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밝히는 채형석 부회장의 혐의는 대략 다음과 같다. △2005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회사 공금 20억 원을 빼돌려 개인용도로 사용했으며 △2005년 아파트 건설을 위해 대구 섬유업체 대한방직이 소유한 7만 9000㎡(약 2만 4000평) 토지에 대한 수백억 원대 매입 협상을 하면서 우선매수권을 달라는 부탁과 함께 대한방직 설범 회장에게 15억 원을 건넸고 △같은 해 애경백화점 부지를 사들여 주상복합상가를 지은 나인스에비뉴가 은행대출을 요청하자 보증을 서주면서 6억 원을 받아 챙겼다는 것.
채 부회장 구속수사에 대해 애경 측은 “조속한 시일 내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상당 부분 왜곡되거나 과장된 내용은 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애경 측의 바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채 부회장 구속에 앞서 지난 11월 애경 비자금 조성 의혹의 핵심 인물로 보이는 애경그룹 협력사 애경E&C 대표 박 아무개 씨를 구속해 수사를 벌여왔다.
애경E&C는 애경백화점 주차장 부지 매각을 대리한 업체로 박 씨는 해당 부지를 인수한 나인스에비뉴로부터 130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나인스에비뉴가 은행 대출을 위해 애경의 보증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박 씨가 대가성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씨가 수수한 자금 중 일부가 애경에 흘러갔는지, 더불어 나인스에비뉴가 주상복합상가를 지어 분양하는 과정에서 벌어들인 돈 중 일부가 애경에 유입됐는지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애경그룹 측은 애경E&C 대해 “애경의 건물 관리 등을 대행해준 협력업체였을 뿐이며 애경그룹과는 지분관계 등 아무런 연관이 없는 회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회사 상호에 ‘애경’을 붙일 수 있게 해준 점이나 회사 부동산 매각 대리를 맡긴 점 등으로 미루어 그러한 주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어 보인다. 애경E&C 대표 박 씨는 채형석 부회장과 동갑내기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검찰이 박 씨로부터 채 부회장 구속에 필요한 정황을 확보했을 것으로 검찰 안팎에서 관측하고 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 10월 나인스에비뉴 최대주주 장 아무개 씨를 분양대금 횡령혐의로 구속한 상태다. 나인스에비뉴와 애경E&C의 핵심인물 구속수사를 통해 ‘나인스에비뉴→애경E&C→애경그룹’ 형태의 자금 유입 정황을 캐내 애경의 비자금 조성 여부를 밝히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경제위기와 관련, 정부와 검찰은 기업에 대한 수사를 자제하려는 자세를 보여 왔다. 그런데 덜컥 애경그룹 총수나 다름없는 채형석 부회장이 구속되자 수사범위에 대한 논란이 무성하다. 일부에선 ‘채 부회장 수사가 이번 애경 비자금 의혹 수사의 끝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채 부회장을 구속한 검찰의 수사 방향은 이제 ‘횡령 금액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였는가’로 흐르는 듯하다. 일각에선 이미 구속된 나인스에비뉴 최대주주 장 씨가 과거 불법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구속된 전례가 있고 장영신 그룹 회장이 구 여권 국회의원을 지낸 점을 들어 비자금 용처가 정치권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 배경에 대해 ‘현 민주당 세력을 위시한 구여권 인사들에게 자금이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보는 것 아니냐’란 말도 나오고 있어 이번 수사에 대한 정·재계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