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지난해 5월 증권선물거래소의 골프 접대비 등 과다한 경비 지출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를 두고 ‘표적 수사’ 논란이 제기됐었다. | ||
이에 대항하는 거래소는 정부의 이런 공세를 예견하고 이미 여러 법무법인을 통해 공공기관 지정의 법률적 문제점 등을 짚은 문건을 만들어놓은 상태다. 거래소로부터 자문을 요청받은 한 법무법인은 ‘임원에 대한 임면권이 대통령 또는 기획재정부 장관에 귀속되어 주주권이 제한됨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이 침해되며, 독자적인 영업을 해야 하는 주식회사가 공공기관법으로 인해 경영계약 체결 및 경영목표 설정 등으로 영업자유가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주식회사와 달리 공공기관법의 적용을 받게 돼 평등권도 제한받아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또 다른 법무법인도 거래소가 공공기관법에 따라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주주권 침해와 영업권 자유 제한을 받는 등 기본권 침해가 시작되게 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정부의 공공기관 지정고시의 위헌성에 대한 행정소송과 함께 공공기관법 자체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전략도 마련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거래소는 명백한 주식회사고 그 주식은 증권사 등 회원사가 가지고 있는 100% 민간회사인데 정부 맘대로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이 정부는 말로는 한국을 금융거래의 허브로 만들겠다, 금융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 중심인 거래소는 정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 관계자는 또 “거래소의 방만 경영을 공공기관 지정 이유로 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사장 자리에 정부가 원하는 사람을 앉히지 못했다는 괘씸죄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 아니냐.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위헌소송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위헌소송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면 주주들에 대한 재산권 침해로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 소송을 걸 수 있는 당사자는 회사나 주주들이다. 그렇다면 거래소나 증권회사들이 소송주체가 될 텐데 누가 정부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게다가 정부는 그동안 거래소를 1988년 민영화시킨 뒤에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번 공공기관 지정 움직임은 정부의 사정권 밖으로 벗어나려고 한 거래소에 대한 경고사격의 시작인 만큼 쉽사리 결말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거래소는 1988년 회원제로 전환됐지만 정부의 영향력 행사는 지속되어 왔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 취임으로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증권거래소는 1988년 3월 1일 회원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2005년에는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등을 합병한 한국증권선물거래소로 탈바꿈하면서 완전 민간주식회사로 전환했다. 그러나 거래소의 역사 속에서 정부의 입김은 끊이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의 통합이다. 증시 통합은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이뤄졌지만 그 역사는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선물거래법을 제정, 모든 선물거래가 후일 선물거래소로 일원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2005년 통합 추진 때 발생했던 각종 논란도 정부의 정리로 마무리됐다. 당시 증권예탁원과 한국증권업협회는 통합거래소 법안에 강력 반발했다. 증권예탁원은 당장 청산결제업무 등 기존 업무 상당부분을 빼앗길 처지였고 한국증권업협회는 산하에 있던 코스닥시장을 넘겨줘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증권업협회는 아예 작심한 듯 주요 일간지 1면 광고를 내며 정부 주도하에 시행되던 증시통합을 비판했지만 정부는 금융시장 선진화를 내세우며 추진을 강행했다. 정부의 비호하에 거래소는 그 몸집을 불려온 셈이다.
정부의 도움으로 커온 만큼 정치적 논리에 휘말린 적도 많다. 거래소의 본사가 부산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1997년 대선 당시 대선후보들이 영남권 표를 얻기 위해 부산에 선물거래소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실제 1999년 선물거래소가 부산에 문을 열었다. 끊이지 않던 실효성 논란은 선물거래소가 증권거래소와 통합되면서 더욱 커졌다. 이참에 선물거래소도 서울로 옮기자는 주장 때문이었다. 이 논란은 지방균형발전을 내세운 노무현 정부가 거래소 본사를 부산에 두기로 하면서 잠잠해졌지만 정부가 민간기업인 거래소를 정치적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거래소의 완전민영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였던 주식 상장을 막은 것도 영향력을 잃기 싫어했던 정부였다.
이사장 임명도 정권의 입김에 좌지우지됐다. 통합거래소 설립 당시 최종 후보 3인이 모두 전격 사퇴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진 것도 하나의 예다. 이런 정부의 힘이 발휘되지 못한 유일한 사례가 지난해 있었던 이사장 선출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민다고 알려진 모 인사가 심사위에서 탈락한 이후부터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공공기관 지정 검토 등 정부의 공세가 이어져 괘씸죄 등 뒷말을 낳았다.
이처럼 정부가 거래소를 ‘노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부 인사를 앉힐 수 있는 자리가 이사장을 포함해 6개나 된다는 점이 가장 눈에 보이는 메리트일 테고, 또 거래소를 통해 증권사와 그 유관기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 못할 매력이다. 여기에 선거 때마다 내놓은 금융시장 선진화 공약을 그럴듯하게 꾸미려면 거래소가 영향력하에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