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금융위원회는 소관 금융기관 수장들의 재신임 결과를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박대동 예금보험공사 사장,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윤용로 기업은행장 등을 재신임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날 재신임을 받은 인물들의 명단에는 박병원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박해춘 우리은행장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박 회장과 박 행장은 재신임을 받은 인사들과 함께 사표를 제출해둔 상태. 결국 이름이 빠진 두 사람은 사표가 수리됐다는 의미였다.
금융계는 이날의 발표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금융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은 물론 정경득 경남은행장과 정태석 광주은행장 등 지방은행장 두 명도 한꺼번에 교체됐기 때문이다. 당초 금융계는 우리금융지주의 경영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회장과 은행장 중 한 명은 재신임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특히 박해춘 행장의 재신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였다. 박병원 회장의 경우 노무현 정부의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으로 부동산 정책을 총괄했던 관료 출신이라는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했지만 박해춘 행장은 관료 출신도 아닐뿐더러 경영능력 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행장은 우리카드 시장점유율을 1년 만에 6.2%에서 9.1%로 끌어올리고 지난해 1조 7774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는 등 괄목할 만한 경영실적을 쌓았다. 또 은행권 일각에서 박 행장은 투자와 인력양성에 소극적인 은행권의 보수적인 관행을 깨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박 행장의 낙마를 놓고 많은 억측들이 나돌고 있다. 일단 금융권에서는 박 행장이 재임기간을 1년 넘긴 것이 유력한 교체사유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재신임을 받은 4명의 금융기관장은 모두 취임 1년 미만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은행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관련 손실이 7500억 원에 이른 것도 문제가 됐다는 지적이다.
또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인사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 인사는 새 정부 들어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권의 굵직한 인사가 있을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인물. 최근 그는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와 우리은행장 후보로까지 거명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양박’(박병원 박해춘)의 전격 퇴임이 그와 관계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인사 내용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론 재신임 기준을 “재임기간이 짧은 경우를 고려했으며, 정부정책 방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경영성과 전문성,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우선 재임기간의 경우 각각 지난해 3월 26일과 4월 2일 취임한 박해춘 행장과 박병원 회장은 유임된 방영민 서울보증보험 사장보다 불과 2개월여 더 근무했을 뿐이다. 민간 출신이냐 관 출신이냐도 명확한 기준은 아니었다는 평가다. 재신임된 박대동 예금보험공사 사장이나 윤용로 기업은행장의 경우 모두 관료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퇴진은 몇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특히 박 행장은 지난 2월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고 이후 개최된 은행장 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이명박 정부와도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그는 지난달 이 대통령 방미 수행단에 포함되며 유임이 유력하다는 예측이 나돌기도 했다. 그런데도 박 행장이 전격적으로 퇴진 대상에 포함된 이유에 관해 정·재계에서는 “양박의 갈등이 화를 불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박 회장과 박 행장이 각각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의 수장을 맡던 초기에는 두 사람을 ‘이상적인 투톱’으로 보는 평도 있었다. 관료 출신 박 회장과 민간 출신 박 행장의 조합은 나무랄 데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권에는 두 사람의 불화설이 파다하게 퍼졌다.
더구나 불화설의 진원지는 주로 우리금융지주의 계열사에 해당하는 우리은행이었다. 박 행장이 은행 내부 업무를 처리하면서 지주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권한을 행사하면서 우리금융 내부에서는 “박 행장이 좀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얘기가 자주 흘러 나왔다. 최근에는 대놓고 양측이 날을 세우는 모습이 외부로 노출되기까지 했다.
정부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우리금융을 묶어서 매각하는 ‘메가뱅크’ 안을 내놓자 박 회장은 지지 입장을 밝혔지만 박 행장은 “우리 금융은 독자 매각해야 한다”며 엇박자를 냈다.
두 사람의 이런 행보를 금융감독 당국은 조용히 주목하고 있었다. 금융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부부싸움을 해도 다투는 소리가 집 밖에까지는 들리지 않게 해야 하지 않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도 “잔여 임기 등도 고려됐지만 우리금융은 회장과 행장 간의 갈등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얘기가 많아 둘 다 퇴진 대상이 된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정권이 바뀌고 난 뒤 청와대에 유독 두 사람에 관한 투서가 난무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 수장 재신임을 심사하기 전부터 우리금융 내부에서 두 사람에 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있었다”며 “정부와 감독당국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