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교수가 지난해 11월 4일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광주시민과 ‘번개 모임’을 한 모습. 사진제공=안철수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귀국을 전후해 몇몇 여론조사기관들은 ‘안철수 신당’이 창당된다는 가정하에 정당 지지율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단발성 조사를 잇달아 시행했다. 조사 결과 대부분은 안철수 신당이 현재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을 10%포인트(p) 차 이상 압도하는 것으로 나왔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전통적 야당의 텃밭이자 지난 대선 민주통합당에 90% 이상의 표를 몰아줬던 호남지역에서도 안철수 신당이 민주통합당의 정당 지지율을 앞섰다는 데 있다. 지난 8일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 안철수 신당은 호남에서 2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민주통합당이 기록한 25%를 넘은 수치였다. 같은 날,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안철수 신당은 호남지역에서 34.4%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24.1%의 지지율에 그친 민주통합당을 10%p 이상 앞섰다. 이 밖에 비슷한 기간에 실시한 여타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도 모두 비슷했다.
장덕현 한국갤럽 부장은 “제한된 자료로 진행된 단발성 조사이고,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쉽게 예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내년 지방선거 때 수도권 중원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안철수 세력에 대한 지지율이 확산된다면 그 영향은 호남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현재 분명한 것은 호남이 지난 대선 패배를 전후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요신문>이 광주 현지에 직접 내려가 확인한 호남 민심은 이미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현지에 도착해 처음 찾은 광주 유동 인근의 한 식당 주인은 “근처에 있는 민주당 전남도당 사무실이 어딘지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울에서 왔느냐”고 대뜸 묻더니 “우리 호남 사람들, 지난 대선 패배 이후에 민주당에 대한 마음 떠난 지 오래다. 아마 여기 사람 붙잡고 물으면 다 욕할 거다. 그러니 도당이 어디 있는지 난들 어떻게 알겠느냐”라며 거칠게 답했다. 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의 삭막함을 그대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자가 현지에서 만난 민주당 호남 지역 시·도당 내부 인사들은 이러한 호남 민심의 변화와 안철수라는 대안 세력의 바람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진 민주당 전남도당 사무처장은 “아직까지 탈당한 인사는 한 명도 없다. 지역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대선 패배도 다 지난 일”이라며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안철수 신당은 아직 실체도 없다. 실체가 없는 것을 물어보는 여론 조사는 말도 안 된다. 거품이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물론 현재 호남 지역에서 안철수 지지 세력들이 규합하고 있는 것은 나도 안다”면서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 공천을 못 받거나 쫓겨난 비주류에 불과하다. 그런 ‘반 민주당 연대 세력’은 선거 때마다 있어왔다”고 덧붙였다.
위성부 민주당 광주시당 사무처장 역시 “대선 패배 이후 호남 민심이 ‘멘붕’ 상태고 안철수의 새정치 바람이 이곳에 불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5·4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각 진영 간 선명성 경쟁이 시작된다면 이러한 모든 걱정스러운 상황들은 자연스레 수습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러한 당내 인사들의 바람과 달리 이미 호남의 안철수 바람은 심상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전문가는 “최근 호남 지역에 내려가 지역 당원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FGI(표적집단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겉으로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호남 지역 당원 상당수가 안철수 진영으로 마음이 돌아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상황은 이미 당 중앙에서도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남의 일반 민심은 물론 당 내부도 술렁이고 있다는 얘기다.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대선은 호남 지역민들이 민주당에 준 마지막 기회”였다면서 “이미 민주당에 대한 불신은 과거부터 시작됐다.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다. 특히 영남을 중심으로 하는 친노 세력을 우리 호남인들이 두 번이나 밀어줬지만, 결과는 두 번의 패배였다. 이미 민주당은 호남에서 90%의 지지를 보내줘도 정권 창출도 못하는 능력 없는 세력으로 치부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18일 광주 대인시장을 방문한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조 교수는 특히 “호남에서는 이미 지난 대선 기간 당시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전 교수를 상대로 단일화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당원 절반이 안 후보에게 지지를 보냈던 전례가 있다. 안철수의 바람은 이미 그 때부터 시작됐다”면서 “다만 아쉬운 것은 당시 안 전 교수가 준비도 부족했고 지역 조직을 규합하는 능력도 부족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제 현실 정치판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재홍 광주시의회 의원(예결위원장)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한 인사다. 현재 그는 호남 지역의 안철수 지지 포럼인 ‘광주진심포럼’의 공동대표를 맡아 조직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
손 의원은 “최근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이 흔들리고 있다. 현재 이들 중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나와 비공개적으로 접촉하며 탈당과 안철수 신당 창당 후 입당을 고민하는 인사들이 꽤 있다. 이게 현실”이라며 “만약 내년 지방선거에 안철수 진영이 신당을 창당하고 이러한 세를 규합해 호남에 후보를 낸다면, 현재 민주당과 6 대 4 싸움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김환희 미래도시구상연구원 연구팀장은 현재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며 광주진심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당원이다. 김 팀장은 지난 총선 당시 민주당 청년당원 비례대표에 입후보했다 낙선한 바 있다. 그는 “나도 민주당원이지만, 아직까지 당 내부에서 대놓고 안철수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내지 못한다. 하지만 서서히 변하고는 있다”면서 “처음에는 당 내에서 안철수를 지지하고 있는 나의 행보에 대해 많은 욕을 쏟아냈지만, 이상하게 요즘 들어 그런 분위기가 싹 없어졌다. 내심 당 내부에서도 안철수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팀장은 좀 더 현실적인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호남에서 민주당이라는 거대 정당 안에서 경쟁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공천 받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면서 “그러한 민주당 내 경쟁 이외에 안철수 세력이라는 또 다른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면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조정관 교수 역시 “당원들 사이에서도 민주당의 정당공천제에 대한 불만이 많다”면서 “정당 공천제 폐지를 주장한 안철수 세력을 통해 출마하고자 하는 당원들도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호남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안철수 바람이 내년 지방선거까지 계속된다면, 민주당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게 될 수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수도권도 중요하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게 더 중요한 것은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지역이다. 지금 이대로 가다간, 호남에서 안철수 이기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면서 “특히 민주당이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 자리를 빼앗긴다면, 그것은 결국 ‘끝’을 뜻한다. 악몽 중 악몽이란 얘기다”라고 지적했다.
정치컨설턴트 김능구 이윈컴 대표 역시 “안철수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에서 크게 선전한다면 당연히 호남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다만 안철수 쪽은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직접 선거에 내보낼 거물급 인사 영입이 필수다. 현재의 금태섭 같은 신선한 인물은 총선에 적합하지, 지방선거에 적합하진 않다. 고건 정운찬 문국현 등 성향적으로 규합이 가능한 인사들을 영입해 지방선거를 치른다면 승리를 점칠 수 있다”고 내년 지방선거 결전 전에 인적 영입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선 패배 후 밖에서 시작된 민주당의 총체적 난국 상황은 이제 전통적 안방인 호남 텃밭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안철수 신당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에게 있어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셈이다. 오는 5·4전당대회를 통해 들어설 민주당 지도부의 호남 위기극복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광주=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광주진심포럼·광주시민포럼 ‘안 지지세력’ 충성 경쟁 두 파로 갈라져 세력 모으기 안철수 바람이 불기 시작한 호남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철수 앓이’를 둘러싼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이 경쟁은 호남 지역에서 안철수 지지 세력을 규합하고 있는 두 포럼 조직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부터 광주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조직인 ‘광주진심포럼’과 진심포럼에서 갈라져 나온 ‘광주시민포럼’을 두고 하는 얘기다. 광주진심포럼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인물은 안철수 진심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친동생 장하경 광주대 교수(포럼 공동대표)다. 현재 이 포럼에는 범희승 전 전남대병원장이 상임대표를 맡고 있으며 손재홍 광주시의원이 조직담당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구성원 상당수는 장 교수를 비롯한 지역 교수들이다. 광주진심포럼은 지난 14일 무등산 등반 행사를 가진 뒤 안철수 전 교수의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손 의원에 따르면 현재 해당 포럼은 안철수 진영의 핵심 인사인 강인철 변호사와 주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광주진심포럼에서 하나의 분파가 갈라져 나왔다. 포럼 초창기, 공동대표를 맡았던 조정관 전남대 교수가 광주진심포럼에서 이탈해 광주시민포럼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규합한 것. 조 교수는 이에 대해 “광주진심포럼은 교수들이 중심이 됐기 때문에 동력이 부족했다.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부 문제가 있는 정치권 인사들이 개입하면서 함께 활동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우리 시민포럼의 참여 인사들 상당수는 시민사회 인사들이 주축이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현직 지자체장들도 참여하고 있고 일부 민주당 인사들과도 교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광주시민포럼에는 나기백 참여자치21 대표 등 시민 인사들과 진심캠프 민원팀장을 역임했던 이상갑 변호사, 김영집 전 국토균형발전위원회 사무처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해당 포럼의 주요 소통 창구는 진심캠프 대외협력실장을 역임했던 하승창 씽크카페 대표다. 조 교수와 하 대표는 연세대 80학번 동기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