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행복한 나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세월은 흘렀어도 산천은 알지 않나. 그때 그 시절은 결코 좋지 않았고, 그때 그 인생들은 결코 평탄치 않았음을!
그런데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를 그때 그 시절로 돌려보내며 그때가 좋았다고 고백하게 만드는 것이다. 치열하게 싸우고 미워하고 절규하고 상처 내고 상처 나고,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그 시절이 이상하게도 나쁘지도 않았다고, 아니, 참 좋았다고 고백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억의 왜곡인가, 아니면 아무리 힘든 일도 지나놓고 나면 별거 아닌 일이 되는 시간의 마술인가, 그것도 아니면 모든 것을 긍정하게 하는 세월의 힘인가.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던 그 노랫말보다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문장이 훨씬 매혹적인 날들이지만 그래도 부정할 수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 젊은 날이고, 우리의 역사고, 우리의 민주주의임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라면 그 노래는 우리 헌법의 노래라 해도 무방하다. 당연히 5·18 기념식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런데 보훈처가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장에서 퇴출시키려 했다가 저항에 부딪친 것이다. 보훈처의 결정에 의해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빠진다면 껍데기뿐인 기념식이 되지 않겠는가. 오죽하면 새누리당의 김무성 의원이 괜한 결정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며 그 노래 가사 어디에서 반국가적인 내용이 없는데 왜 오랫동안 불러왔던 노래를 중단시켜 국론을 분열시키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을까.
문제가 되자 보훈처는 그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므로 합창단만 그 노래를 부르게 하고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부르지 않게 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모양이다. 그게 행정 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라면 정말 한심하다.
노래가 힘인 것은 마음을 담기 때문이다. 합창이 아름다운 것은 음정박자를 잘 맞춰서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호응하기 때문이다. 두렵거나 싫은 무엇인가가 있어 그것을 막기 위해 합창을 이용한다면 그건 합창이 아니라 전체주의의 그림자다. 그렇다면 괜히 합창마저 박제된 노래라는 느낌이 들어 싫을 거 같다. 노래의 힘은 자연스러움에 있는데!
자연스럽게 울려 퍼지는 노래, 강물처럼 흐르는 노래를 막으려 하는 그 치졸한 정신으로라면 차라리 5·18 기념식을 준비할 자격이 없다. 보훈처는 5·18 정신이 싫은가, 두려운가. 보훈처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