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대변인이 지난 11일 성추문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을 마치고 떠나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설마 이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겠지만, 윤창중 전 대변인의 끝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그와 접촉해본 많은 인사들에게 퍼져 있었다. 윤 전 대변인이 이미 오래 전부터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었기 때문이다.
그는 등장부터 심상찮았다. 지난해 12월 27일 인수위 대변인으로서 첫 번째 인선 결과를 발표할 당시 그는 밀봉된 서류봉투를 들고 발표장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봉투를 뜯고 발표했다. 기자들이 ‘명단을 언제 받았느냐’고 묻자 그는 “밀봉을 해 왔기 때문에 저도 이 자리에서 (뜯어보고) 발표를 드렸다”고 답했다. 전례 없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이벤트는 세간의 조롱거리로 떠올랐고, 이후 박 대통령의 인사는 논란이 일 때마다 ‘밀봉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밀봉’이 윤 전 대변인 데뷔전의 주제였다면 그 다음은 ‘오만과 불통’이었다. ‘인수위의 1인 단독 기자’를 자처했던 그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일방통보식 브리핑, 기자와 언론사의 편집권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들로 인해 인수위 기간 내내 ‘전쟁’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영양가’ 발언이었다. 인수위 워크숍 결과에 대한 질문을 받은 윤 전 대변인이 “영양가 있는 얘기는 없었다”며 브리핑을 거부한 것이다. 기자들이 “그 판단은 기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항변하자 그는 “(영양가가) 있고 없고도 대변인이 판단한다”고 일축했다.
인수위 대변인 시절 오찬 간담회 일화는 그의 오만과 불통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불통 인수위’의 대명사로 모든 언론의 공격이 쏟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이 나를 엄청 조지지만(비판하지만) 어딜 가든 굉장히 인기가 좋다. 어제도 조용한 고깃집에 갔는데 주인이 보자마자 ‘대변인님, 안녕하십니까’ 이러더라. 방송에 나갈 때엔 10m 정도 가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요즘엔 대부분 알아본다. 나가면 이렇게 인기가 많은데, 기자들과 야당이 날 아무리 조져도 그게 어떻게 보면 민심과 동떨어진 것 아닌가.”
당시 이 같은 그의 발언 내용은 순식간에 회자됐고, 윤 전 대변인은 오만과 불통을 넘어 ‘구제불능’으로 낙인찍혔다. ‘말’뿐만이 아니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이런저런 요구로 인수위 관계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운전기사 딸린 차량 요구가 대표적이다.
인수위 대변인으로서 인선 결과를 발표할 때 밀봉된 서류봉투를 들고 나와 논란이 됐다. 박은숙 기자
윤 전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정작 ‘본업’에는 열중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인수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당시 기자실이 설치됐던 금융연수원 본관에 윤 전 대변인 사무실을 두려고 했었는데 ‘기자들이 찾아오면 일을 못한다’고 해 결국 별관에 사무실을 뒀다”며 “언론 브리핑 자료도 자신이 직접 준비하지 않고 분과위원회 간사들에게 다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또한 이번 방미 중 “반드시 대통령이 머무르는 호텔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자단 숙소에 배치된 자신의 방을 바꿔 달라고 요구, LA의 호텔을 바꾼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격 경질되며 가보지도 못했지만.
여하튼 앞서의 인수위 인사는 “기자들뿐 아니라 인수위 내부 평판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윤 전 대변인이 더 이상 박 대통령에게 중용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관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말 많고 탈 많다는 말로는 부족한, 이처럼 엽기적인 이가 결국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박 대통령이 윤 전 대변인을 발탁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추천설’이 나돌았지만 ‘직접 발탁설’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이 많다. 윤 전 대변인은 꼭 누구의 추천을 받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알려진 보수 논객이었고, 박 대통령과 사적으로도 몇 차례 만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비서실에서 그날그날 신문기사를 보고 자료를 만들 때 윤 전 대변인의 칼럼을 제일 위에 올려 보고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누가 추천했든, 직접 발탁했든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이 인수위 단계에서 윤 전 대변인을 떨궈낼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이 윤 전 대변인을 더 이상 가까이 둬선 안 된다는 생각은 대변인과 직접 맞부딪히는 기자들뿐 아니라 새누리당 지도부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었고, 실제로 직·간접적으로 박 대통령 측에 이런 뜻을 전달했다고 밝힌 이들도 적지 않았다.
윤 전 대변인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지금은 상당수가 청와대에 출입하고 있는 당시 인수위 출입기자들이 한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윤 전 대변인을 재차 기용한 것은 불통의 주범이 그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근거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물론 청와대에 와서도 ‘오만불통’ 윤 전 대변인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 중 으뜸이 ‘불통 이미지’라는 것은 이 같은 저간의 사정과 무관치 않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만찬에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로 윤 전 대변인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인사위원회의 검증 강화 등 재발 방지 대책 마련도 약속했다. 하지만 발탁부터 퇴장까지 ‘윤창중의 143일’을 돌이켜 보면 제2, 제3의 윤창중 사태를 막기 위해선 박 대통령 스스로 ‘불통의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공헌 언론인
최초로 사태 파악… 속속들이 알 수도
현재까지 나온 진술들을 종합할 때 두 사람이 주목받는 이유는 성추행 가해자(윤 전 대변인)과 피해자(A 씨)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중 이들이 사건의 진실을 가장 먼저, 가장 정확하게 알았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우선 최 원장은 미국시간으로 지난 8일 새벽 A 씨가 윤 전 대변인으로부터 2차 성추행을 당한 직후 약 10분 동안 그녀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A 씨는 경찰에 신고하기 전이었던 만큼 최 원장에게 자신이 겪은 억울한 일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광삼 행정관은 최 원장이 사태 수습과 대응을 위해 찾아낸 청와대 측 파트너였다. 지난 8일 새벽 최 원장으로부터 ‘윤 전 대변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이 울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전 행정관은 곧바로 그와 함께 A 씨 접촉을 시도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또 A 씨가 경찰에 신고하자 이 사실을 윤 전 대변인과 이남기 홍보수석에게 곧바로 보고했고, 이 수석과 윤 전 대변인의 판단을 돕기 위한 정보도 수집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결국 미국 경찰의 조사가 본격화되고 진실 규명 작업이 본궤도에 오를 경우 두 사람이 핵심 참고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모든 수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최초 목격자, 최초 신고자의 진술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며 “최 원장과 전 행정관만 제대로 조사해도 윤 전 대변인과 A 씨 주장 중 어느 쪽이 더 신빙성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