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세장이 지속되면서 증권가는 벌써부터 내년에 닥칠 영업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 ||
증권가에는 최근 하나의 ‘음모론’이 돌고 있다. 폭락장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증권업계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주식거래량을 고의적으로 늘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식거래량은 증시가 바닥을 찍던 10월 오히려 급증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 시장의 일일 주식거래량 월간 평균은 지난 6월 3억 1570만 주를 기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증시가 최고점을 찍고 하락세를 보이면서 주식 거래량도 줄어든 것이다.
이후 일일 주식거래량 월간 평균은 7월 2억 9589만 주, 8월 2억 3932만 주로 뚝뚝 떨어졌다. 그러다 리먼브러더스 파산보호신청 이후 장이 급등락을 반복하자 단기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9월 주식거래량은 3억 9363만 주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10월 주식 거래량. 10월에는 코스피 지수 1000포인트 선이 무너지는 등 폭락장이 거듭됐다. 미국 대선 종료가 가시권에 들어온 10월 말이 되서야 겨우 1000포인트 선을 넘어서며 반등 계기를 잡았을 뿐이다. 사정은 이렇지만 주식 거래량은 10월에 폭증했다. 10월 평균 일일 주식거래량이 무려 4억 2932만 주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27일에는 5억 4067만 주를 기록하더니 28일 6억 4940만 주로 뛰어오르고 29일에는 역대 네 번째로 많은 7억 5467만 주가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됐다. 이러한 일일 거래량은 코스피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1년 전과 맞먹는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유가증권 시장의 일일 주식거래량은 평균 4억 3993만 주였다.
이처럼 거래량이 급증한 것을 두고 ‘증권업계가 수익을 늘리기 위해 거래를 늘린 탓’이라는 해석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의 수익구조는 주식거래에 따른 수수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주식거래량이 늘면 늘수록 증권사의 수익은 좋아진다. 최근처럼 증시가 하락한 장에서 증권사에게는 주식거래 수수료 외에 뚜렷한 수익 창출요소가 없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이 서로 손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주가는 묶어두는 대신, 이익은 늘리려고 주식 회전만 늘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상태다.
물론 증권업계는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10월은 일일 장중 변동폭(고가와 저가 간 차이)이 연일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변동성이 높은 장이었다”며 “이런 장세에서 단기매매를 통해 이득을 노리려는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거래량이 늘었을 뿐이지 증권사들이 거래량을 조정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폭락장에 개인투자자들 중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늘면서 증권사에 곱지 않은 시선이 커져 그런 해석이 나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진실이야 어떻든 주식 거래량 증가로 최악의 위기에 처한 증권사들이 한숨을 돌린 것은 사실이다.
증권사들은 또 하나의 악재인 펀드 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 마련에도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펀드 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은행 ‘파워인컴펀드’ 손실액에 대한 50%의 배상 결정에서 드러났듯이 펀드 불완전판매 논란이다. 불완전판매란 금융기관들이 펀드 등을 판매하면서 투자위험, 손실가능성, 운용방법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펀드를 판매한 것.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 펀드 가입자들이 소송을 거치지 않고 금융당국을 상대로 민원제기나 분쟁조정을 할 수 있어 증권사들은 펀드 손실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까지 금융감독원은 투자자가 펀드 가입 때 판매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자필서명을 했다면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해석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투자자의 자필 서명이 있다해도 판매사가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분쟁조정 사례가 나오면서 증권사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이 민원 제기나 분쟁조정이 불가능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소송을 통해 압박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피해자들을 모아 소송을 진행하는 전문적인 변호사들도 늘어나고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 중 일부는 과거에 내보냈던 펀드 광고를 찾아서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를 통해 투자위험과 손실가능성 등을 이미 대대적으로 알렸다는 것이 증명되면 소송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광고를 찾아 모으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펀드 광고는 펀드사가 마음대로 결정해서 하지 못한다. 자산운용협회 등 관련기관으로부터 문구 하나하나에 대한 심의를 받아야만 광고를 실을 수 있다. 펀드 광고가 부실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경우 증권사로서는 이 광고를 허가해준 관련기관에게도 책임을 나눠 지자고 나설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우선 급한 불길을 잡은 증권업계는 경영 압박을 줄이기 위해 몸집 줄이기에도 돌입하고 있다. 지난해 증시 호황과 내년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에 맞춰 불려 놓은 조직이 최근 장세에서 생존의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직원은 “10월과 11월은 주식거래량이 늘어나 어느 정도 수익을 거둘 수 있어 큰 문제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12월 이후에는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 증권사들 대부분이 그런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 아마 6개월 안에 대대적인 인원감축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증권사 직원은 “모 인터넷증권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10월과 11월에 큰 손해를 피하는데 그쳤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올해 신설된 소규모 증권사들은 큰 피해가 없겠지만 대형 증권사들은 내년에 엄청난 영업손실이 예상된다”며 “과거 외환위기 때 대형증권사들이 모조리 무너졌던 기억이 있기 때문인지 최근 비관적인 분위기가 많다”고 털어놨다.
일부 증권사는 벌써부터 임금 삭감과 명예퇴직에 나섰다. 하나대투증권은 최근 공식적으로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임금삭감과 인원축소 등을 골자로 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은 자신의 연봉 25%를 자진 삭감했고 부사장 및 감사를 비롯한 전 임원의 연봉은 15~20%까지 줄였다. 또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의 총 연봉도 20%까지 삭감하기로 하고 연봉 재계약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장기근속자를 대상으로 100여 명 희망퇴직을 받기로 하고 노조와도 협상을 벌이고 있다.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은 최근 10여 명을 해고했고 모건스탠리도 비슷한 수를 감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증권사들도 소리 소문 없이 연봉 삭감과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새 식구를 맞는 일에도 인색하게 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250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했던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채용인원을 100명으로 줄였다. 동양종금증권도 신입사원 채용인원을 지난해 160명에서 올해 100명으로 축소했다. 하나대투증권은 올해 아예 신입사원을 한 명도 뽑지 않기로 했고 현대증권과 대신증권은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