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선진당이 합당을 선언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에 선진당 출신 인사들은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며 날카로운 반응을 쏟아낸다. 새누리당은 사태가 커지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뾰족한 방법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 큰 선거를 앞두고 무리하게 합당을 추진해온 정당사의 부작용인 셈이다. 지난 2007년 창당해 충청 기반 정당으로 인정됐음에도 결국 거대 여당에 의해 갈 곳이 없어진 선진통일당 사람들의 비애를 들춰봤다.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의 합당이 공식 발표된 것은 지난해 10월 25일. 대선을 두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새누리당은 선진당과의 합당을 통해 ‘보수대결집’과 충청지역 지지세력 확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심산이었다. 결과적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은 세종시를 비롯한 충청권 전역에서 득표율 1위를 기록하며 당선됐다.
하지만 당시 ‘흡수합병’ 처지에 놓인 선진통일당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합당 조치가 결정되자 일부 당원들은 당 대표였던 이인제 의원의 ‘매당 행위’로 규정하며 법원에 합당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원내대표를 역임한 류근찬 권선택 전 의원은 탈당한 뒤 민주통합당으로 당적을 옮기기도 했다.
선진통일당 중앙당 당직자 출신 이 아무개 씨는 “합당 당시 찬반 여론이 뜨거웠지만 찬성하는 쪽에서는 내심 2014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 이름을 달고 출마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며 “또 지역에서 자신들을 배려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팽배했는데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결국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것 아니냐. 앞으로 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시의회 한 시의원은 “실제 합당을 하면서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서 지방선거 때 우선 배려해 줄 것처럼 많이 이야기 됐다. 물론 그걸 다 믿은 사람은 별로 없었겠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선진통일당 시·도당 당직자들은 대선이 끝난 이후 아예 ‘실직자’로 전락해 버렸다. 선진통일당 사무처장을 지낸 A 씨는 지난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합당 당시 선진통일당 당직자는 중앙당 19명, 시·도당 26명을 합해 총 45명 수준이었다. 중앙당 당직자들은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에 합류하거나 대선이 끝나고 여의도연구소로 들어가는 등 고용이 보장됐지만 시·도당 사람들은 3개월이 넘도록 실직 상태에 머물러 있다”며 “현재 26명 가운데 10명 이상 다른 직업을 찾아 정당을 떠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특히 A 씨는 중앙당 당직자들의 고용 사실을 또 다른 시·도당 사무처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는 “한 달 전 (또 다른 시·도당 사무처장인) B 씨와의 안부 전화에서 중앙당은 이미 고용이 완료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나는 새누리당에서 연락 한 번 받지 못했다”며 “당시 B 씨가 고용 문제를 따지자 새누리당 측에서 ‘선진당 사람들을 고용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며 “뭐 하자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이미 많은 당직자가 제 살 길을 찾아 당을 떠나는 상황에서 계속 시간을 끌어 1명이라도 부담을 덜 지려고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일부 선진당 당직자들은 ‘강경모드’로 돌변했다. 실제 한 시·도당 사무처장은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선 과정에서 불법선거운동을 고발하겠다”고 폭로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시·도당 사무처장은 통상 회계책임자와 함께 선거를 책임지고 통솔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선거기간 중 이뤄지는 각종 불법 행위를 속속들이 알 개연성이 있다. 현재 이 사무처장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며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의원실 소속 한 베테랑 보좌관은 “선거 과정에서 비용 지출에 있어 완전히 자유로운 당은 없을 것이지만 알고 보면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닐 것”이라며 “그냥 고용이 이뤄지지 않자 폭로하겠다는 핑계로 문제 해결에 나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사정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당법상 유급당직자는 중앙당이 100명, 시도당의 경우 5명 이내로 제한돼 있어 고용을 늘리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11일 있었던 새누리당 당직 개편 당시 선진당 고용승계 문제가 거론됐지만 별 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다음날 A 씨를 포함한 7명의 시·도당 사무처장은 서병수 사무총장과의 면담을 위해 직접 사무총장실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하는 등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실 관계자는 “선진당 당직자와의 면담 일정은 아직 잡지 못했다. 고용승계 문제는 전체적으로 총무국에서 총괄한다”는 입장이었다. 새누리당 총무국에서는 “관련 사안은 사무처장실에서 진행하고 있다. 현재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그래도 당에서 1급이던 사무처장들을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당에서 받아주고 싶어도 그럴 사정이 못 되는 것도 이해해 달라”고 전했다.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 후 몇 시간 뒤 사무총장실에서는 “서병수 사무총장이 직접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전해 왔다. 선진당 당직자들의 불만이 이슈화되자 당 내부에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26일경 서병수 사무총장이 직접 선진당 전직 사무처장들과 만나 고용 문제를 의논할 것이라고 한다. A 씨는 지난 21일 기자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폭로 이야기까지 거론되고 언론에서 취재가 시작되자 그제야 해결에 나서는 것 같다”면서 “‘을’의 입장인 우리로서는 일단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