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사람이 장사를 하겠나, 뭘 하겠나.” 김민석 전 의원은 오랜만에 5·4 전당대회에 나가볼 참이라고 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리고 그는 지난 2010년 최고위원직을 끝으로 미국 유학길에 나서며, 잠시 정치권을 떠나 있었다.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제 조금씩 활동의 기지개를 펴고 있는 모양새다. <일요신문>은 지난 24일, 인사동의 한 전통찻집에서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어느덧 지천명, 오십 줄에 들어선 그의 얼굴엔 예전엔 느낄 수 없었던 여유가 보였다.
―반갑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지난해부터 단국대와 한양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단국대 학부 교양강의까지 하고 있다. 오늘이 아이들 중간고사였다. 속된 말로 처음엔 솔직히 좀 쫄았다. 그런데 하다 보니 재미있더라. 지난 학기에는 어떤 아이가 교수평가란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양수업이다”라고 턱 써놓더라. 걱정했던 것보다 아이들 반응도 좋다(웃음).
―민주당에 대한 애정은 여전한가.
▲그럼. 애정 정도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민주당이 위기다.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리더십의 약화와 부재는 이미 오래된 문제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로 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문제가 이미 쌓여오기 시작한 거다. 정치의 근본은 결국 리더십이다.
―친노·주류 진영과 비노·비주류 진영 간의 계파갈등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나.
▲정말 이해가 잘 안 된다. 친노가 노무현 대통령을 그대로 계승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뭐 FTA, 해군기지도 노무현의 그것과는 다르지 않았나. 그렇다고 친노라고 하는 사람들끼리 뭔가 똘똘 뭉친 것 같지도 않고. 이 역시 결국은 새로운 리더십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다. 원래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옛 것 갖고 떠드는 거다. 정당은 다음 리더십과 주자들이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흔들리게 돼 있다. 속된 말로 쪽팔린 거지.
―민주당은 아직까지 대선 패배의 책임을 두고 말이 많은데.
▲사실 지금 ‘친노 때문이다, 비노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다만 개인적으로 지난 총선을 6개월 앞둔 2011년께, 내가 한 기고문을 통해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당시만 해도 민주당이 총선에서 무조건 이긴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내가 ‘공천권, FTA, 해군기지’ 이 세 문제 해결되지 않으면 뒤집어질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이 세 가지 모두 잘못 다뤘고 결국 뒤집혔다. 결과적으로 총선을 책임지고 주도하는 지도부들의 능력이 달린 거다. 대선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를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거의 최악에 가까운 선거였다. 선대위 구성에 있어서 책임성이 명확한 집행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선거는 단기전이다. 민주적으로 치르는 가치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최종결정 체계, 즉 그날의 문제는 그날 결정하는 체계가 확립돼야 한다. 근데 이게 안됐다. 또 프레임, 전략도 문제였다. 저쪽은 ‘빨간색, 새누리당, 준비된 여성대통령’ 세 가지의 새로운 것을 들고 나왔고 다 성공한 메시지였다. ‘사람이 먼저다(민주당 대선 슬로건)’? 이쪽은 ‘이게 뭔가’ 싶은 반응 아니었나.
―5월 4일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은?
▲역시 가장 큰 과제는 통합과 탕평 아니겠나. 이게 정리가 돼야지 다른 것도 해나갈 수 있다. 갈 길이 멀다.
―가장 유력한 당권 후보인 김한길 의원이 그런 능력이 있다고 보는가.
▲할 수 있고 무조건 해야 한다. 그 분은 경험이 있고 머리가 있는 사람이다. 설마 여기서 갈라치기 하겠나. 말도 안 된다.
―안철수 의원이 국회에 입성한다.
▲이제 평가 개념이 달라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분의 신당 창당에 대해 관심이 있다. 신당을 만든다면 좀 더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사실 본인이 말한 ‘새정치’는 국회의원 정수 축소밖에 없지 않나. 여기서 한 번 김이 빠졌다. 이제 길은 세 가지다. 첫째, 정말 ‘새정치’가 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속된 말로 쌈빡하게 해서 자연스레 민주당을 흡수하게 되든지, 둘째는 그저 그렇게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하게 만들어서 갈 것인지, 아니면 아예 민주당보다도 못한 당을 만들어서 사당화시킬 것인지…. 원래 정당 하나 제대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초기 박근혜 정부의 부침도 심상찮은데.
▲제일 아쉬운 게 정치적 자산을 쌓았어야 할 초기에, 실점한 거다. 특히 인사 문제는 뼈아프다. 사실 정부 초기 점수를 딸 수 있는 건 인사밖에 없는데 이걸 못했다. 또 대선 당시 내세웠던 국민대통합은 야당이 걱정할 만큼 괜찮았던 부분이다. 잘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것을 못하더라. 비판을 떠나 걱정스런 부분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역시 김민석, 하면 지난 2002년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의 탈당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난 우리 또래에서도 ‘죽었다 살았다’를 가장 많이 반복한 사람이다. 원래 어떤 결정을 할 때 ‘올인’한다. 계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2002년 때도 그랬다. 당시는 불가피했다. 그렇다고 내가 잘했거나, 현명했다고 보진 않는다. 변치 않은 사실은 당시 단일화 안하면 지는 상황이었고, 노무현은 단일화를 반대했다. 그해 서울시장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안 나가려고 했다. 고건 시장께 재선을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내 스타일로 가니 참 탈이 많더라.
―이제는 그런 선택을 가급적 피하고 싶다는 말인가.
▲가급적. 경험이라는 게 뭔가. 이제 그런 선택을 하기 전에 더 생각하고 지혜롭고 더 소통한다. 그렇게 깨지면서 배우는 거다. 천성이 낙관적이다. 이제 그런 어려움을 견디는 내성도 생겼다.
―피선거권 복권도 이제 후년으로 다가왔다. 정계 복귀 계획은?
▲오는 5·4 전당대회 때는 오랜만에 한 번 나가볼 생각이다. 너무 닫고 사는 것도 인위적인 것 같다. 실질적으로 언제 어떻게 정계에 복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사람 일을 어떻게 알겠나. 다만 지금까지 끊임없이 공부해왔다. 우리 같은 사람이 장사를 하겠나, 뭘 하겠나.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