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승리투수가 됐지만 과정까지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류현진은 이날도 직구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커브는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볼임을 알아챌 만큼 좋지 못했다. 상대가 리그 최약체 타선인 마이애미가 아니었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상대 타선을 7회 2사까지 1실점으로 막아낸 부분은 고무적이었다. 신인 투수의 가장 큰 무기는 생소함이다. 하지만 시즌이 거듭되고 노출이 계속될수록 상대는 치밀한 분석으로 숨통을 조여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류현진의 다음 상대는 리그 정상권의 타격을 자랑하는 애틀랜타-밀워키로 이어지는 원정길이다. 진짜 시즌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 체인지업이 말을 안 듣는다!
류현진은 마이애미 전까지 8경기에 선발 등판해 4승 2패 평균자책점 3.40을 기록하고 있다. 50.1이닝을 던지는 동안 51개의 삼진을 잡아내고 있으며 피안타율은 .245다. 분명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연착륙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아직까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미국 스카우터들로부터 플러스 피치로 평가 받았던 체인지업이지만 한국 무대와 같은 압도적인 느낌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지난 샌프란시스코 전까지 .227의 피안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체인지업이 그의 주요 결정구임을 감안하면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수치다. 올 시즌 류현진의 직구 피안타율은 .323이다. 여기에 체인지업이 생각만큼 위력을 떨치지 못하면서 우타자를 상대로 애를 먹고 있다.
류현진의 우타자 피안타율은 .269로 자신의 시즌 평균은 물론 좌타자 피안타율인 .176에 비해 1할 가까이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삼진 역시 우타자 상대 4.2타석당 1삼진으로 좌타자의 2.6타석당 1삼진보다 못한 성적이다. 류현진은 한국 무대에서 대부분의 좌투수들과 달리 우타자에 약점을 보이는 투수가 아니었다.
체인지업이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 류현진이 괜찮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은 슬라이더 덕분이다. 류현진의 슬라이더 피안타율은 .133에 불과하며 48개의 삼진 가운데 가장 많은 14개를 슬라이더로 잡아내고 있다.(체인지업-7개) 류현진이 좌타자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도 슬라이더의 역할이 크다(한국무대에서부터 류현진은 좌타자를 상대로 체인지업을 거의 던지지 않았으며, 올 시즌도 좌타자를 상대로 던진 체인지업은 6개에 불과하다).
류현진이 지난 뉴욕 메츠전과 콜로라도 전에서의 호투는 체인지업보다 슬라이더와 커브의 비중을 높였던 점이 적중한 경기들이었다. 메츠전에서는 체인지업보다 슬라이더의 구사율이 더 높았으며(첫 7경기에서 류현진이 체인지업보다 슬라이더를 더 많이 던진 경기는 이날이 유일했다), 콜로라도전은 커브의 비중을 지금까지 가장 높은 13.3%(올 시즌 류현진 평균- 9.2%)까지 끌어올린 날이었다.
토미 존 수술 전력이 있는 류현진이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슬라이더의 비중을 마냥 늘릴 수는 없는 일이며, 커브는 올 시즌 류현진이 던지는 구종 가운데 가장 비중이 떨어지는 구질이다. 매 시합 볼 배합을 달리하며 경기에 임하는 것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본인만의 색깔을 살려야 한다. 류현진은 체인지업이 위력을 발휘할 때 가장 빛나는 투수다.
지금 류현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우타자 상대 몸쪽 직구가 얼마나 정교한 로케이션을 형성할 수 있느냐 여부다. 연합뉴스
류현진의 롱런을 위한 해답은 점점 또렷해지는 모양새다. 류현진은 6피안타를 허용한 애리조나 전을 제외한 6경기에서, 8피안타 이상과 3피안타 이하 경기를 각각 3경기씩 펼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세 경기를 비교했을 때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직구의 스트라이크 비율이었다.
8피안타 이상 경기에서 류현진의 직구 스트라이크 비율은 60%를 갓 넘거나 채 미치지 못했다. 반면 3피안타 이하 경기에서는 직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65%대 전후로 형성됐다.
올 시즌 류현진의 직구 구사 비율은 51.5%로, 총 투구수의 절반이 넘는다. 직구의 제구는 타자와의 승부에서 볼 카운트 싸움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며, 직구를 셋 업 피치로 사용하는 경우 결정구를 던지는 상황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직구와의 연계성이 중요한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하는 투수라면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류현진의 올 시즌 직구 평균구속은 90.7마일(145.9km)로 상대를 압도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올 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들의 직구 평균 구속은 91.2마일이다). 직구 제구가 동반되지 않는 순간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버텨낼 수 있는 동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류현진의 직구 제구는 체인지업의 위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체인지업은 직구와 같은 궤적으로 날아오지만 속도가 다소 느리고 홈 플레이트에서 살짝 떨어지는 데에 그 위력이 있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더욱 위력적이라고 평가받았던 이유는 체인지업과 직구를 던질 때의 팔 스윙에 차이가 없어 체인지업의 속도 차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직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넣지 못하면서 타자들이 체인지업에 무게중심을 두고 타석에 임할 경우 체인지업의 위력이 반감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이 가능하다.
지난 샌프란시스코 전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은 류현진의 직구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볼이라고 판단될 만큼의 흩날리는 공들이 들어오면서 체인지업도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그날 경기에서 류현진의 체인지업에 대한 상대 타자들의 헛스윙 비율은 5.3%로 올 시즌 평균 18.1%에 비해 한참이나 떨어지는 수치를 보였다.
그날 경기뿐 아니라 직구 제구의 정교함과 체인지업의 헛스윙 비율은 대부분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직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60% 전후로 형성된 8피안타 이상 세 경기의 체인지업 헛스윙 비율은 평균 11.9%였던 반면 65%를 넘나들었던 3피안타 이하 경기의 평균은 21.7%였다.
김형준 메이저리그 전문기자는 “류현진의 체인지업 자체의 위력은 국내무대에서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이어 “류현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우타자 상대 몸 쪽 직구가 얼마나 정교한 로케이션을 형성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될 것”이라며, “몸 쪽 직구가 통할 때 류현진의 주무기인 바깥쪽 체인지업도 위력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현진의 직구 제구가 얼마나 정교하게 이뤄질 수 있느냐는 올 시즌을 넘어 류현진의 전체 메이저리그 생활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김중겸 순스포츠 기자
초구 승부 ‘밀당’이 필요해!
류현진은 지난 두 차례의 샌프란시스코 등판에서 상대 타자의 공격적인 노림수에 걸려들며 많은 피안타를 허용했다. 2경기에서 류현진은 총 18개의 피안타를 허용했는데, 이중 절반에 해당하는 9개의 안타를 2구 이내 승부에서 내준 것이었다. 3구 이내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숫자는 14개로 늘어난다. 특히 지난 경기 1회말 연속 3피안타로 무사 만루 위기에 몰리는 데까지 류현진이 던진 투구수는 단 5개였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가는 그의 성향이 오히려 독이 된 결과였다.
류현진은 지난 샌프란시스코 전까지 2구 이내 승부에서 피안타율 .415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3구 이상으로 승부를 끌고 갔을 경우 그의 피안타율은 .195로 뚝 떨어졌다. 흔히들 투수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는 타자와의 승부를 이겨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류현진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하는 걸까.
김형준 메이저리그 전문기자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무심코 공을 던져서는 안 된다”며, “초구부터 정교한 코너 워크가 바탕이 된 제구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류현진이 호투를 펼친 뉴욕 메츠 타선은 타석당 투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팀으로, 상대 투수의 공을 오래 보는 습성을 가진 팀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샌프란시스코에는 파블로 산도발과 헌터 펜스 등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공략에 나서는 선수들이 많다”며 “상대 타선의 특색을 미리 파악해 놓는다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김중겸 순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