)과 호흡을 맞춰 왔던 터라 이들과 진로문제를 중점 논의했을 것이란 것이 정설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주변에선 부산인맥의 핵심인 문재인 민정수석과 이호철 민정1비서관 역시 약간의 시차를 두긴 하겠지만 결국 내년 총선 출마를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두 사람은 이제까지 여러 차례 “선거에 나설 뜻이 없다”고 밝혀왔지만 지금의 ‘부산인맥 총동원’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경우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여권 소식통들의 전언.
‘친위그룹 전진배치’는 노 대통령이 민주당으로부터 거센 교체 압력을 받았던 청와대 386 참모들을 오히려 ‘중용’한 데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특히 정무라인을 천호선(정무기획)-서갑원(정무1)-김현미(정무2) 등 386 핵심측근들로 구성하고 그동안 여당을 담당했던 정무1비서관을 여야를 아울러 국회를 담당케 하고, 야당을 맡았던 정무2비서관을 ‘이슈 담당’으로 조정한 것은 향후 노 대통령의 정국 구도와 직결돼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한 386 참모는 “정무수석실 인사는 노 대통령이 앞으로 민주당과 일정 거리를 둔 채 내년 총선에 대비한 독자적인 구상을 펼쳐 나갈 뜻임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며 “노 대통령은 당분간 민주당 신주류와 외곽 신당추진세력과 ‘등거리’를 유지하며 중립을 지키되 영남권의 경우 본인이 직접 친위그룹들을 전략적 요충지에 내세워 관할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참모는 또한 이 같은 노 대통령의 구상이 ‘노심=개혁신당’으로 읽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분석과 관련, “영남권에서는 현실적으로 ‘리모델링 민주당’ 또는 ‘통합신당’ 간판으론 제대로 된 싸움을 하기 어려운 만큼 출마 예상자들의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선택의 결과가 ‘개혁신당’으로 나타나 노 대통령의 의중이 의심받는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