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그룹이 승자의 저주에 휘말렸다. STX팬오션을 매물로 내놓은 데 이어 STX조선해양마저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됐다.
‘승자의 저주’를 받은 대우·금호·웅진·STX, 네 그룹을 관통하는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무리한 인수다. 특히 빚을 얻어 경기 민감형 중후장대 업체를 끌어안았는데, 경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돈이 제대로 돌지 않아 주저앉았다.
대우그룹은 외환위기 와중에 쌍용자동차를 인수했고, 금호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달아 삼켰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웅진그룹 역시 금융위기 여파로 건설시장이 얼어붙은 와중에 극동건설을 인수했고, 유럽 재정위기로 성장동력을 잃은 태양광사업에까지 진출했다가 낭패를 봤다. STX도 금융위기 와중에 유럽 크루즈업체인 아커야즈를 인수하고, 중국에 조선소까지 세웠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 업황이 나아지지 않으면서 끝내 그 부담을 견디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 위기 전후로는 비교적 싼 값에 매물로 나오는 기업이 많은데, 이를 달리 해석하면 그만큼 자체 정상화가 어렵다는 반증”이라며 “그럼에도 싼 값에만 주목해 인수에 나섰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고 정리했다.
무리한 인수답게, 인수자금을 차입에 의지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비교할 만한 사례로, 포스코의 경우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부담이 컸지만 자체적인 자금여력이 튼튼했다. 덕분에 어렵기는 해도,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두산그룹의 경우 빚을 내 미국 중공업업체 밥캣을 인수한 이후 줄곧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는 “빚에 지나치게 기댄다든지, 불확실한 증시에 의지하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경계심이 발동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주식을 되사는 조건으로 우선주를 발행해 대우건설 자금을 모집했지만, 주가가 부진하면서 주식을 되사는 데 돈이 들어가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웅진그룹도 전환사채(CB) 등 주식연계채권을 대거 발행했고, STX도 M&A 한 기업들을 상장시키면서 돈을 마련했다.
차입에 의지해 무리한 인수를 한 배경에는 샐러리맨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제외하면 모두 샐러리맨 출신으로 창업에 성공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김우중 회장은 32세에, 윤석금 회장은 36세에, 강덕수 회장은 만 50세가 넘어서 창업했다. 샐러리맨 출신의 특징은 창업 당시 나이가 비교적 많은 편이고, 특히 축적된 자본이 없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따라서 빠른 시간 사업 확장을 위해서는 M&A와 차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보통 M&A와 관련해서 주식연계채권이나, 주가 관련 계약을 문의하기 위해 찾아오는 기업들의 경우 예의주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그만큼 돈이 없다는 뜻인데, 물론 증권사 입장에서는 수수료만 챙기면 되지만 때로는 이 같은 자금조달에 깊숙이 간여해 대박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대우나 금호, 웅진, STX의 경우 주식연계채권이나, IPO 과정에서 증권사들이 결국 손해를 본 경우가 많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국내 주요 M&A에 간여했던 한 교수는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성공하는 M&A와 실패하는 M&A를 사전에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데, 일부 창업자들의 경우 자신의 경영능력을 과신해서 무리하게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며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애초부터 어려운 M&A는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증시 투자자들도 재무제표 등을 통해 M&A의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진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
‘리콜사태’ 현대ㆍ기아차 주가는 ‘도요타 망령’ 스멀스멀 이번 리콜로 인한 현대·기아차의 비용 부담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약 300만 대에 11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매출이나 이익 규모로 볼 때 ‘새발의 피’ 수준이다. 게다가 도요타의 경우 리콜 규모가 현대차의 4배가 넘었고, 늑장 대처로 인한 집단소송 등으로 11억 달러 이상을 부담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이번 리콜 사태를 심상치 않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전반적인 시장 환경 악화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최근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빅3’의 판매 회복세가 완연하다. 주춤했던 일본도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화 약세에 힘입어 가파르게 시장점유율을 회복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상대적으로 경쟁 환경이 치열해졌고, 엔화대비 상대적 원화강세로 가격경쟁력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특히 현대차의 이번 리콜 사태가 끝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비록 이번에는 피해금액도 적어 브랜드 이미지 훼손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추가적인 리콜이 또 발생한다면 그때는 타격이 심각할 수 있다. 강상민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불리해진 성장 여건으로 주가 흐름도 부진한데 대규모 리콜 소식까지 겹쳐 크든 작든 투자심리에 추가적인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필중 삼성증권 연구원도 “이번 사태로 판매가 급감하진 않겠지만 지난해 연비 사태에 이어 이번 리콜 문제로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도에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