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을 든 신격호 회장 합성 사진. | ||
롯데가 롯데마트를 건립할 계획으로 창원시청 앞 중앙동 일대 대지 1만 2604㎡(3800여 평)를 사들인 것은 지난 2000년의 일이다. 이후 롯데는 2004년 6월 롯데마트 건립을 위한 건축심의를 신청했다가 그해 7월 창원시로부터 ‘건축심의 불가 처분’을 받았다. 이에 롯데는 2005년 3월 창원시를 상대로 창원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이듬해 ‘건축심의 불가 처분 취소’ 판결을 받아냈다. 창원시는 2006년 3월 부산고등법원에 항소했지만 그해 12월 기각됐고 2007년 10월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기각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롯데의 승소에도 창원시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지난 8월 박완수 창원시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시민 정서에 반하는 롯데마트 건립 계획은 철회돼야 한다”며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날 박 시장은 “기업의 논리만을 내세워 시민 정서에 반하고 공익을 훼손하려는 롯데의 행위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한다”면서 “시청광장 주변의 훼손과 시민불편을 초래하는 그 어떠한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롯데는 지난 10월 27일 창원시에 롯데마트 건축허가를 신청했으나 11월 12일 ‘건축 불허가 처분’ 통보를 받았다. 이에 롯데 측은 지난 12월 초 창원시와 박완수 창원시장을 상대로 ‘건축 불허가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창원지방법원에, 74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각각 내기에 이르렀다.
‘해당 지역은 상업지역으로 법률 및 행정상 대형 할인점 신축에 전혀 문제가 없으므로 지자체의 건축 불허가 처분이 당연히 취소돼야 하며 2000년 부지 매입 이후 진행을 못해 생긴 각종 손실을 감안해 청구금액을 산정했다’는 것이 롯데 측 입장이다. 이에 박완수 시장은 롯데마트 사태와 관련해 시의회, 재래상가 대표, 시민단체 대표, 학계인사 등으로 구성한 롯데마트 대책위원회 조직에 나선 상태다.
창원시가 내세워온 롯데마트 입점 불허 명분은 창원시청 일대 교통체증 우려와 주변 영세상인 보호다. 창원시 측은 시청 앞에 이미 롯데백화점 이마트 등이 들어서 있는데 롯데마트까지 들어서면 안 그래도 심각한 도로상황이 더욱 혼잡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원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일대에 지하차도를 건설하기로 하고 이미 용역까지 맡긴 상태. 롯데마트가 롯데백화점 맞은편에 들어서면서 롯데 측 계획대로 두 상가를 잇는 지하보도를 만들게 되면 기존에 계획된 지하차도와 맞물린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롯데마트 때문에 이미 진행 중인 도시계획사업을 수정할 순 없지 않느냐”고 밝혔다.
▲ 롯데 측과 대립하고 있는박완수 창원시장. | ||
창원시 관계자는 “건축심의 불허 취소 판결을 받았지만 건축심의는 건축허가의 전 단계로 건축허가 과정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불허 사유들이 새롭게 제기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창원시청 일대 상권이 현재 포화상태인데 굳이 롯데마트까지 그 지역에 무리해서 입점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창원시 측은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창원시민 절대다수가 롯데마트 시청 앞 입점을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롯데마트 측은 “창원시나 인근 마산 인구까지 고려하면 롯데마트의 창원시청 앞 입점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롯데마트가 들어서면 인근의 다른 대형 매장들과 더불어 가격과 서비스 경쟁이 일어날 것이고 결국 소비자들이 그 수혜를 볼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존 상인들이 있던 자리를 헐고 입점하는 것도 아닌데 주변 영세상인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창원시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는 견해다.
▲ 창원시청에서 바라본 광장. 오른쪽 위로 롯데백화점이 보인다. 연합뉴스. | ||
이견을 좁히지 못하던 롯데와 창원시는 창원시청 앞이 아닌 다른 장소로의 입점 논의를 벌인 적도 있지만 중단된 지 오래됐다고 한다. 창원시 관계자는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 (롯데와) 의견을 나눌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마트 측은 “창원시에서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한다.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니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소송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 측의 소송 제기로 두 번째 법정공방을 맞게 된 롯데나 창원시 모두 소송 결과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미 건축심의 불허와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패소한 바 있는 창원시가 이번에 또 패소한다면 ‘명분 없이 기업활동을 막아온 지자체’란 수식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반면 롯데가 패할 경우 ‘민심에 반하는 기업활동을 추구하는 대기업’이란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다.
롯데와 창원시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된 배경으로 항간에는 ‘박완수 시장이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롯데마트 사태를 활용한다’라는 견해도 있지만 창원시 측은 극구 부인한다. 반대로 ‘롯데가 창원시청에 밀려 입점에 실패할 경우 지지부진한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와 인천 계양산 골프장 건립 전망 또한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롯데 주변에 감돌고 있다.
롯데의 계양산 골프장 건립 추진은 환경문제 등을 이유로 지역 시민단체와 인근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운동에 가로막혀 있는 상태다. 신격호 회장의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드 건립은 인근에 위치한 군사시설인 서울공항의 비행안전 문제로 롯데-서울시-국방부 간의 조율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건드리는 부동산마다 ‘잭팟’을 터뜨리며 롯데그룹 부흥의 기틀을 닦았던 신격호 회장이 한꺼번에 닥친 ‘부동산 개발’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