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표그룹 오너일가가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 땅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탈루혐의가 포착돼 사업추진이 정지된 상태다. 이곳은 초호화 별장이 들어설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다. 아침가리 인근 방태산 풍경. 사진제공=인제군청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아침가리는 심심산중의 계곡으로 원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데다 주변경관도 수려해 전국 제일의 트레킹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재벌가들이나 일반 투자자들이 ‘별장부지’로 눈독을 들이던 지역이었다. 그런 아침가리가 삼표그룹 일가의 손에 넘어간 것은 지난 2011년 11월 정도원 회장의 자녀들이 대거 땅을 매입하면서부터다. 그 해 정 회장의 외아들 대현 씨(35)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7을 포함해 총 5필지 5426㎡(1644평)를 매입했다. 동시에 두 딸 지선 씨(40)와 지윤 씨(37)도 방동리 8-1 등 총 2필지 1만 7977㎡(5447평)를 공동명의로 사들였다. 세 자녀 모두 매입 당시에는 가등기로 이름을 올렸다가 이듬해 2월 28일 소유권을 이전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도원 삼표 회장
다만 아침가리는 접근이 어려울 정도로 산골짜기라 평수에 비해 매입가는 그리 비싸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세무조사에서 밝혀진 실거래 가격은 21억 6900만 원. 공시지가 기준(약 3억 5000만 원)으로 보면 상당히 높은 금액이지만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는 “아침가리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 요즘에도 부르는 게 값”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땅을 매입한 배경에는 정 회장의 ‘꿈의 별장’에 대한 욕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땅 매매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A 씨는 “땅을 구입할 당시 정 회장이 ‘삼표왕국’을 지을 것이란 말을 자주했다. 사실 아침가리 땅은 등기부등본에는 여러 명의 소유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있지만 이번 조사에서 밝혀졌듯 실제로는 한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다”며 “정 회장은 이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내게 실소유주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었다. 이런 걸 보면 모든 것을 알아보고 계획한 뒤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땅을 구입한 뒤 실제로 별장을 건립할 움직임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6월 한 취업사이트에 삼표그룹 이름으로 별장관리인 채용공고가 올라온 것인데 그 조건이 강원도 인제에 거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아침가리 땅 및 추후 별장을 관리할 사람을 고용하고자 했으나 적합한 사람이 없어 채용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보자에게 통보된 강남세무서의 탈세제보 처리결과 통지 문서.
중부지방국세청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조사를 실시했던 강남세무서 관계자는 “2월에서야 조사를 마쳤다. 탈루사항에 대해 실제 소유자에게 세금 추징 및 지자체에 통보했다. 지자체에서 정 회장 및 이번 사건에 관계된 인물들에 대한 추가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라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제보자료 및 세무서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정 회장은 두 가지 사안에서 불법혐의를 받고 있다. 먼저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느냐의 여부다. 정 회장은 평균 24만 원에 땅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불과 한 달 뒤에 바로 옆의 땅이 평균 37만 원에 팔린 것. 두 거래 모두 실제 소유자가 같았으며 정 회장이 구입한 땅은 아침가리에서 가장 아름답고 쓸모 있는 땅으로 평가받기에 거래가를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다음으로 편법증여를 위한 부동산실명제거래법을 위반했는지도 관건이다. 앞서 정 회장의 땅 구입을 도왔던 A 씨에 따르면 “수억 원의 돈을 들여 땅을 사면서 정 회장의 자녀들은 한 번도 아침가리를 찾지 않았다. 모든 것은 정 회장의 지시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표그룹 관계자는 “회장님 일가가 땅을 사들인 것은 맞으나 세무서에 매도자 측 조사와 관련해 협조 차원에서 계약서와 거래내역을 제출했을 뿐 정도원 회장이 직접 조사를 받거나 어떤 통보를 받은 일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 최승섭 부장은 “기업총수들의 무분별한 땅 매입으로 인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자연환경훼손은 물론이고 부의 축적 용도로도 악용되고 있다. 땅은 사놓으면 언젠가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에 거리낌 없이 사들인다. 차후 자녀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은 물론이다”며 “토지나 단독주택에 부과되는 세금이 지나치게 낮은 것도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아침가리는 어떤 곳인가…방송국 사장 A 씨도 별장부지로 ‘눈독’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아침가리의 행정구역상 주소지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침가리를 아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워낙 오지인 탓에 아침가리에서도 깊은 산골짜기에 살던 주민들은 군인들은 물론이고 소식을 알려주는 이가 없어 6·25전쟁이 난 것도 몰랐을 정도라고 한다. 주민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야 인근 민가로 내려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오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처럼 고요했던 아침가리는 지난 2009년 KBS의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방송의 힘은 대단했다. 하루에 1000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아침가리 트레킹코스가 각광 받으면서 구석구석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인기 관광지가 됐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들의 흔적이 나타나면서 수려했던 경관도 조금씩 훼손되기 시작한 것. 이에 인제군청은 결국 환경보호를 위해 지난 2011년 7월 1일부터 자연휴식년제를 지정해 2014년 6월 30일까지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이름이 알려진 아침가리를 향한 관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특히 오랫동안 거래가 끊겼던 부동산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아침가리를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이들부터 천연광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업부지 및 투자목적으로 매입하려는 사람들까지, 그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무엇보다 아침가리만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곳이 몇 되지 않는 까닭에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유독 잦았다. 인근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시세를 묻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 별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는데 그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사람들도 찾아왔다고 한다. 현직 방송국 사장인 A 씨도 아침가리에 눈독을 들인 인물 중 한 명인 것으로 전해진다. 개인 명의로 땅 구입을 원했다는 A 씨는 실제 가격을 조정하고 계약 성사 직전까지 일을 진행시켰으나 공교롭게도 이번 세금탈루 사태가 터지면서 결국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A 씨가 또 다시 불미스러운 일에 이름이 오르내릴 경우 타격을 입을 것을 걱정해 미리 발을 뺐다는 후문이다. 또한 A 씨뿐만 아니라 유명 증권투자가, 대학교수들까지도 아침가리에 달려들어 일부는 땅을 매입하기도 했다. 현재는 국세청 및 지자체의 조사로 거래가 뜸한 상태이긴 하지만 사태가 잠잠해지면 또 다시 한바탕 부동산 바람이 불 것이라는 게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들의 예상이다. [박] |
전기공급 결정 과정 의혹…4가구 중 2가구 위장전입? 아침가리는 아직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텔레비전, 라디오는 물론이고 휴대전화까지 사용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어떤 건물이 지어지더라도 전기가 없어 제대로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 하지만 공교롭게도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 일가가 땅을 사들인 시기와 맞물려 아침가리의 전기 공급 결정이 내려졌다. 인제군청 관계자는 “올해 5억 5000만 원의 세금을 투입해 배전공사를 할 예정이다. 이미 예산배정까지 끝난 상태다”고 전했다. 그런데 배전공사 결정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아침가리에는 총 4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중 절반은 주소지만 옮겨둔 상태라는 것이다. 인제군의 한 의원은 “산간오지라도 3가구 이상이 거주하면 농어촌전기공급사업 촉진법에 따라 전기 공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침가리의 경우 위장전입을 통해 이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란 주장이 제기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군청에도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절대 공사를 하지 말라고 요청해둔 상태다”고 말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