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내부에서는 김무성 전 의원의 부산 영도 재선거 공천 신청을 두고 정치적 셈법이 분주하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새누리당 이재균 의원이 직(職)을 상실하면서 4월 재선거가 치러지는 부산 영도에 김무성 전 새누리당 의원이 공천을 단독 신청했다. 즉, ‘김무성의 출현’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집권 여당, 새누리당 내부의 정치적 셈법이 분주하다.
김무성 전 의원이 당선되면 5선이 된다. 정몽준 의원(7선), 강창희 국회의장(6선) 다음 선수(選數)로 황우여 당 대표, 이재오 정의화 남경필 의원과 5선 동지가 된다. 당으로서는 ‘대표감’이 불쑥 등장하는 셈이다. 그러니 그의 출현을 막고자 하는 세력이 공천을 두고 깊은 고민에 잠겨 있는 모양새다.
정치권 호사가들 사이에서 무게감으로는 김무성 전 의원의 당 대표론이 충분하다는 반응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편안 논란에서 현 지도부가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준 데 따라 당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묵직한 지도자감에 목말라 있다는 것. 4월 재보선이나 10월 재보선 또는 새 정부 임기 첫해 집권 여당이 힘을 잃어갈수록 ‘김무성 선장론’은 언제든 제기될 수 있다. 다른 말로 황우여 대표체제의 ‘예비체제’가 갖춰진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차기 지도부는 혼란 없이 배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권은 김 전 의원의 우호 그룹과 비토 그룹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일각에서는 차기 부산시장 자리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 서병수 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김 전 의원의 공천과 당선을 돕고, 김 전 의원이 원내에 진입한 뒤 서 총장을 밀어줄 수 있다는 ‘딜(Deal)’이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해 대선정국에서부터 전략적 요충지가 된 PK(부산·경남)에서 김 전 의원은 든든한 배경을 얻게 된다.
그는 충성스런 친박근혜계였다가 18대 국회에서 박 대통령과 견해차를 보이면서 ‘탈박’했다. 19대 총선에선 예상을 뒤집고 ‘불출마 뒤 백의종군’을 택했다. 이후 대선 정국에서 보수 대결집을 위해 박근혜 캠프의 주요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언제든 박 대통령과 맞설 수 있는, 직언이 가능한 인물”라는 게 우호 세력이 모이는 이유다. 이제 ‘박근혜 당’이라는 간판을 벗어 던지고 건강한 여당이 되려면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오랜 기간 정치 경험을 쌓은 ‘정치 달인’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 전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당시 박근혜 전 대표의 반대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당 원내대표직을 받아들였다. 이후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싸고 이 대통령은 경제과학 중심도시로 바꾸겠다고 밀어붙였고, 박 전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며 반대했는데 이때 김 전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 편에 선 것이다. 아는 이가 많지 않지만 이 대통령은 정권 초기 미국산 쇠고기 촛불 정국 때 김 전 의원을 정무장관에 앉히려고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때에도 박 전 대표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반대로 새 정부의 연착륙을 돕고, 박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하면서 청와대와 긴밀히 교류할 필요성이 있는 집권 여당으로선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성격의 ‘무대(친박계가 김무성 대장을 줄여 부르는 말)’가 곱지만은 않다는 게 비토 세력의 판단이다.
김 전 의원 스스로 자신의 공천에 다소 부정적인 인사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등 사전 정지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결국 공천 최종 결정은 당 지도부가 하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무주공산으로 여겨졌던 부산 영도에 김 전 의원이 공천을 단독 신청하면서 공정한 경쟁(경선)을 일부러 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내놓고 있다.
그간 영도에서는 노기태 전 부산항만공사 사장, 영도가 지역구였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보좌관 출신 안성민 전 시의원, 부산고 출신인 조현오 전 경찰청장, 김중확 전 부산경찰청장, 영도 출신인 최홍 ING자산운용 대표, 부산남고 출신인 손교명 변호사, 석동현 전 검사장 등이 후보군으로 자천타천 거론됐다.
김 전 의원은 현재 어깨에 짊어진 짐이 없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상황이다. 김재철 MBC 사장의 해임안 부결 처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부터 고발당했지만, 검찰이 최근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박 대통령 당선을 최일선에서 도왔다는 점은 여권 누구나 수긍하는 부분이다.
지금으로선 마땅한 당 대표감이 없는 TK(대구·경북)로선 ‘TK 역차별’을 조종하고 있는 수도권 출신보다 ‘우리가 남이가’로 통하는 PK가 조금 더 가깝다. 특히 그는 친이명박계와도 가까운 편인데 이는 그의 선친 김용주 의원의 덕분이다. 부산 남구에서 4선을 했지만 아버지가 포항에서 큰 기업을 경영했고, 포항 영흥초교 설립자이기도 하기 때문. 이명박 대통령도 영흥초교를 졸업했고, 이병석 현 국회 부의장도 영흥초교를 나왔다.
김무성 전 의원이 1월 18일 중국특사로 파견되기 전 박근혜 당선인을 만나는 모습. 오른쪽은 김 전 의원이 지난해 12월 20일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 후 캠프 관계자들과 함께 축하인사를 나누는 모습.
게다가 정치 스타일도 카리스마와 포용력, 친화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다수다. 무엇보다 새누리당 밖에서 그를 지원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 박 후보 측근들의 비토로 캠프 합류가 불분명해졌다가 김 전 의원이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케어(Care, 관리)해준 인물들이 ‘무대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이번 청와대 인사에서 또 물 먹으면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여권의 뇌관’이었다.
문제는 ‘박심’,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다. 역대 국회에서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당 지도부나 원내 지도부가 나오는데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이 사실인 만큼 “좌장을 두지 않는다”며 김 전 의원을 겨눴던 박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가 관건인 셈이다.
김 전 의원은 분명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거칠 게 없는 언변의 소유자인 그가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표일 때 욕을 섞어 가며 거친 지적을 했었다는 점에서 박심이 작용하면 그의 역할론은 힘을 잃을 수도 있다. 그 스스로 “사실 내 말이 거칠다. 그건 내 약점이다. YS 모실 때도 측근들끼리 모이면 YS를 욕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다 애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보수 여당에 애정이 많은 이들 사이에서는 김 전 의원의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될 것이라 입을 모은다. 그의 존재만으로 아군이 되는 경제계 인사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김 전 의원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외삼촌이다. 현 회장의 아버지는 작고한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이며 어머니는 김 전 의원의 큰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이를 기반으로 김 전 의원은 정몽준 의원과도 인연이 깊다.
또한 김 전 의원 둘째형의 장인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과 전두환 대통령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오탁근 씨고, 오 씨의 매형이 재무부 장관을 지낸 천병규 씨다. 김 전 의원의 장인은 5선 국회의원인 최치환 씨다. 관계에서 은퇴한 후에는 삼성그룹 고문과 경기고 총동창회 회장을 지냈고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과도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현정은 회장의 조부인 현준호 씨, 그러니까 김 전 의원의 누나 김문희 이사장의 시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호남은행을 설립해 운영하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피살됐는데 현준호 씨가 발탁한 경남 산청 출신의 경리전문가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외조부인 김신석 씨다.
한 정치권 인사는 “솔직히 국회의장이 정치적 꿈이라는 김 전 의원에 대해 주위에서 ‘대망론’을 거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장 새누리당에서 차기 후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 그의 대망론을 부채질하는 이들의 논리다. 그가 원내로 들어와 어떤 정치력을 펼치는지에 따라 그의 정치적 꿈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김 전 의원은 “이번 영도 재선거가 마지막”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몸을 던지겠다는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서산에 지는 해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듯, 제가 그동안 배우고 쌓았던 연륜을 총동원해 정치발전과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가 과연 부산 영도의 파도를 헤치며 승리하고 원내로 귀환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