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종 변호사는 박근혜정부의 인사 문제, 안철수 후보의 새정치 등 정치 현안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최준필 기자
5선 의원이기도 한 박 변호사는 본인을 “우리 정치계에서 ‘왕따’당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렇기에 정치권에 쓴소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해 놓고 나중에 거두지 않겠다. 욕만 빼고 다 쓰라”고 선전포고한 박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문제,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 민주통합당의 정체성에 관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두 달이 되도록 인사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인사는 실패라고 본다. 이미 장관급 7명이 낙마했고, 임명된 사람 중에도 부적격자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층권 위에서 살다가 대통령에 당선돼서 그렇다.
―성층권이라니, 무슨 뜻인가.
▲박 대통령은 이미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는 최고 권력자였고 곧바로 청와대에서 살았다. 20대 중반부터는 퍼스트레이디였다. 당시 육영수 여사가 “딸이 전차를 타고 등·하교했다”는 말조차 화제가 되고 그랬다. 이후 부모가 모두 죽고 나서는 18년간 유폐생활을 했다. 10대부터 40대 중반까지 국민 절대다수가 겪는 삶의 실체에 근접해 본 적이 없었다.
―박 대통령이 1998년부터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지 않았나.
▲거기(대구 달성군)가 어딘가. 본인 이름으로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 아닌가. 지역구 관리라는 게 필요 없는 곳이었다. 여전히 성층권에 사는 국회의원이었던 것이다. 국회에서도 자기 고집대로 다 됐다. 만약 그때 수도권에 출마해 낙선을 각오하면서 선거를 뛰거나 실제 떨어져 봤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런 과거가 이번 정부 인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가.
▲예를 들어 지난 5일 안전행정부 업무보고에서 박 대통령은 “약자가 법으로부터 보호받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정의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며 ‘유전무죄 유권무죄’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보기에 누가 써 준 것을 읽은 것 같다. 본인이 뭘 좀 안다면 그 자리에서 전관예우부터 확실히 끊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전관예우야말로 ‘유전무죄 유권무죄’ 현상을 부추기고 심화시킨다.
―최근 박 변호사는 “전관예우가 부패를 심화시키고 탈세를 조장해 세입이 줄어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맞다. 그런 풍토를 만드는 사람들을 장관 시키고 총리 시키고 한만수(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사퇴), 김병관(국방부 장관 후보자 사퇴) 같은 사람을 앉히려고 했다. 누가 이런 사람을 임명하려고 하면 불호령을 내려야 하는 게 대통령이다. 잘 아는 처지라서 이번에 장관을 시켜주고 싶었어도 정도가 있다는 걸 감으로 알아야 한다.
―여당조차 반대하는 장관 후보자도 있다.
▲박 대통령 본인이 직접 만나서 면접하고 그런 걸 안 한 것 같다. 과거 YS 때도 장관 임명할 때 직접 면접하고 다 거쳤다. (4월 17일 임명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도 청문회 때 첫 번째 전화에서는 고사하고 두 번째 전화통화에서 수락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결국 안 만났다는 이야기다.
―박 변호사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인연이 있는데.
2000년 3월 8일 열린 민주국민당 창당대회.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찬종 변호사.
―정부 인선을 총체적 실패로 규정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나.
▲옛말에 천하를 제패하려는 자는 마상, 즉 말 위에서 이루고, 그 이후에는 말에서 내려오라는 이야기가 있다. 알렉산더도 나폴레옹도 누르하치도 전부 말 타고 전쟁 치르고 천하를 장악했다. 왕이 되고 제왕이 된 다음에는 말에서 내려서 국민 속으로 들어갔다. 소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도 마상에서 대선을 치렀고 이겼으니 인제 그만 말에서 내려와야 한다. 야당 대표만 부르지 말고 젊은 국회의원도 청와대에 부르고 언론인들도 직접 만나고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 조금씩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좀 더 두고 볼 문제다.
―화제를 바꿔보자.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는 어떻게 평가하나.
▲참고로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은 지난해 6월 내가 처음으로 붙인 말이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적 에너지가 만들어 낸 열망이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기득권이 만든 낡고, 썩고, 병들고, 공천 팔아먹고, 국회를 병들게 하고, 패거리나 만들고, 국회의원 졸개 취급하며 깃발 들고 따라오라고 하고, 지방자치에 개입해 돈으로 공천하고 이런 부분을 바꿔 달라는 것이었다. 안철수라는 전직 의사를 통해 그 계기가 만들어졌지만 그 특허권은 결국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2000년 10월 19일 민주산악회 현판식에 참석한 박찬종 변호사와 김영삼 전 대통령.
▲그런데 이제 <일요신문> 인터뷰를 통해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을 취소해야겠다. 지금 안철수 후보는 나르시즘에 빠져있다. 나르시스트가 돼서는 안철수 현상을 말아먹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과 민주당 가운데 서 있으라는 것이 안철수 현상이었는데 결국 한 쪽으로 갔다.
―민주통합당과 단일화를 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이야기인가.
▲한쪽으로 가는 순간, 본인 입으로 새 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기소유예라도 받으려면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똘똘 묶어서 새 정치 공약에 관해 확실하게 약속받고 선거운동 열심히 해서 당선시켰어야 했다. 근데 출마 포기하고 보름 동안 미적거리면서 선거를 망치지 않았나. 이 때문에 국민들의 열망마저 소멸돼 버렸다. 혹세무민의 죄를 저지른 것이다.
―한 명의 무소속 정치인에게 너무 가혹한 평가 아닌가.
▲새 정치는 본인만 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이번에 노원병에 출마하면서 “새 정치의 씨앗을 뿌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대선 때는 “새누리당의 확장성을 막겠다”고도 했었다. 그렇다면 답은 부산 영도로 출마하는 것 아닌가. 새누리당이 꼬리 내린 지역에는 왜 가나. 그건 새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시 안 후보 측은 영도 출마가 지역주의의 낡은 구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새 정치에 반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PK(부산·경남)에서 실패한 바 있는데.
▲(노무현은) 그래서 결국 대통령이 됐던 거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낙선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는가. 정치인에게 낙선은 자산이다.
―이제 민주통합당이라는 제1 야당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이번에 공개된 대선평가보고서에 관해 말들이 많다.
▲민주당이 왜 대선에 패배했는지 내가 정확히 평가하겠다. 하나는 친노라는 틀에 갇힌 것이고 또 하나는 ‘종북 근본주의’와 단절하지 못한 것이다. 친노가 당 주류였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종북 근본주의는 끊어냈어야 했다. 문재인 후보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와 완전히 선을 그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야권의 대선 패배 이유가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후보였다는 이야기인가.
▲민주당은 본인들이 진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 민주당도 새누리당처럼 오른편에 있다. 진보, 보수로 나눴을 때는 보수정당이다. 그동안 민주당 대표를 했던 사람들을 봐라. 새누리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해도 될 사람들이다. 과거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 가고 그런 사람들이 모였다고 진보라는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진보가 없다는 얘기인가.
―현재는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다?
▲보수정당이란 영국 산업혁명 당시 많은 부자가 생겨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개념이다. 동시에 이들과 대항하기 위해 노동자 중심으로 모여든 정당이 진보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정강정책이 똑같다.
―그렇다면 인물(후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결국, 대통령선거라는 것은 목숨 걸고 나서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이 사람들 전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자기 목숨 걸었다. YS(김영삼), DJ(김대중)는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어깨까지는 걸었고,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했다. 문재인 후보는 배꼽 밑도 안 걸었다. 떠밀려서 나왔으니까 악착같이 안한 거다. 그때 안철수 후보는 다리 밑으로 산보만 다녔다.
―박 변호사 역시 대선에 나간 적이 있는데 본인은 어디까지 걸었다고 생각하나.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대통령이 못 됐다. 1997년 대선에서 내가 여론조사 1등이었다. 그런데 신한국당 내에서 대의원만 갖고 투표를 하겠다니, 바깥의 민심이 무슨 소용이었겠나. 돈까지 끌어다가 1등 하려고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들을 했다. 사람은 용서해도 그 당시 행패까지는 완전히 용서가 안 된다. 지금처럼 당심 50%, 민심 50%로 했으면 내가 경선에서 이겨 후보가 돼 본선에서 DJ를 꺾고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책을 통해 “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라고 고백했는데.
▲맞다. 그때 내가 대통령이 됐다면 아마 실패한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여론만 믿고 붕 떠서는 지금 박근혜 정부가 하는 것처럼 인사 만행이나 부리고. 그 때는 대통령의 역할에 관해 체화도 안 됐었고, 부패를 방지하는 일에 대한 혜안도 없었다. 그래서 하느님이 ‘너는 준비가 안 됐다’며 떨어뜨린 것 같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박찬종 변호사는 원조 ‘새정치 아이콘’ 박찬종 변호사는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 신정치개혁당을 만든 뒤 독자 출마해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후보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돈 안 드는 선거를 모토로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전국을 누볐다. 득표율은 저조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 우유 광고에 출연해 “이 우유만큼 깨끗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박 변호사를 가리켜 ‘이미지 정치의 원조’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1997년 대선 때 신한국당 유력 후보였으나 경선을 포기한 그는 지난해 18대 대선에 ‘깜짝’ 출마 선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국민후보추대연합이라는 단체에서 박찬종 변호사를 비롯해 무소속 안철수·강지원 후보와 정운찬 전 총리 등 4명을 잠재적 대선 예비후보로 놓고 오디션 형태를 거쳐 국민후보로 추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당 단체의 부름에 응한 것은 박 변호사뿐이었고 결국 흐지부지됐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안철수 후보는 옛날 같으면 내 아들뻘이다. 애정이 있으니 쓴소리도 하는 것”이라며 “나는 1988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서초구에 나가서 당선됐다.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당선되고, 영남에서 민주당이 당선되고 그런 게 새 정치지, 다른 게 새 정치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