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수사 개시 나흘 만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증거인멸 시간을 벌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이명박 정부에서 논란이 된 민간인 사찰 사건을 ‘한국판 워터게이트’로 소개해 보도했다. NYT는 불법 사찰, 은폐 시도, 증거 인멸, 대통령 관련 인사들의 구속과 함께 이명박이 불법 사찰을 알고 있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여러모로 ‘닮은꼴’임을 소개했다.
2010년 6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민주당 신건, 이성남 의원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명박 대통령의 비방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일반 시민을 불법 사찰했다”고 폭로했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공론화되는 순간이었다. 이로부터 닷새 뒤 MBC PD수첩팀은 ‘대한민국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편에서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사찰 의혹을 집중 조명했고, 검찰은 다음 달인 7월 5일 민간인 불법 사찰 수사에 착수한다.
집권 3년차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과거 정부가 그랬듯 스스로 정권의 힘을 빼는 사건을 자초한다.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국민은행 퇴직자로 구성된 협력업체 ㈜KB한마음의 당시 사장 김 씨는 촛불시위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것에 대해 ‘대통령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한다. 정부는 모회사인 국민은행에 압력을 넣어 유죄가 입증되지도 않은 김 씨가 회사에서 내몰리게 된다. 김 씨는 소유 주식도 포기해야 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김 씨가 강원 평창 출신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광재 씨와 동향이라는 점에서 둘 사이에 불법 정치자금이 오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한다. 하지만, 털어도 김 씨로부터 나간 정치자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총리실의 지시 공문을 받아 김 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 결국 무혐의 의견서가 나왔고 이를 작성한 수사관은 교체된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김 씨에 대해선 동영상과 관련된 명예훼손을 들어 검찰에 사건이 송치된다. 검찰은 수개월을 끌면서 수사를 진행했고,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을 인정하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다. 그런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김 씨측 변호인은 여러 수사기록을 확보, 국무총리실이 진행한 불법적인 사찰의 전모를 언론에 알리게 된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 민간인 사찰 사건의 전모다. 김 씨의 담당 변호인인 최강욱 측의 변론요지서에 따르면 당시 동작경찰서의 ‘내사결과 보고서’에는 “조사결과를 종합한 결과, 청구인(김종익을 말함)의 횡령 혐의에 관한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고, 이 사건의 동영상 및 블로그를 보아도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총리실의 내사 및 국민은행과의 특수한 관계 등으로 국민은행 측의 요구에 따라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지분까지 이전해 개인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판단해 혐의 없음이 명백하므로 내사를 종결하고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 사건이 한국판 워터게이트로 비화한 것은 그 뒤 발생한 일련의 은폐 시도와 증거 인멸, 대통령 측근들의 줄줄이 구속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민간인 불법사찰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영준 전 차관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1억 6400여만 원이 선고됐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또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이레이저’ ‘디가우서’라는 전문장비를 동원해 사찰기록이 담긴 결정적인 증거물 ‘컴퓨터 하드디스크 파일’을 영구삭제 해버린다. 그 과정에서 검찰은 수사 개시 나흘 만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하면서 결정적인 증거물을 없앨 시간을 벌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또 증거인멸 과정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주무관이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 행정관으로부터 ‘대포폰’을 건네받아 사용한 사실이 통화기록 조회를 통해 확인되면서 ‘청와대 배후설’은 점점 더 커지게 됐다.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의 본질은 ‘누가’ 그리고 ‘왜’ 사찰을 지시했느냐에 있다. 사찰 담당이었던 이인규 전 지원관은 “이강덕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팀장에게 민간인 사찰 내용을 구두로 보고했다”라고 진술했고, 사건 기록 대장에는 ‘BH(Blue House:청와대) 하명’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지원관실 조사관 수첩에 기록된 ‘BH 지시 사항’이라는 문구나, 청와대 최 아무개 행정관이 만든 ‘대포폰’ 등을 보면 청와대의 뒷받침 없이는 이런 사찰은 진행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사찰 사건과 관련한 이들이 모두 ‘영포라인’(영일·포항)의 핵심이거나 주변부 인물이었다.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의 주요 폭로자인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누가 그렇게 못자리하듯 인사 발령을 냈는가?”라며 ‘몸통’ 발본색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수사를 맡았던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 부실 수사의 몸통으로 떠올랐다. 경북 상주 출신에 대구 대건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TK-고려대 라인이었던 것이다.
한 민간인의 불법 사찰 의혹을 계기로 이 사건은 당시 한나라당 남경필 정두언 의원 등의 부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고위 공무원 중 호남 인사, 노조 관계자, 언론인,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으로까지 확산할 뻔했지만, 불씨는 커지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청와대 국정원 검찰 등 정부의 주요 기관에서 전방위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벌여왔다는 의혹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언론과 여론의 동력을 획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당시 총리실의 사찰 활동은 과거 군사독재 하에 있던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이 자행했던 행태와 다르지 않은데 당시 수사 권한이 없는 기무사가 민간인을 수사, 구금, 고문했고 검찰조사 과정에도 입회하는 등 불법 행위를 벌였다”며 “하지만 각 기관이 사실상 대통령의 수족 노릇을 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활동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전했다. 김 씨가 정보수사기관에 강제로 끌려가 고충만 당하지 않았던 것만 다르다는 뜻이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지난해 3월 기자회견을 통해 2010년 당시 자신이 총리실 자료삭제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일요신문 DB
하지만 여전히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은 그 배후가 가려져 있다. 총리실이 사건을 어떻게 기획했고, 그것을 은폐하고자 누구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결론이 없다. 이명박 자신도 “언론을 통해서 사건을 처음 전해 들었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2010년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이 사건과 관련한 총리실과 청와대 인사들에 대해 1년 6월 미만의 징역형을 내렸다. 그 후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청와대와 총리실 사이에 돈이 오갔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 돈에 대해 청와대 자금설, 정권 실세 자금설, 정부 기관 자금설 등이 회자됐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다만 지난해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으로 구속 기소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1억 6400여만 원이 선고됐다. 박 전 차관이 가장 큰 몸통이었는지, 아니면 박 전 차관이라는 깃털을 제거함으로써 몸통이 은폐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민간인 불법 사찰은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남겼음은 분명해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국민사찰, 국민탄압, 국민테러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최근 대법원 2부는 회사자금 1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피해자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에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전 대표는 2005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KB한마음 대표로 재직하면서 회계장부를 조작해 1억 1512만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8750만 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씨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을 폭로한 사실 때문에 검찰로부터 표적수사를 당했다”며 반발했지만 판결을 뒤집지는 못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이 사건을 두고 이명박과 그 주변 인물들의 ‘전략적 판단의 미흡함’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게 하는가를 우호 언론에 주문했더라면 이야기가 좀 달랐을 것이란 얘기다. 종합하면, 북한에 대한 지원을 ‘대북 원조’로 보도하느냐 ‘대북 퍼주기’로 보도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생각이 바뀔 수 있듯이 이 민간인 불법 사찰을 ‘동향 보고’나 ‘여론 수집’으로 보도하게 했더라면 거대한 사건으로 비화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최기서 언론인
잠깐 - 참여정부 VS MB정부 ‘총리실 공직감찰조직’ 사실 노무현 정부에서나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실의 공직감찰 조직은 비슷했다. 노무현 정부에는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 산하 조사심의관실이 있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있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국무총리실 직제 규정에 따라 공직기강 확립, 부조리 취약 분야 점검 및 제도 개선, 공직자 사기 진작 등의 업무를 맡았지만, 과거 청와대의 비밀경찰로 불렸던 ‘사직동팀’과 노무현 정부의 심의관실 기능을 합쳐놓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좀 다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훈령으로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에 특별감찰반을 신설해 고위 공직자 감찰 업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이 두 조직 모두 조사 인력 대부분을 타 기관에서 파견 받아 운영한 점, 40~50명가량의 인원이 배치된 점, 공직자에 대해 내사를 진행하거나 감시하고, 미행하고, 비위사실이 확인되면 당사자로부터 확인서를 받아 해당 기관이나 총리실에 통보하는 식의 감찰 방법을 행한 것은 비슷하다. 그래서 각종 선거에서 이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떠오르면 노무현 정부에서도 불법 사찰이 있었다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주장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