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표직 불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전 의원을 만나 어려운 결정에 대한 속내를 들어봤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특히 이번에 선출되는 당 대표의 권한은 당의 명운이 걸린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무척 매력적인 자리였다. 그렇다면 김 전 의원은 왜 이러한 뜻밖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일요신문>은 지난 13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직접 만났다. 장고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던 탓일까. 그의 얼굴을 수척했고 입술은 다 부르터 있었다.
―반갑다. 대선 이후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됐는데.
▲대선 패배 후, 한 달 동안은 휴대전화를 아예 꺼놓았다. 패배의 충격이 너무 컸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완강한 보수 사회였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절박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애초 선거전략 짤 때, 진영 대결 논리로 간 게 큰 패착이었다. 지역주의도 여전했고….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도 많이 고민했다.
―당 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됐나.
▲설 연휴를 전후해 당 안팎에서 나의 출마와 관련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한 것은 사실이다.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 크게 둘로 갈렸다. “정치하는 사람은 자고로 기회가 있으면 잡아야 한다”는 시각과 “당을 환골탈태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나 그림을 준비하지 않은 이상 나서지 말라”는 시각이었다. 결국, 후자를 택했다.
―본인 스스로 준비가 부족했다고 판단한 건가.
▲핵심은 국민이 현재 민주통합당을 불신하고 있다는 거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많이 했지만 내 고민 수준은 딱 그 정도였다. 내 능력도 안 되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무턱대고 나가서 여당에 고함치고 싸움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비주류 원외 TK 인사로서 이번 전당대회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쉬움은 없나.
▲많은 분이 그런 말 하더라. TK 출신이 당권 도전하는 기회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렇다고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나 잘할 수 있다”고 말해놓고 아무런 역할도 못하면 그건 사기나 다름없다. 사기를 칠 수는 없지 않나.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신은 ‘친노의 대리인’으로 분류됐다.
▲그 부담이 가장 컸다. 내가 대선 때,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열심히 하긴 했다. 하지만 난 친노 인사들과 정치 행보를 같이 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무척 억울한 부분이다.
―대선 이후 실제 친노 인사들과 당 대표 선거 출마를 논의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게 제일 억울하다. 1월 말, 설 연휴를 앞두고 전해철 의원과 만나긴 했다. 그때 전 의원이 당내에서 나의 당 대표 선거 출마와 관련한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때 난 대선 끝나고 코가 빠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그저 “무슨 소릴 하느냐”고 툭 쳐버렸다. 그렇게 밥 먹고 헤어진 것이 전부다. ‘내가 친노를 갖고 뭘 했다’ ‘이해찬 전 대표를 찾아가 확약을 받았다’는 등의 소문은 다 거짓말이다. 만약 내가 출마한다면 당당하게 나가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어찌 됐건 외부에서는 이번 전당대회를 친노와 비노 간 대결구도로 보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누가 이겨도 부정선거 논란이 있을 것이다. 요즘 유권자들은 스마트하다. 우리 안에서 편 갈라서 진영 논리만 따지면 되겠나. 지금 민주통합당은 국민의 관심과 기대 밖이다. 우리끼리 지지고 볶고, 친노다 비노다 싸움만 하고 있다가는 정말 다 망한다.
―심지어 ‘김부겸이 당 대표 되면, 비노 인사 대거 탈당해 안철수에게 간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얘기 나도 들었다. 친노가 나를 밀어서 당권을 장악하면 (비노 인사들은) 동행 못하겠다는 거 아니냐. 그것 때문이라도 당 대표 선거 출마가 할 짓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나가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는 건 아니다. 정치인은 자기 행적은 자기가 정하는 거다. 뭐 일부 비노 인사가 탈당한다고 해도 이제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나.
대구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한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렇다. 이제 정치권에 안철수라는 새로운 행위자 및 행위그룹이 생겨난 거다.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기존 양당 독과점 구조에 만족 못하는 새로운 세력이 들어온 거다. 국민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거다. 정말 한계가 온 거다. 이제 안철수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우리 민주통합당은 물론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됐다.
―당에 ‘안 전 교수가 출마하는 서울 노원병에 후보를 내지 말라’고 말했는데.
▲어찌 됐건 지난 대선 때, 우리가 안 전 교수에게 신세를 진 것은 맞다. 그래서 한 말이다. 안 전 교수가 이번 재보선에서 당선돼 기존 정치권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그 다음 문제다.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이제 안철수 세력과의 대결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올해 10월 재보선까지는 분명 야권 내 양 진영 간 치열한 샅바싸움이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양 진영 모두 실력대결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 깨달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새누리당이라는 강고한 세력이 버티고 있다. 하다못해 선거 때가 되면 몇 표가 되지 않는 진보 정당도 연합하지 않나. 결국 따로따로 가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서로가 알아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는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따로 해서 어떻게 되겠나. 양 진영 간 샅바싸움 하는 동안 분열의 한계를 깨닫고 내년 지방 선거 때는 공동 대응해야 한다. 그렇게 안 했다가 여당에 지면 누가 책임지겠나. 마음만 앞서 불장난만 저지르면 되돌리기 어렵다.
―당 대표 출마 포기 선언을 앞두고 안철수 진영과 접촉은 따로 없었나.
▲그런 적 없다. 정치인은 근본을 지켜야 한다. 서로 힘을 합쳐서 일할 때가 있고, 자기가 속한 정체성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지켜야 할 때가 있다. 내가 안철수 전 교수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하고 이것은 다르다. 이를 함부로 어기면, 국민의 정치적 신뢰가 깨진다. 난 지난 1995년, 김대중 당시 총재가 민주당을 분당할 때도 안 따라갔던 사람이다. 아무리 DJ가 훌륭한 지도자라고 해도 명분 없이 분당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난 약삭빠르게 정치하지 않는다.
―앞으로 계획은.
▲당연히 대구에서 활동을 이어간다. 내 꿈이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전국정당 하나 제대로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 숙명이자 지난 총선 때, 40% 이상의 지지율을 보내준 대구 시민에 대한 예의다. (총선에서) 달랑 한 번 떨어졌다고 내 실험 끝낼 생각 없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영남에서 야당 정치 하겠다는 사람은 나오게 해야지. 다만 아쉬운 점은 지역위원회도 엄연한 제도권 정치조직인데, 내가 원외 인사라 현행법상 후원금 등 자금 지원이 어렵다는 점이다. 심지어 간판도 못 단다. 지역 활동에 한계가 많다. 현재 민주통합당 영남 지역구가 60여 개인데 그 중 사무실 내놓고 평시에 정당 활동을 하는 이는 5~6명 안팎이다. 지역 정치 활성화를 위해 정치자금법 등 제도의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본인은 출마를 고사했지만, 앞으로 당 대표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친노와 비노는 대선 패배 책임론을 갖고 싸우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어느 한 쪽은 정치적 사망을 선고받게 된다. 후보자들 스스로 본인의 지지층만 인식하는 계파적 싸움을 하면 안 된다. 그것보다 당의 쇄신, 향후 공천에 대한 고민, 내년 지방선거에서 타 세력과의 연대 문제, 안철수 세력과의 관계 등 실제 첩첩산중으로 놓여 있는 문제를 갖고 서로 토론하고 경쟁해야 한다. 후보자들 스스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얘기다. 본인 세력의 표 묶어내는 이야기만 했다가는 국민이 등을 돌릴 거다. 나도 앞으로 가만히 있지 않고 당에 쓴소리 다 할 것이다. 지켜봐 달라.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내년 지방선거 출마 “글쎄” 그러면서도 그는 “어려운 문제”라며 “3년 후 총선 출마는 내 정치적 결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방선거 출마 문제는 우리 민주통합당뿐 아니라 대구·경북 시민사회는 물론 안철수 세력과도 논의해 결정할 부분”이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문재인에 바란다 ‘선거의 여왕’ 역할 딱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그러면서 김 전 의원은 앞으로 문 의원의 역할을 명확히 제시했다. 그는 “문 의원은 정치적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사람이다. 앞으로 야권 재개편과 안철수와의 관계 설정 등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며 “무엇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문 의원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선거의 여왕’ 역할을 했으면 한다. 특히 지방선거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런 새로운 인물들은 자신을 알리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만약 문 의원이 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벌인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야권에서 문재인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문재인 의원직 양보 논의 있었다 안철수 부산 사상 출마할 뻔 당시 상대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비례대표 의원직(현재 이운룡 의원이 승계)을 내놓으면서 이와 비교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부겸 전 의원은 “사실 당시 선대위 내부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하지만 민주통합당에 있어서 부산에서 갖는 한 석의 의미가 너무 컸다. 현재 우리는 영남에서 고작 경남 한 석, 부산 두 석을 갖고 있다. 만약 부산 한 석을 내놓으면 당장 새누리당에 빼앗길 수도 있는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안철수 캠프와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는 문제도 실제 당 내부 차원에서 논의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안민석 의원이 지난해 12월 28일 <일요신문>(1077호)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대목이기도 하다.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 전 의원은 “실제 그런 논의가 있었다. 우리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왜 하지 않았겠나. 다만 후보 단일화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흐지부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대선 당시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 협상이 매끄럽게 진행됐다면, 안 전 교수는 현재 서울 노원병이 아닌 문재인의 부산 사상 지역구에 출마했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