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블랙잭, 포커 테이블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작은 사진은 강원랜드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딩동’. 오전 10시가 되자 입장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눈빛에 초조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전날 ARS로 예약한 자신의 번호표와 입장 순서를 알리는 전광판에 뜨는 숫자를 비교해가며 카지노 내부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인기가 좋은 바카라나 블랙잭 테이블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빨리 입장을 해야 하기 때문인데 더욱 초조해진다. 입장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이미 서로 낯이 익었는지 “몇 번이냐”는 말로 아침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시작된 입장은 무려 40여 분이 걸려서야 마무리됐다. 오픈과 동시에 10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카지노로 빨려 들어가듯 그렇게 몰려 들어갔다. 기자 역시 오전 9시 30분부터 줄을 섰지만 11시가 가까워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여기에다 창문마저 없어 환기는 되지 않았고 내부도 상당히 더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지노 곳곳에는 사람들이 벗어둔 외투와 가방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지갑이 들어있는 가방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기둥 아래 아무렇게나 가방을 두고 가는 40대 여성에게 도난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여기 감시카메라가 몇 대인데 그런 걸 걱정하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찾아왔지만 식사를 위해 자리를 뜨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식사시간에만 개방하는 카지노 내의 카페테리아도 한산했다.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은 “꾼들은 카지노에 올라오기 전에 배를 채우고 오기 때문에 점심은 그냥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초반에 그나마 머리가 잘 돌아갈 때 집중하느라 밥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후 3시. 입장과 동시에 꾹 눌러앉아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자리를 뜨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곳을 향했다. 바로 은행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있는 곳이었다. ATM 주변은 이미 어지러이 널린 영수증으로 쓰레기장을 연상시킬 정도. 48만 원을 인출하려다 일일한도초과로 출금이 거절된 영수증도 눈에 띄었다.
벌써 두 번째 ATM을 찾은 50대 남성은 “돈을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돈 없는 사람은 자리 맡아두기, 음료수 배달 등의 심부름을 하고 1만~2만 원씩 구걸을 해 게임을 한다”며 100만 원을 인출해갔다. 3분 남짓 잠깐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도 20여 명의 사람들이 돈뭉치를 찾아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ATM을 떠나는 순간 한쪽 구석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두 여성이 슬롯머신 한 대를 두고 자리싸움이 벌어진 것. ‘재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곧 머리채라도 잡을 듯 으르렁거리던 두 여성은 보안요원이 다가가자 이내 ‘합의’를 보고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보안요원 역시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라는 듯 “빨리 해결하세요”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죽치고 베팅과 현금 인출을 반복하던 카지노에도 저녁시간이 찾아왔다. 점심시간과 다른 점은 카페테리아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졌다는 것. 그곳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폐장시간까지 버티려면 이때 잠깐 쉬어줘야 한다”며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카지노장으로 돌아갔다.
쉬어가는 타임이 지나가고 밤 10시가 되자 카지노는 다시 뜨거운 베팅의 열기를 토해냈다. 식사나 휴식을 위해 자리를 비웠던 이들이 모두 집합하는 시간으로 일부 사람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며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피크타임을 맞이했다. 여기에 강원랜드 인근에 머무는 관광객들까지 색다른 밤 문화를 즐기기 위해 카지노로 발길을 옮겨 객장 내부는 북새통이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객장에 머무르는 손님만도 3000명을 넘어섰다. 카지노는 적정수용인원이 2000명인데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8000명, 주말에는 1만 명을 훌쩍 넘기기도 한단다.
강원랜드 카지노에 입장 하려는 사람들이 오픈 시간 전부터 긴 줄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모두 들어가기까지 무려 40분이 걸렸다.
어느덧 시계바늘은 자정을 가리켰지만 카지노 입장객 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2000여 명의 사람들은 마치 기계처럼 베팅을 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행위만 무한 반복할 뿐이었다. 다만 바카라와 블랙잭 테이블은 다소 여유를 찾는 모습이었는데 그래도 1~2겹의 ‘인간 장벽’은 여전했다.
새벽 3시. 더위와 피곤에 지친 관광객들이 1차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여기에다 가진 돈을 탕진한 사람들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이제 진정한 꾼들만 남았다. 바카라와 블랙잭 테이블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끼리만 게임이 이뤄지는 유일한 시간인 만큼 회전율도 상당히 빨랐다. 판돈도 그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노란 색(10만 원)과 검은 색(1만 원) 칩만이 테이블 위로 올랐는데 수백만 원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폐장이 가까워오자 사람들의 손놀림은 더욱 바빠졌다. 슬롯머신에 앉은 사람들은 꾸벅꾸벅 졸면서도 손가락만은 움직이는 신기한 기술을 보여줬다. 딜러들도 카드를 정리하는 시간에 잠깐씩 조는 모습이 보였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않고 한 자리에서 오로지 베팅행위만 무한반복 하는 ‘도박좀비’들만 남은 판. 그들은 폐장이 다가올수록 판돈을 급하게 쏟아 부으며 판을 키웠다. 딜러가 보는 앞에서 한 사람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칩을 주고 테이블 좌석 2~3개를 점유하는 일도 있었지만 아무도 제지를 하지 않았다. ‘고용인’을 따라 게임을 하기에 회전율은 더욱 빨라졌고 한 바카라 테이블에서는 불과 10여 분 만에 3000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최후의 베팅을 하던 꾼들은 폐장을 알리는 방송이 시작되고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이미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 6시. 카지노 밖의 의자는 모두 꾼들의 잠자리로 변해있었다.
기자 또한 하루종일 소음과 낯선 ‘도박환경’에 시달려 머리가 어지러웠다. 취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 대신 “3만 원 대리” “대출 가능” “방 있음” 등을 외치는 호객꾼들이 먼저 반겼다. 바로 대리운전, 여관바리, 불법대출을 알선하는 일명 ‘앵벌이’들이다. 보안요원이 캠코더까지 들고 제지에 나섰지만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앵벌이들을 뚫고 지상으로 나오니 또 하나의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십 대의 봉고차량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강원랜드 인근 찜질방이나 민박집에서 도박꾼들을 실어 나르려고 온 ‘셔틀버스’였다. 그중 하나의 버스를 따라가 찜질방에 들어갔더니 이미 100여 명의 사람들이 잠에 곯아 떨어져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이불을 포함한 도박꾼들의 짐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그렇게 꾼들은 3~4시간의 쪽잠을 잔 뒤 똑같은 셔틀버스를 타고 오전 10시 개장시간에 맞춰 다시 카지노를 찾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초점 풀린 꾼들의 눈동자에 카지노의 빨간 불빛이 다시 반짝거렸다.
강원 정선=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잠깐 - 블랙잭 플레이어와 딜러가 각각 카드를 나누어 받아 그 합이 21 또는 21에 가까운 숫자를 얻는 쪽이 이긴다. 고객은 플레이어(Player)와 뱅커(Banker) 중 하나를 택해 베팅하며 타이(Tie)에는 추가로 베팅이 가능하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카드의 합을 비교해 9에 가까운 측이 이긴다. |
일상화 된 자살사건 “매일 죽어 나가지만 아무도 신경 안 써” 도박에 지친 사람들이 카지노 내부에 있는 호텔 소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오른쪽은 카지노 폐장 시간인 오전 6시에 맞춰 사람들을 태우러온 인근 찜질방 차량들. 강원랜드는 도박꾼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평생 쌓은 재산을 날린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평생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살아온 70대 할아버지는 ‘자살’이라는 단어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강원랜드 개장 이후(2005년) 정선군 인근에서 자살한 사람은 40여 명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통계일 뿐 실제 자살자는 수십 배에 달할 것이라는 게 강원랜드 출입자 및 인근 주민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강원랜드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더 이상 자살사건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지경이 됐다. 사북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20대 여성도 “고등학생 시절 등굣길에 다리에서 목을 맨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너무 놀라 친구들과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하지만 이젠 내 눈 앞에 흰 천으로 덮인 시체가 오가도 ‘또 죽었네’라는 생각만 잠시 들 뿐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 바뀐 것은 사람들의 인식뿐만이 아니다. 한 사북읍 주민은 “자살자가 하도 많다보니 처리방식도 달라졌다. 우선 숙박업소에서 누가 목을 매면 주인이 사설 앰뷸런스를 부른다. 그러면 사이렌도 켜지 않은 앰뷸런스가 달려와 조용히 시체를 처리해간다. 그러고 주인이 알아서 뒤처리를 하면 자살사건이 발생한 것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전했다. 경찰을 부르게 되면 ‘귀찮은 일’이 많이 발생해 이렇게 자살자들을 편법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전당사(전당포가 맞는 표현인데 대부분 전당사라는 간판으로 영업중)에서 만난 한 남성은 “카지노 내부에서도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래서 입장할 때 약 같은 것을 일일이 검사한다. 카지노에서 자살을 하면 사람이 워낙 많고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앰뷸런스를 부르기 쉽지 않다. 때문에 사람만 들어와 시체를 옮기는데 일단 휠체어에 자살자를 태운다. 그 다음 모자와 마스크를 이용해 얼굴을 가리고 담요로 몸을 덮어 지하주차장을 통해 빠져나가는 식으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
큰손들 ‘VIP영업장’ 외면한다 “마치 감옥서 게임하는 느낌” 하지만 강원랜드는 유독 VIP 영업장 운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진정한 ‘큰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인데 그 이유는 다양했다. VIP 고객으로 강원랜드를 찾았던 A 씨는 “개장 뒤 한창 인기가 있을 때는 3000만 원을 예치하면 VIP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곳을 찾은 사람들은 하루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쓰고 가는데 그에 비하면 서비스의 질이 형편없었다. 딜러를 포함한 종업원들의 강압적인 태도와 ‘물 관리’까지 제대로 못하는 모습에 상당히 실망을 했었다. 혼잣말 수준의 사소한 욕설만으로도 출입정지를 당했다”고 말했다. A 씨의 말처럼 강원랜드 VIP 영업장의 분위기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전직 강원랜드 딜러 출신 B 씨는 “내 돈 주고 감옥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다시는 찾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해외 카지노는 왕 같은 대접을 받는데 강원랜드에서는 수십 개의 감시카메라에 둘러싸여 보안요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게임을 하니 오죽 했겠느냐”라고 말했다. VIP 회원들의 출입 보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앞서의 B 씨는 “고객들은 이상하게 강원랜드만 다녀가면 사설 도박 영업자로부터 연락이 오고 주변 사람들이 본인의 출입사실을 알아 기분이 나빴다고 하더라. 이런 얘기가 계속 떠돌자 VIP 인기가 떨어졌다”며 “그러다보니 돈 있는 조직폭력배들이 VIP 영업장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결국 진짜 ‘큰손’들은 해외로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