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재보선 서울 노원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안철수 의원이 26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모습. 안 의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즈음에 향후 구상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 결과, 안 의원 측이 그 시기를 앞당겨 10월 재·보궐선거에 맞춰 신당 창당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 의원이 시기상조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원병 출마를 결행해 당선된 것처럼 주변 역학구도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와 더불어 안철수 의원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즈음해 향후 구상에 관한 언급을 할 것으로 보이면서 그 내용 역시 주목되고 있다.
4·24노원병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60.5%라는, 예상보다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야권 강세지역이긴 하지만 안철수 의원이 말하는 ‘새정치’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식지 않았다는 평가다. 김능구 e원컴 대표는 “득표율 60.5%라는 것은 야권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지지자들까지 안철수 의원을 찍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대선 이후 여야 정당에서 정치 혁신에 관해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안철수 의원이 생각보다 일찍 나서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의도에서는 싸늘한 반응도 나온다. 안 의원 당선은 민주통합당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결과가 한몫했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정책위원회 소속 한 당직자는 “안철수 의원 득표율은 허준영 후보가 상대적으로 약해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투표를 포기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안철수 의원 당선에 민주통합당 조직이 기여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일단 민주당 이동섭 노원병 지역위원장이 종교계 표를 몰아줬다. 막바지에 노원구의회 소속 민주당 시·구의원들까지 힘을 보탰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안 의원이 민주당과 별개의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독자적 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단 국회 입성은 성공했지만 무소속 의원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안 의원이 희망하는 상임위, 즉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는 빈자리가 없고 노회찬 전 의원이 활동했던 정무위원회는 안랩 주식 백지신탁 문제가 걸림돌이다.
비인기 상임위로 갈 경우 지역 현안을 해결하거나 입법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과거 안철수 정책네트워크에 참여했던 한 국립대 교수는 “안 의원이 초선 의원처럼 활동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상대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입법 활동 위주로 할 수밖에 없는데, 기성 정당에서 꺼리는 국회의원 특혜 폐지 문제나 정치 개혁에 집중하지 않겠느냐”라고 전망했다.
당선 이후 안 의원 측에서는 향후 일정이나 신당 창당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복수의 측근들은 “안 의원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안철수 대선캠프 핵심 멤버로 활약한 최측근은 “안 의원이 5·18 기념일 전 광주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며 “현재 호남 지역에서 가상의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보다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이곳에서 민주당 세력을 꺾거나 대거 흡수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보고 속력을 낼 것이다”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 3월 미디어리서치에서 조사한 정당지지율 결과를 살펴보면 안철수 신당은 창당 시 23.6%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새누리당 36.1%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민주통합당은 10.6%로 안철수 신당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정당지지율과 지역조직력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즉 안철수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야권 세력의 지지가 필수적인데, 총선이 한참이나 남은 지금 민주당을 떠나 신당으로 옮길 의원들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핵심 당직을 역임한 한 전직 민주당 의원은 “지금 안철수 신당을 띄우면 현직 의원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기존 정당에서 공천 받기 어려운 인사들만 우르르 몰려올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안 의원 최측근은 “맞는 얘기다. 그래서 10월 재·보궐선거까지 구체적인 창당 작업은 없을 것이다. 대신 10월 재·보선에서 무소속 후보를 내기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 여기(신당) 오면 자리가 보장된다는 믿음을 줘야 하니까”라고 밝혔다.
현재 안 의원 측에서 적극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 지역구로는 전남 나주·화순(민주통합당 배기운 의원)과 서울 서대문구(새누리당 정두언 의원)가 있다고 한다. 두 곳 모두 재·보궐선거가 유력하게 전망되는 곳. 안철수 의원 측이 신당 전초지로 수도권과 호남을 점찍어 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안 의원 부친의 고향인 경남 양산(새누리당 윤영석 의원) 역시 관심 지역구로 꼽히는데, PK(부산·경남)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안철수 멘토’로 활약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역시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안철수 측도 단시간에 몸집을 불려 강한 정치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을 것”이라며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기성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는 상징적인 당선자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동시에 보수 색깔 빼기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비주류 성향의 한 민주당 의원은 2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안철수 신당을 경계하는 야권 지지자들이 ‘안철수 의원은 친이계의 영향력을 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막 퍼트리고 있지 않나. 안 의원 측에서도 이번 선거 과정에서 매우 신경 쓰는 분위기였다”며 “친이계로 거론되는 이태규 전 미래기획실장, 김성식 전 의원 등을 캠프 뒤쪽으로 뺀 것도 그 때문 아니겠느냐”라고 관측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안철수 의원의 파괴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10월 재·보선 예상 지역 가운데 새누리당 의원 지역구가 최대 10곳에 이르고 있어 자칫 19대 국회 과반수가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길게 보면 안철수 의원의 당선은 범야권에 도움이 되는 게 맞다. 민주당이 쪼개지면서 단기적으로는 야권이 분열된다고 해도 결국 다음 총선이나 대선과 같은 큰 선거를 앞두고는 연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문제는 안철수 의원 당선으로 인해 보수 성향의 젊은 층 이탈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노원병에 (허준영 후보 대신) 이길 만한 후보를 냈어야 했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안철수 의원의 국회 입성에 관해 황인상 P&C정책연구원 대표는 “새정치를 표방한 안철수 의원의 당선은 곧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여론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매우 견고한 흐름임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이는 안철수 개인 역량이라기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본질적인 이유기 때문에 이 기대에 부응한다면 큰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황 대표는 “반면 5·4 전당대회 이후 민주통합당에서 높은 수준의 혁신을 이뤄내고 안철수 진영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인다면 안철수 신당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안철수 입성을 보는 불편한 시선 ‘잠룡 흥! 이제부터 초선일 뿐’ 지난 4월 26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당선 후 처음 여의도 국회에 출근했다. 안 의원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여기서 보니 새롭다”고 인사했다. 이후 무소속 송호창 의원과 함께 국회 정론관을 찾아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내딛는 걸음마다 기사가 쏟아질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는 모습이었다. 안 의원은 당선 소감으로 “정치란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발언을 지켜보는 선배·동료 의원들과 보좌관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유력 대선주자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무소속 초선 의원일 뿐”이라는 것. 새누리당 소속 한 보좌관은 “초선 의원은 의정 활동이나 입법안에 관한 보도 자료를 아무리 뿌려도 언론을 타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무소속인 안철수 의원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다면 다른 의원들의 시기와 질투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사무실로 노회찬 전 의원이 쓰던 국회의원 신관 518호를 배정받았다. 신관 5층은 진보 성향 의원들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에 텃세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당장 옆방인 517호에는 노회찬 전 의원의 단짝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이 입주해 있다. 이밖에도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 519호, 이석기 의원 520호, 오병윤 의원 521호, 김미희 의원 522호, 김재연 의원 523호,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 517호 등 신관 5층은 진보 세력의 집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24 재보선 당일 국회의원 회관을 찾은 기자에게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소속 보좌진들은 “안 의원이 국회에서 송호창 의원하고만 친하게 지낼 것 같아 섭섭해”, “(입법안 발의를 위해) 도장 받으러 오면 반갑게 맞이해야지”, “이제 가까이서 새 정치 구경할 수 있겠다” 등과 같은 반응 일색이었다. 이처럼 겉으로는 반겨도 속으로는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겼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가 이미 생겨난 셈이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