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 윤중천 전 회장의 별장 전경. 이곳에서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임준선 기자
최근 한 언론은 국내 대기업 회장의 20분짜리 성접대 동영상을 경찰이 확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그동안 파문을 일으켰던 성접대 동영상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내용이다. 여기에는 모 대기업 회장이 2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성접대 동영상 사건의 본질이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또 다른 동영상이 추가로 발견되었다는 일부의 보도에 대해 경찰은 상당히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 한 관계자는 “제3의 인물도 없고 추가로 확보된 동영상도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수사 보안을 위해 새로운 동영상을 발견하고도 부인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새로운 동영상이 발견됐다는 주장은 다소 신빙
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윤중천 전 회장의 벤츠 차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김학의 동영상’을 최초 발견한 ‘해결사’ 박 아무개 씨(41), 한 아무개 씨(39) 등 참고인들은 지난 6일 경찰청 특수수사과 조사 과정에서 모 대기업 임원이 등장하는 영상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으며 담당 수사관 역시 이와 관련된 질문을 일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결사 박 씨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제2의 성접대 동영상과 대기업 임원이라니 금시초문이다. 예전부터 말한 대로 영상은 3커트(cut)로 나눠진 1분 58초짜리 CD 1개다. 김학의 전 차관과 여성 한 명만 등장한다”며 “3커트로 나눠진 영상을 보면 찍은 각도가 다를 뿐 전부 동일 인물(김학의)이다”라고 말했다. 앞서의 박 씨와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사업가 박 아무개 씨(58) 역시 “‘김학의 전 차관’ 동영상을 봤다”면서도 “제3의 인물이 출연하는 성접대 동영상은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시점에서 갑자기 대기업 임원의 구체적 이니셜까지 나오는 등 제2의 동영상 존재설이 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경찰 측은 내사단계부터 성접대 동영상 CD가 최소 2개 이상 있는 것으로 확신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성접대 CD 7~8장 존재설’이 지난 1월 중순 이미 파다하게 경찰청 특수수사과를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라는 게 몇몇 내부자의 귀띔이다. 하지만 당시 떠돌던 ‘CD 7~8장 존재설’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CD가 나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과정에서 개수가 증폭되었을 수 있다는 것.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해결사 박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성접대 CD 7~8장설’ ‘제3의 인물 설’은 말 그대로 ‘설’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경찰의 압박수사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오버 발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2의 성접대 동영상이 없다’고 속단하기도 이르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시각이다. 바로 피해여성으로 알려진 최 아무개 씨(38), 권 아무개 씨(52) 때문이다. 최 씨는 최근 5~6년간 윤 전 회장으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여성화가. 최 씨는 윤 전 회장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후 윤 전 회장과의 통화에서 “재정상의 문제로 고소했다. 회장님에겐 미안하다”고 말해 사건을 아리송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또한 최 씨는 올해 1월 중순 ‘사업가’ 박 씨에게 “윤 회장 때문에 강제로 성접대를 해야만 했다”고 하소연한 후 박 씨의 고교 동창인 D 업체 박 아무개 회장을 통해 김학의 전 차관에게 접근, 피해보상금 20억 원을 받아내려고 했던 것으로도 알려진다.
사건 초기부터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의혹을 받아온 최 씨가 제2의 성접대 동영상 존재의 키를 쥐고 있는 이유는 바로 ‘김학의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이 최 씨라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원본 영상을 수차례 봤고 업무상 최 씨와도 직접 대면해 친분을 쌓았던 ‘해결사’ 박 씨는 지난 4월 “원본 영상에 나온 여성을 자세히 보니 (최 씨와) 손이 너무 비슷하더라. 단발머리에다가. 체형도 비슷하니까 최 씨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당시 최 씨는 ‘영상에 나온 인물이 당신 아니냐’는 박 씨의 질문에 갑자기 담배를 연달아 피우는 등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난 아니다. 그냥 일반 여대생인 것 같다”며 극구 부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 전 회장이 지난 2~3월 인터뷰에서 “최 씨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하자 동정심이 들어 재계 인사들 몇 명을 소개시켜줬다”고 밝힌 것을 미루어 볼 때 최 씨가 김 전 차관이 아니더라도 제3의 유명 인물들과 비슷한 행각을 벌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최 씨가 재계 인사 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윤 전 회장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또 다른 성접대 동영상을 ‘보험용’으로 만들어 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최 씨가 윤 회장에 의해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진 재계 인사는 J 주류업체 K 회장, S 중공업 J 회장, N 호텔 C 회장, 대기업 전직 회장 P 씨 등이다. 특히 이 P 씨의 관련 회사 때문에 최근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 연루되었다는 해프닝성 의혹이 나왔을 수도 있다. 이밖에도 전직 감사원 국장 출신 S 씨 등 정계 인사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 전 회장의 내연녀 권 씨 역시 제2의 성접대 동영상 존재에 대한 키를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윤 전 회장 측과 경찰 등에 따르면 ‘권 씨는 처음 CD가 발견됐을 때 자신과 관계된 것인 줄 알고 굉장히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윤 전 회장 측은 “권 씨 자신이 평소 성관계 동영상 촬영을 즐겨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권 씨 자신이 만든 동영상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권 씨는 로터리클럽, 상공회의소 인문학포럼, K 대 사회과학대학 박물관학과 과정 등을 두루 거치며 평소 고위급 인사들과 친분을 쌓는 데 주력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 경찰은 한때 윤 전 회장의 내연녀였던 권 씨가 자신의 ‘화려한’ 인맥을 통해 성접대에 ‘기여’한 부분이 있는지도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경찰은 ‘권 씨가 조사과정 내내 진술을 번복한 점’ ‘윤 전 회장 소유 별장에 대한 이권이 얽힌 점’ ‘윤 전 회장과 내연 관계였을 당시 윤 전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몇몇 인물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한 정황’ 등을 감안해 이전보다 신중히 수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동영상 주인공 김학의 전 차관
경찰은 양측의 친분관계 규명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 전 차관이 사건 초기에 담당서에 전화를 넣는 등 외압을 넣으려 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윤 전 회장이 성폭행 혐의로 긴급 체포됐을 당시 김 전 차관과 서초경찰서 담당팀장과 통화한 사실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에 ‘외압’의 흔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몇몇 경찰 관계자는 지난 3월 31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회장이 서초서에서 ‘골인’(구속) 안됐는데 아마도 서초서 핵심관계자가 윗선으로부터 청탁을 받았을 거다. 보통 피해자 진술은 시작을 하면 끝을 맺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윤 전 회장 사건만은 진술 도중에 ‘내일 모레 다시 조사하자’며 끝을 냈다. 전례 없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경찰 관계자는 “11월 말 윤 전 회장이 ‘긴급체포’된 것도 석연찮다. 검사 지휘가 있어야 석방 가능한 ‘체포영장’ 말고 경찰이 바로 석방시켜줄 수 있는 ‘긴급체포’ 카드를 쓴 것 같다”면서 “그런데 그 후 경찰이 체면상 뭔가를 보여주려고 영장청구를 했는데 곧바로 불구속 제지가 떨어지더라. 재밌는 사실은 원래 검사 지휘는 한 줄 내지 두 줄로 끝나는데 윤 전 회장 건은 ‘한 장’이 떨어졌다. 검찰에도 백프로 ‘빽’을 쓴 거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경찰의 수사과정에 ‘외압’ 논란이 있었다면 그 당사자가 김학의 전 차관이었는지의 여부를 밝히는 게 향후 경찰 수사의 핵심 포인트다.
그런데 윤 전 회장은 3월 17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학의 차관과는 안면은 있었지만 5년 전부터 연락이 뚝 끊겼고 만나지 않은 지도 4~5년이 넘었다”고 말했다(윤 전 회장은 5월 9일 경찰청 조사에서는 “김학의 전 차관은 모르는 사람이다. 성접대를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김 전 차관이 정권 참여라는 ‘대사’를 앞두고 굳이 곤경에 빠진 먼 옛날친구, 윤 회장을 구명해주려고 했던 이유가 선뜻 이해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들의 친분이 생긴 계기 역시 여전히 미스터리다. 윤 전 회장 측 주변인에 따르면 이들은 1~2년 정도 친분을 쌓았다가 지난 5년간 급격히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회장의 경우 자신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자, 주 변인과의 연락을 삼갔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 측 지인 역시 ‘그 사람 성격상 자신의 직책이 올라감에 따라 혹시 모를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 건설업자 등과 거리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차관의 한 지인은 3월 21일 인터뷰에서 “김학의 전 차관은 서초동 검찰 출근하는 길에 자신의 외동딸 등교를 도와줄 수도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관용차에 딸을 태우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했다. 그런 사람이 건설업자 등과 친분을 쌓았겠느냐”라며 “서울대 CC로 결혼한 부인과 금실이 좋아 ‘마누라 없으면 지방 출장도 못 간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는데 성접대에 연루되다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조만간 두 사람을 대질 심문시킬 계획이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