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타선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때도 심판 판정이 불리했을 때도 자신이 더 잘 던졌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어떤 상황에서도 남의 탓을 하지 않았다. 홍순국 순스포츠기자
# 시즌을 불펜에서 시작한다고?
류현진은 시범경기 동안 LA에인절스전에 첫 선발 등판했다. 이날 류현진은 2이닝 동안 47개의 공을 던지며 탈삼진 3개를 뽑아냈지만 4피안타 1볼넷을 내줬고, 무엇보다 조쉬 해밀턴에게 투런 홈런을 맞으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이날 경기 후 각종 외신들은 류현진이 올 시즌을 불펜 투수로 시작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었다.
“시범경기에서는 다양한 구질을 경험하고 싶었다. 조쉬 해밀턴이 강타자라는 걸 알면서도 스프링캠프 동안 한 번도 던져 보지 않았던 슬라이더를 구사함으로써 내 공을 가늠하고 싶었을 뿐인데, 언론에서는 그 날 경기 이후 바로 불펜행을 예상하더라. 솔직히 서운했고, 답답했다. 홈런은 투수한테 뼈아픈 경험이다. 그런데 시범경기였기 때문에 많이 맞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자들은 선수보다 앞서나가길 좋아한다.”
류현진은 실력으로 그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그는 시범경기 때도 “시즌 개막 때까지 몸을 만들면 지금보다는 그때가, 또 개막 때보다는 시즌 중반이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자신한 바 있다. 류현진 가라사대, ‘말하는 대로 이뤄지리라’이다.
# 불펜피칭 논란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대다수 선발투수들은 다음 등판 전까지 한 차례씩 불펜 피칭을 거치는 게 관례다. 일명 ‘불펜 세션’이라고도 불리는 불펜 피칭은 선발등판 이틀 전에 갖는 게 일반적인데 류현진은 이것을 생략한다. 이유는 팔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신인인 류현진의 이런 행동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굉장한 의구심을 나타낸 바 있다. 류현진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 가기 전에 (김)병현 형이 이런 조언을 해줬다.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내가 하던 방식들을 모두 바꾸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참고는 하되, 감독, 코치, 선수들, 기자들이 한 마디씩 한다고 해서 그걸 다 따라 가려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불펜 피칭 생략에 대해 말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바꾸고 싶지 않다. 만약 내가 투구하는데 문제가 불거진다면 그때 가서 재고해 보겠다. 지금은 아니다. 이곳 사람들의 눈과 입이 무서워서 내가 하던 방식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류현진은 담배 논란을 비롯해서 불펜 피칭까지 자꾸 브레이크를 거는 여론에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지만 이런 말로 정리를 했다. “나만 잘하면 된다. 내가 좋은 공을 던진다면 이런 논란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 성의 없는 주루 플레이?
류현진은 지난 4월 3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강심장’으로 통하는 류현진도 데뷔전은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6⅓이닝 동안 10피안타 3실점(1자책점)으로 데뷔전을 마무리했고, 첫 등판에서 안타 10개가 쏟아진 건 류현진으로서는 다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류현진은 이날 투구 내용보다 주루 플레이에 대해 비난을 받았다. 내야땅볼로 아웃된 그는 1루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지 않으면서 홈 팬들의 야유를 받았던 것.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타석에 들어서다보니 내 정신이 아니었다. 타격 후 뛰어가는데 내야 땅볼이 되는 걸 보고 다음 등판을 생각해서 천천히 뛰었더니 그게 또 비난의 대상이 되더라. 그 부분은 내가 잘못했다. 전력 질주를 하는 게 당연한 데도, 난 내 입장만 생각했다. 어쩌면 그런 경험이 다음 타석에 설 때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12일 애리조나전에서는 3타수 3안타가 터졌다. 투수가 타석에 서지 않는 아메리칸리그도 경험해봤지만, 난 타석에 서면서 공을 던질 때 더 좋은 피칭이 나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계속 경기를 뛰면서 몸이 식지 않는 게 이유가 아닐까 싶다.”
류현진은 애리조나전에 이어 3승을 거둔 콜로라도전에서도 안타를 터트려 12타수 4안타로 타율 3할3푼3리를 기록했다.
# 볼티모어전의 악몽
“패하면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경기는 이상하게 몸의 힘이 없었다. 잠을 잘못 잔 것도 아니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것도 아니었는데 경기 전부터 기운이 안 났다. 그러다보니 파울이 돼야 할 공이 장타로 이어졌고 장타를 의식해서 제구에 신경쓰려 했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았다. 언론에서는 시차(LA와 볼티모어는 3시간 차가 난다)와 추운 날씨 탓을 이유로 들었지만, 분명한 건 내가 준비를 잘못한 탓이다. 솔직히 홈런 두 방을 얻어맞으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가 어떤 곳인지를 실감하게 해준 경기였다.”
류현진은 볼티모어전에서 뼈아픈 패전 투수가 되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고 한다. 단순히 경기에서 패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컨디션 조절 실패와 이전과는 달리 도망가는 듯한 피칭을 하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경기를 이끌어가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잠시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하루짜리였다. 이후 뉴욕으로 이동해서 하루 쉰 다음부터는 다시 이전의 류현진으로 돌아왔다. 뉴욕 메츠전에서는 7이닝 8탈삼진 1실점 역투를 펼쳤다.
# ‘부상 병동’ 다저스 마운드
다저스는 지난 겨울 1억 4700만 달러를 들여 영입한 오른손 투수 잭 그레인키가 벤치 클리어링 도중 빗장뼈 골절 부상으로 빠져 있는 가운데, 이 자리를 대신해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왔던 크리스 카푸아노도 수비 도중 발목을 다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스프링캠프 때 다저스의 2선발로 예정됐던 채드 빌링슬리는 팔꿈치 통증으로, 그리고 테드 릴리까지 허리 통증으로 다음 등판이 불투명한 상태다. 당연히 류현진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류현진은 담담했다.
“선수들이 부상을 당한 건 굉장히 안타깝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상황을 힘들어 한다고 해서 나아질 건 전혀 없다. 나한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해 내고 싶다. 그래야 선수단에 힘이 될 것이 아닌가. 다행이 우리 팀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좋은 피칭을 하고 있어 기운이 난다. 부상 당한 선수들이 모두 돌아온다면 더욱 탄탄한 마운드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고, 그때까지 나도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의 역할을 해냈으면 좋겠다.”
류현진은 MBC 허구연 해설위원이 경기 때마다 지적했던 포수와의 호흡 문제에 대해서도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주전 포수인 A.J.엘리스, 그리고 라몬 에르난데스와 배터리를 이뤘던 그는 “우리 팀 포수들은 내가 던지려고 하는 대로 리드를 이끈다. 자신들의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다”면서 “내가 가장 편하게 던질 수 있게끔 배려하기 때문에 포수와의 호흡에는 이상이 없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은 어떤 상황에서도 ‘남의 탓’을 하지 않았다. 타선이 뒷받침되지 않은 날에는 자신이 더 잘 던졌어야 한다고 말했고, 타선이 폭발했을 때 무너진 날에는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TV중계를 통해서는 포수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비춰지는 부분도 자기 탓으로 돌렸다. 심판의 투구 판정에 불만이 있을 법도 했지만, 그 또한 자신이 더 잘 던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미국 현지에서 류현진을 바라보는 시선은 굉장히 우호적이다.
메이저리그가 개막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지금까지의 류현진은 분명 성공적인 데뷔 해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우쭐하거나 자만하지 않는다.
작은 실투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 ‘메이저리그 정글’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류현진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진다. 스프링캠프에서 보여줬던 천진난만한 웃음 대신 진지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선수들에게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류현진은 진짜 ‘괴물’이 되고 싶어 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류현진과 추신수 “내가 데드볼 던지면 한국서 역적 될 것^^” 류현진은 메이저리거가 되기 전부터 추신수와 의형제처럼 친했다. “현진이가 속한 팀이 한인들이 많은 LA를 연고로 하고 있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본다. 만약 처음부터 클리블랜드나 신시내티처럼 한인들이 많지 않은 곳에 있었다면 쉽게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진이의 살가운 성격이 선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다. 나와는 또 다른 현진이 스타일대로 메이저리그에 녹아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까 흐뭇하다.” 다저스 입단 전부터 의형제 이상의 친분을 보였던 추신수와 류현진은 정작 시즌 들어가면서부터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는 상태다. 계속되는 경기들로 인해 가끔 문자만 주고 받는 정도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왜냐하면 추신수가 기존의 스캇 보라스 매니지먼트에서 한국의 IB스포츠와 새로운 계약을 맺으면서 스캇 보라스 매니지먼트에 속해 있는 전승환 이사, 그리고 류현진과의 관계가 어색해졌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추신수가 에이전트 계약만 남겨 놓고 매니지먼트 계약을 해지한 스캇 보라스와는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전승환 이사와는 종종 전화통화를 하면서 안부를 주고 받고 있었다. 류현진 또한 매니지먼트사가 달라졌다고 해도 추신수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 추신수와 류현진은 오는 7월 25일부터 다저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LA다저스와 신시내티 레즈 경기 때 조우할 전망이다. 류현진은 그 경기에 대한 기대를 잔뜩 나타내면서 최근 추신수가 몸에 맞는 볼이 빈번했던 것을 떠올렸다. “난 포수 미트만 보고 던질 것이다. 자칫 잘못해서 내가 신수 형의 몸을 맞히기라도 한다면 난 한국에서 ‘역적’으로 몰릴 것이다. 악플만 수만 개가 달릴 지도 모른다. 그런 악몽을 겪고 싶지 않다(웃음).”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
류현진과 싸이 “싸이 형이 더 유명해 질투 나” 싸이와 류현진. 맨 왼쪽은 류현진 통역사 마틴 김. 4회 초, 류현진이 타석에 들어설 때 관중석 한켠에서 ‘젠틀맨’ 곡에 맞춰 맛보기 춤을 보여주며 관중들의 열띤 환호에 응답했던 싸이는 경기 후 류현진과 늦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새로운 인연을 이어 나갔다. 싸이와의 만남 이후 류현진은 이전 ‘싸이 씨’라는 호칭에서 ‘싸이 형’으로 그를 부르며 자신이 좋아했던 가수를 직접 만났다는 사실에 대해 행복해 했다. “나만 좋아했던 게 아니다. 싸이 형이 클럽하우스에 나타나니까 모든 선수들이 소리를 지르며 서로 사진 찍으려고 달려들었다. 은근히 기분 좋기도 하고, 약간 질투가 나기도 했다. 내가 싸이 형보다는 덜 유명한 것 같아서(웃음).” 류현진은 싸이가 TV로 보던 것과는 달리 진중하고 조심스런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자신이 나이로는 동생이지만, 메이저리그 선수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싸이 형이 내가 ‘다저 아이돌’ 이벤트 때 ‘강남스타일’을 부른 동영상을 봤다고 하시더라. 굉장히 재미있었다면서 타석에 들어설 때 ‘젠틀맨’을 틀어준 것도 고마워 하셨다. 미국의 어린아이까지 알고 있는 세계적인 스타가 매사에 겸손하시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셔서 감동했다. 많은 걸 배웠던 식사 자리였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