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한국전통음식연구소
봄이 되면 쑥은 우리를 깨운다. 들판 양지바른 곳에서 쑥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면 봄이 왔음을 새삼 느낀다. 온 땅이 쑥밭이다. 쑥 캐는 아낙의 모습이 정겹다. 쑥은 우리가 등을 돌려도, 헤어질 수 없는 운명 같은 걸 암시한다. 잊고 있어도, 잊으려 해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우리를 일깨운다. 그래서 감히 범접하지 못할 신성함마저 느끼게 한다.
쑥으로 해먹는 전통음식 가운데 애탕이 있다. 도톰하게 살이 찌고 솜털이 보슬보슬한 애쑥으로 끓인다고 해서 애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쑥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선 숙종 때에, 홍만선이 농업과 의약 및 농촌의 일상생활을 기록한 백과사전 <산림경제(山林經濟)>와 조선 순조 9년에 빙허각(憑虛閣) 이씨가 편찬한 부녀자의 생활 지침서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맑은 장국의 하나인 완자탕 만들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큰 생선을 살만 발라 곱게 두드려놓고, 돼지고기 또는 쇠고기, 생회, 닭 중에서도 하나를 곱게 두드려 후추, 생강, 파, 표고를 기름장에 합하여 주물러 밤톨만하게 환을 만들되, 가운데에 온 잣을 하나씩 넣어 계란이나 녹말을 씌워 장국에 간 맞추어 끓인다.
궁중에서도 애탕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이 의친왕(義親王)이다. 의친왕의 부인 김씨(1878∼1964)는 한때 영화를 누렸으나 쓰러져 가는 황실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고 돌아가신 분이다.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대자리에서 태어나 14세까지 거기서 자란 까닭인지 등산을 좋아했다. <동아일보> 1964년 1월 20일자 최은희 선생이 쓴 글 ‘영화와 비운의 구름다리 의친왕비의 생애(하)’를 보자.
성북동 별장에서 한 등을 넘어가면 정릉이요, 별장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동안 하루해가 지나가므로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여자 하인들을 풀어서(중략) 그리로 데리고 가면 별장지기도 신이 나서 멧부리를 캐어 떡을 하고, 애탕을 뜯어 국을 끓이고, 쑥을 다듬어 버무리를 찌고 냉이로 나물을 무쳤다.
애탕은 1920~1930년대까지만 해도 언론에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조선음식으로 자주 소개됐다. 1937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를 보자. 조자호 선생이 고유한 조선음식 몇 가지를 소개하는 중에 애탕이 들어가 있다.
이 애탕은 특히 정월에 해 먹으면 별맛이 있는 것인데 양지쪽에 파릇파릇 난 쑥을 뜯거나 떡집에 가면 파는 것도 있습니다.
재료. 애쑥, 정육, 계란, 녹말가루, 파, 참기름, 깨소금, 간장, 후춧가루.
만드는 법. 먼저 쑥을 곱게 다져서 체에다 담아 물에 띄워 푸른 물을 다 빼가지고, 고기를 다져, 한데 양념해서 둥글고 납작스름하게 엽전 넓이보다 좀 크게 만들어 놓고, 고기를 잘게 채를 쳐서 양념해서 장국을 끓이다가 만들어놓은 쑥에다 녹말과 계란을 씌어 잘 끓는 국에 다 넣으면 익어서 떠오르거든 상에 떠 놓습니다. 겨울이니만큼 움파가 있으니 파 잎만 한 치가량 잘라서 국에 넣으면 더욱 좋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애탕을 정월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월에 양지바른 곳에서 갓 자란 애쑥을 재료로 삼았다. 봄에 올라오는 솜털 보송보송한 애쑥은 부드럽고 향도 좋아 식용으로 쓰기 알맞다.
하지만 애탕은 요즘 가정집에서는 찾기 어려운 음식이 되었다. 언론에서도 1940~1980년까지 애탕에 대한 언론기사는 찾기 힘들다.
애탕은 2007년 7월 허영만 화백이 <식객> 17편에 소개해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또 지난해에는 올리브TV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2회에 나온 김혜숙 도전자가 애탕을 선보여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요리법도 비교적 자주 소개된다. 하지만 1930년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만들어먹던 것을 생각하면 부활했다고 보기는 이르다.
[참고문헌] 네이버 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