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다저스의 2선발 중책을 맡으며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됐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한국 무대 7년간의 프로경험이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아직 신인 신분인 점을 감안하면 다소 파격적인 기용이다. 하지만 ‘2선발’이라는 타이틀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당초 다저스의 2선발은 지난 오프시즌 6년간 1억 4700만 달러의 FA 계약을 맺은 잭 그레인키가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그레인키가 훈련 도중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코칭스태프는 그를 시즌 네 번째 경기인 피츠버그와의 3연전 첫 경기에 등판시키기로 결정했다.
조시 베켓이 시범경기 초반 호투를 통해 일찌감치 3선발로 낙점 받은 상황에서 빌링슬리가 불의의 집게손가락 부상으로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은 것도 류현진이 2선발로 낙점 받는데 중요한 요인이 됐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아무런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류현진을 2선발로 결정했다는 사실 자체는, 매팅리 감독의 류현진에 대한 신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데뷔 첫 경기가 약체로 분류되는 피츠버그 대신 지구 라이벌이자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라는 점은 부담스럽다. 지난해 포수 포지션임에도 타격왕에 오르며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한 버스터 포지는 좌 투수 상대 .433의 타율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기록했으며, 산도발과 스쿠타로 등도 류현진이 경계해야 할 타자들이다. 특히 포지는 지난해 체인지업을 공략했을 때의 타율이 무려 .456으로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하는 류현진이 특히 조심해야 하는 타자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해 팀 홈런 최하위에도 불구하고 리그 득점 6위에 올랐을 정도로 공격의 응집력이 대단히 강한 팀이며, 좌 투수에 강점을 보이는 팀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좌 투수 상대 타율은 .272로 리그 3위를 기록했으며, 좌완 선발을 상대한 경기에서 40승 19패의 성적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오른 팀이다.
시범경기를 통해 드러난 류현진이 풀어야 할 숙제는 명확히 드러난 상황이다. 지난 2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 전까지 류현진은 시범경기 23.1이닝을 소화하며 10점을 내줬다. 10실점 모두는 선두타자를 출루시켰을 때 허용한 점수들이었다. 또한 8개의 볼넷을 허용한 류현진은 다섯 차례가 선두타자에게 허용한 것이었는데 이 중 세 차례나 실점으로 연결됐다. 선두타자 봉쇄는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성공적 데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다.
류현진이 시카고 화이트삭스전까지 기록한 투구 수는 총 385개다. 이중 스트라이크는 228개로 스트라이크 비율이 아직까지 60%가 채 되지 않고 있다(59.2%). 최고의 호투를 선보였던 화이트삭스전 역시 스트라이크 비율은 57.1%(56/98)에 그쳤다. 이는 매 경기 1회 제구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선발로 나선 다섯 경기에서 류현진은 1회 평균 투구 수 22.2개를 기록했다. 자신의 시범경기 이닝 당 평균 투구 수 16.5개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경기 초반 직구 제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류현진은 1회 스트라이크 비율이 56.8%(63/111)로 더 떨어진다. 류현진이 경기 전체를 자신의 페이스대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초반 제구의 정교함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아직 완전치 않은 제구 속에서도 시범경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볼넷/탈삼진 비율(8볼넷/23탈삼진)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류현진이 구사하는 구질 가운데 가장 위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슬라이더도 변수다. 류현진은 현재까지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슬라이더 대신 직구·체인지업·커브를 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선발투수가 세 가지 구종으로 살아남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류현진이 새로운 구종 추가는 없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좌타자를 상대할 때 주로 던지는 슬라이더가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을지는 생각보다 많은 결과들을 바꿔 놓을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 첫발을 내딛는 선수가 2선발로 시즌을 시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인 류현진에게도 개막 이튿날의 선발등판은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2선발이라는 중책을 충실히 소화해내며 커쇼와 강력한 원투펀치를 이룬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관점에서 또 달라질 수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류현진의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연착륙을 기대해본다.
김중겸 순스포츠 MLB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