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46용사 합동영결식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훈장 추서에 앞서 경례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천안함 폭침 원인을 두고 각종 설들이 제기되면서 대한민국은 각종 음모론으로 얼룩졌다. 급기야 천안함 전역 장병 일부가 5대 의혹에 대한 집중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일각에서는 “이명박보다 예비역이 낫다”는 표현까지 적나라하게 나왔다. 당시 5대 의혹에 대한 예비역의 대응은 다음과 같았다.
“천안함이 침몰지역인 백령도 인근 1.8km까지 간 적이 없다. 그곳은 수심이 낮고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 곳이라 만약 그곳에 갔다면 특별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천안함 한 척만 사고지점에 간 것도 이상하다.”
“천안함 노후화로 말미암은 ‘피로 파괴설’이 제기돼 있는데 천안함이 1989년 건조돼 20년 이상된 것이지만 천안함보다 오래된 군함도 작전 수행 중이다.”
“인류 해군 역사상 초계함이 내부 요인으로 두 동강 난 경우는 한 차례도 없다. 초계함 내부는 방화 장비가 잘 갖춰져 화재 가능성도 낮다.”
“암초에 걸려 침몰했다는 암초 좌초설도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대비 시간이 충분해 실종자가 이렇게 많이 나올 수 없다.”
“제1차 연평해전 때 천안함이 파손됐다고 하는데 당시 즉각 보수해 재출동할 정도로 완비했다. 속초함이 76mm 함포를 쏜 것은 북한과 같은 명확한 적이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방부의 발표보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전역 장병의 직언은 이명박 정부를 당황케 했다. 그래선지 이명박은 4월 20일 북한 정권을 향해 “북한이 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김일성 주석의 98회 생일을 맞아 평양 대동강변에서 벌인 불꽃놀이를 벌였는데) 백성은 어려운데 60억 원을 들여 생일이라고 밤새도록 폭죽을 터뜨렸다. 그 돈으로 옥수수를 사면 얼마나 살 수 있겠느냐. 북한이 바르게 가야 한다고 본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하지만 이 발언도 “천안함 이야기는 못하고 폭죽 이야기나 해댄다”는 비판 여론을 불러오게 된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명박의 안보관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이명박은 건설 CEO 출신인 기업가라 어떤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아주 신중하게 따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신속한’ 결정보다는 ‘정확한’ 결정을 추구한다는 논리였다.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된 것도 이명박이 수지 타산만 따지는 기업가 출신이기에 북핵 언급이 없는 정상회담에 나서지 않았으며, 남북관계도 마치 사업을 하듯 대한민국이 ‘갑’이고 북한이 ‘을’이라는 인식을 가졌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안보 분야만큼 즉각적이고 신속한 판단을 필요로 하는 분야도 없다.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 소장 출신으로 정치권의 대표적인 ‘북한통’인 송영선 미래희망연대 의원은 당시 이명박을 향해 이런 말을 한다.
“10년 동안 엄마(과거 정권)가 밥을 떠먹여 주는 바람에 아이(북한)가 숟가락, 젓가락질을 배우지 못했다. 그런데 새엄마(이명박 정권)가 와서 아이의 버릇을 고치겠다며 숟가락, 젓가락질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니 손으로 떠먹으라’고 윽박질렀다. 천안함 사건은 숟가락, 젓가락질이 제대로 될 리 없는 아이가 잔뜩 열이 받아 새엄마 얼굴에 밥그릇을 냅다 던진 셈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이라는 상대가 있는 냉엄한 국제 정치 속에서 현 정부가 북한을 대하는 방식은 잘못됐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3000’으로 압축된다.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3000달러로 올려주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비핵화할 뜻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완전히 차단되고 정체됐다는 비판이 보수진영에서부터 피어올랐다.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는 주문과 비공개적으로라도 채널을 복원해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랐다.
문제는 ‘이명박의 사람들’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혼선만 부채질하면서 천안함 사건 처리 과정에서 정보기관끼리 보이지 않는 암투가 노출되기도 했다. 군 정보기관을 접촉한 언론은 ‘북한 연루’ 가능성을 보도했고, 국정원 접촉 언론은 북한과 관계없음을 보도하면서 국론 분열을 불러온 것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외교안보실과 정무라인, 홍보라인이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도대체 컨트롤 타워가 어디냐”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천안함 희생장병 합동분향소를 찾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조문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당시 한 일화다. 12월 2일 국방부 대변인과 기자들 사이에 웃지 못할 이야기가 오갔다.
기자: 잘 아시겠지만 참여정부에서는 국방정책과 관련해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슬로건을 분명히 제시했죠. 이명박 정부에도 이 같은 국방정책 슬로건이 있나요? 국회 국방위에도 아는 분들이 없어서요.
대변인: 아…국방백서를 보면 나오지 않습니까? 제 코멘트보다는 그게 공식 입장이니까 국방백서를 참고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기자: 실례지만 대변인께서도 잘 모르시는 건가요?
대변인: 그렇게 물으시면 저를 시험하시는 거고… 제가 어설프게 답하는 거보다 거기에 잘 정리해놓았을 테니 그걸 보고 이해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아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국방백서에는 ‘정예화된 전진강군’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안보 무능이라는 직격탄에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됐다.
이 반사이익은 곧바로 당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돌아갔다.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은 말을 박 전 대표가 죄다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연평도 도발 다음날인 11월 24일 “이번에 북한이 우리 국민과 영토에 직접적으로 포격을 한 것은 명백한 도발 행위이고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도발에는 반드시 큰 대가를 따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야 합니다”라고 대북 비판 수위를 한껏 높이게 된다. 그리고 ‘모든 수단과 방법’에 대해선 “거기에는 외교적, 군사적 모든 수단이 다 있다”고 밝히면서 보수진영의 세력 결집을 꾀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다음날인 25일 북한 포격으로 사망한 군인 유족을 찾아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 좋은 대북정책을 만들어달라’는 당부에 “뜻을 잘 새겨서 정말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고, 다음날인 26일에는 자신의 홈페이지와 트위터에 글을 남기면서 “여성은 안보에 약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일거에 해소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국민은 국가를 신뢰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평소 공기의 존재에 무관심하듯, 우리의 모든 생활이 무의식 중에 안보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가능하다. 도발이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다.”
뜻하지 않은 안보 정국에 이명박은 죽고, 박근혜는 산다. 거기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효과까지 재 부각되면서 박 전 대표로선 ‘여의도 야당’으로 점차 자리매김하게 된다.
최기서 언론인
잠깐 천안함 폭침 사건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 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됐지만 나머지 46명은 실종됐다. 당시 사고 원인에 대해선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대한민국 국군과 주한 미군의 육해공 연합 호국훈련에 대해 자국에 선제공격을 가하려는 것이라며 호국훈련 종료 후 76.2mm 평사포, 122mm 대구경 포, 130mm 대구경 포 등을 이용해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를 향해 개머리 해안부근 해안포기지로부터 무차별 포격을 가한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