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그런데 요즘 그의 머릿속이 무척 복잡하다. 이제 막 새 지도부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민주당 내부 사정은 물론 ‘개성공단 사태’,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 움직임’ 등 소속 상임위인 외교통일위원회 현안 문제로도 골치가 아프다. 민주당 5·4 전당대회가 끝난 후인 지난 7일, <일요신문>은 국회에서 추미애 의원을 만나 그의 복잡한 머릿속 실타래를 풀어봤다.
―이제 막 김한길 체제의 민주당이 닻을 올렸다. 민주당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보는가.
▲이제 자기 본 모습을 스스로 찾아가야 할 때다. 거듭된 선거 패배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왔다. 이제 분석은 분석이고 당내 화합,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힘을 모아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대선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되, 네 탓으로 책임을 전가해 당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게 자신감이다. 지나친 자기 부정, 희망을 잃어버리는 행동은 절대 안 된다. 당내 화합과 자신감 회복. 이제 민주당은 이 두 가지를 시급하게 구축해 나가야 한다.
―민주당은 전당대회 직전까지 당대표 후보 간 부정행위 공방이 있었다. 국민들 눈높이에서는 민주당의 미래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야권 세력은 애초부터 척박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는 그런 환경 속에서 온힘을 다했을 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우리의 미래’, ‘시대과제 방향 설정’ 등 뭔가 절실하게 와 닿은 게 하나도 없었다. 결국은 후보와 당의 책임이다. 국민들을 엮어낼 ‘시멘트’ 역할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당연히 뭔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원하고 파괴적인 한 방을 원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한 방은 없다. 결국은 앞서 말했듯 차근차근 당내 화합과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응석받이가 아닌 어른다운 성숙함을 보여줄 때다. 민주당 60년 역사, 간단치 않은 거다. 민주당이 다시 우뚝 서는 모습 보여줄 때다.
―그럼 여전히 논란 중인 대선평가보고서 채택 문제 등은 잠시 접어 두자는 것인가.
▲무작정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정확하게 보고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선 때 봐서 알겠지만, 전국 각지에 제대로 된 민주당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걸 본 적 있는가. 국민들이 정말 민주당에 한 표 주고 싶은 매력적인 플래카드는 하나도 없었다. 똑바른 자리에서 제대로 된 메시지가 전달돼야 했는데, 그게 안 된 거다. 결국 지난 대선에선 ‘정당’이 작동하지 않은 거다.
―사실 추미애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김한길 대세론’의 유일한 대항마였다. 지금 돌이켜봐도 경선 불출마에 대한 후회는 없나.
▲출마를 하는 것에서 메시지를 던질 수도 있는 거지만, 불출마를 통해서도 나의 메시지를 던질 수도 있는 거다. 그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은 차근차근 당내 화합과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며 “응석받이가 아닌 어른다운 성숙함을 보여줄 때”라고 말했다.
▲지금으로써는 잘 해달라고 부탁할 뿐이다.
―이제 ‘안철수’라는 야권 내 새로운 세력이 원내로 들어왔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참 따갑다. 자잘한 회초리도 들어보다가, 말을 안 들으면 정말 큰 몽둥이도 드는 법이다. 결국 국민들 입장에서 안철수는 민주당을 때리는 ‘매’의 수단으로써 쓴 거다. 안철수 현상 자체가 매라는 거다. 민주당이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실력 발휘를 못하니, 국민들이 안철수를 통해 민주당을 때리고 싶은 거다. 하지만 매도 너무 죽도록 패면 어떻게 되겠나. 결국 아무런 역할도 못하게 된다.
―안철수라는 매도 한계는 있다?
▲안철수 의원도 이제 정치를 해보면 알겠지만, 매를 때리고 비판하는 것은 쉬울 수 있어도 하나의 정당을 구축하고 세력화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건물을 짓는 것도 흙을 파고 말뚝을 박는 기초 작업부터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는 구축 과정이 필요하다. 이거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안철수 의원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안철수 현상도 결국 국민들의 제도권 정치와 정당에 대한 싫증, 병폐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가장 큰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여전히 민주당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확고한 거 같다.
▲‘무조건 민주당’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를 파괴하고 나면 확고한 대체재가 있어야 한다. 버터가 없으면 마가린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마가린도 준비 안 해놓고 버터만 버려 놓으면 안 된다는 거다. 단순히 파괴적으로 접근한다는 거 자체가 대단히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다. 왜 현대 정치는 정당정치여야만 하는가. 왜 국민들 세금으로 미운 정당을 지원하는가. 책임 때문이다. 단순히 인기 영합적인 측면으로 정당을 만들고 부수는 것은 안 된다는 거다.
―결국 안철수 정당, 실체화는 힘들고 어렵다는 건가.
▲앞서 강조했지만, 건축의 과정을 생각해봐라. 건축에 비유하자면, 잘못해서 날림 공사 될 수 있다는 거다. 정치를 날림으로 할 수 있나. 안철수 의원이 정당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다. 쉽게 날림으로 하면 정당이야 만들 수 있다. 그저 아무 인식 없이 제도권 정당에 대한 식상함과 반작용을 갖고 정당을 만들면 어렵다는 거다. 그럼 인기가 떨어지면 다시 정당을 없앨 것인가. 정당이라는 것도 온갖 시련과 풍토를 견딜 수 있는 끈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박근혜 정부도 여러모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캠프’를 떠나야 한다. 대통령에 당선됐으면 선거캠프의 테두리를 떠나 폭 넓게 봐야 한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선거에서는 극단적인 전략도 용인되지만, 국가 전략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캠프 전략과 국가 전략을 구분 못하고 있다. 캠프 인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인사 문제도 그렇고 캠프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하면 국정 지지도를 빨리 올릴까’ 하는 단편적인 사고도 문제다. 개성공단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저 국민 지지를 바라기 위해 북한에 단호함만을 보이지 않았나.
지난해 7월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모습.
▲앞서 말했듯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선거 전략처럼 써먹어 버렸다. 대증요법적 대응만 있었지, 중장기적인 전략은 전혀 없다. 얼마 전 주미대사를 접견했다. 혹시 개성공단 문제에 한-미 간 외보안보전략 상 무슨 호흡을 맞추고 있는가가 궁금해서 물어봤다. 확인해보니 그런 것도 전혀 없더라.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두 가지다. 첫째는 대외적으로 굉장히 부정적인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성공단은 ‘남북관계가 아무리 군사적으로 악화돼도 남북관계의 경제적 영역은 멀쩡하게 돌아간다’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인식시켰다. 그런데 이번에 이것이 깨졌다. 이는 안보 리스크가 한국의 경제 리스크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린 꼴이 됐다.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남북관계는 간절함으로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 것인데 박근혜 정부는 그것이 안 되고 있다는 거다. 지난 1998년 정주영 회장이 왜 소를 끌고 북한에 넘어갔겠는가. 현대자동차를 선물로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도 대다수가 임신한 암소였다. 진심을 담은 평화의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고 싶었던 거다. 북한 밑바닥 주민들 민심에게까지 따뜻한 마음을 전해 감동시키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평화의 메시지는커녕 ‘큰소리치다 의견이 안 맞으면 버릴 수도 있다’는 메시지만 북한에 보내고 있다. 다 깨버리고 있는 거다.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움직임도 큰 문제다.
▲결국 그 문제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북한의 핵문제가 일본의 군사적 능력을 키우고 있는 꼴이다. 일본의 우익집단이 북한의 핵문제를 정치적으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제어를 못하고 있고…. 북핵 자체도 나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일본의 군사적 능력을 키워주고 있는 거다. 큰일이다. 오히려 북핵 자체의 위험성보다 되레 지정학적 판을 흔들고 있다. 일본은 늘 끓고 있다. 대륙으로 뻗치려는 힘이 끓고 있는 나라다. 미국도 이를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이 문제가 계속되면 일본을 넘어 미국과 중국 간의 가시적인 충돌이 앞당겨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4선, 중진이다. 추미애 의원의 당내 역할에 대한 기대도 많을 듯한데, 앞으로 행보는?
▲그동안 나는 당직을 맡든 맡지 않든 언제나 분열을 막아내고자 힘써왔다. 지금 민주당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당내 화합을 해야 할 때다. 그냥 팔짱만 끼고 하는 화합이 아니라 나를 성찰하고 남을 이해하는, 진정한 화합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내가 화합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거물급들 만나 남북 현안 논의
추미애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접견은 EU 의장단 측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며 “그쪽에서 비공개를 요청한 터라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지만, 의장단 명단에는 EU 핵심 회원국의 거물급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의원실에서 마련된 이 자리에서는 남북 관계 현안과 관련한 문제가 주로 오갔다. 이를 보고받은 이는 문희상 당시 비대위원장뿐”이라고 밝혔다.
추 의원은 지난 2010년, 영국 유명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초청을 받아 이명박 대통령의 ‘북한 붕괴론’ 등 대북기조에 대해 비판하고 6자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유럽에서 유명세를 탄 바 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번 EU 의장단 접견 역시 이러한 유럽에서의 인지도에서 비롯돼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박근혜 신뢰 프로세스는 시간낭비”
그러나 추미애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라는 것이 결국 북한이 한국의 신뢰를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작동하는 것”이라며 “지금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우리의 신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이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지금 아무 것도 못하고 자꾸 시간만 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미국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이것으로는 오바마 정부도 설득할 수 없다. 내가 박 대통령 입장이라면 차라리 백팔십도 다르게 남북관계에 있어서 미국에 담대한 정치력을 보이라고 요구 하겠다”고 박근혜 대통령과 여권을 압박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