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그룹 회장 | ||
SK그룹은 ‘SK C&C→SK㈜→SK텔레콤·SK네트웍스→SK C&C’의 지배형태를 갖고 있다. SK㈜ 지분이 2.22%에 불과한 최태원 회장으로서는 지분 44.5%를 보유해 자신의 개인 기업이나 다름없는 SK C&C(비상장)를 그룹 지배력의 발판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SK㈜를 지주사로 삼는 지배구조가 확립되려면 우선 최 회장의 SK㈜ 지분율이 높아져야 하며 또한 동시에 자회사인 SK C&C가 SK㈜를 지배하고 SK C&C가 SK텔레콤과 SK네트웍스의 지배를 받는 기형적 구조가 해소돼야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SK그룹은 SK C&C의 SK㈜ 지분율 강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SK C&C가 지난 10월 24일 공시를 통해 ‘1500억 원어치 SK㈜ 지분을 3개월에 걸쳐 장내매수할 예정’이라고 알린 것. 지난해 SK C&C의 당기순이익은 약 1977억 원. 1년 순이익금 4분의 3가량을 지주사 지분율 높이기에 써버리겠다는 얘기다. 이는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통한 지주회사제 전환 완료 시점이 내년 6월인 점을 감안할 때 ‘역주행’에 가까운 행보라 볼 수 있다.
11월 중순 들어 SK㈜ 주가는 7만~8만 원대를 오가는 중이다. 현재 주가를 8만 원으로 치고 SK㈜ 주식을 1500억 원어치 사들인다고 하면 이는 지분율 4% 정도에 해당한다. 10월 24일 공시 이후 SK C&C는 11월 14일까지 총 9차례에 걸쳐 37만여 주를 사들여 지분율을 종전의 28.08%에서 28.87%까지 끌어올렸다. 20일여 만에 1%에 가까운 지분율을 높인 것이며 앞으로 3배에 가까운 추가 지분 매집에 이어질 태세다.
SK C&C가 공시를 통해 밝힌 지분 취득목적은 ‘투자수익 확보’지만 재계 인사들은 또 다른 속사정을 거론한다. 먼저 ‘주가 끌어올리기 차원’이란 해석이다. SK C&C 공시가 있던 10월 24일 당시 SK㈜ 주가는 5만 7800원. 지난해 7월 26일 SK㈜ 사업 자회사 분할에 따른 재상장 이후 SK㈜ 주가가 5만 원대로 추락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 6월 초만 해도 SK㈜ 주가가 16만 원대에 있었으니 지난 몇 개월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반토막 난 종목들이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하락세를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SK C&C의 SK㈜ 지분 매입계획 발표 이후 불과 일주일 만인 10월 31일 SK㈜ 주가는 다시 8만 원대에 진입하게 됐다. 이런 주가 상승은 최태원 회장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SK C&C는 최태원 회장이 상장을 통해 그 이익금을 갖고 SK㈜ 지분을 사들일 것이란 기대를 받는 종목이다. 지주사제로 전환하면 최 회장은 SK㈜를 통해 모든 계열사를 지배하므로 SK C&C지분이 필요 없어진다. SK C&C가 지주사나 계열사 지분 확보 등을 통해 덩치를 키워 기업 가치를 높인다면 더 좋은 가격에 상장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계산이다.
그렇게 상장을 추진해오던 SK C&C는 지난 7월 상장 철회 공시를 냈다. 공모희망가액(주당 11만 5000~13만 2000원)만큼 주식이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 SK C&C 상장 이후 지분 30%를 보유한 SK텔레콤과 15%를 가진 SK네트웍스가 지분을 팔아 투자자금을 챙기는 동시에 순환출자 고리도 끊으려던 SK의 당초 계획이 늦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하락장세 속에서 비상장인 SK C&C의 주식 가치를 원하는 공모가만큼 올리는 데 SK㈜ 지분 매입이라는 방법이 동원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SK C&C의 SK㈜ 지분 매입으로 당장의 주가상승은 만들어냈지만 내년 6월까지 지주사 전환작업을 마쳐야 하는 SK 입장에선 SK C&C 상장이 그보다 더욱 절실한 과제다. 상장이 여의치 않을 경우 최 회장이 보유한 SK C&C 지분과 SK㈜가 보유한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현재 SK㈜ 자사주 지분율 13.81%다. 이를 통해 최 회장은 SK㈜ 지분율을 높일 수 있고 SK㈜는 SK C&C 지배를 받는 대신 SK C&C 지배를 위한 지분 확보가 가능해져 ‘최태원 회장→SK㈜→SK C&C와 SK텔레콤 등 자회사들’로 이어지는 지주회사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SK C&C가 상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 맞교환을 할 경우 비상장 회사 SK C&C 주식의 적정가치에 대한 논란이 일 수 있다. 결국 SK C&C 상장 외엔 묘수가 없는 터라 최 회장의 주가 띄우기에 대한 고민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